4화
‹ ›쾅.
바닥이 갈라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석실 전체가 흔들렸고,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가 비처럼 떨어졌다.
다행히 팔은 나를 정확히 맞히지 못했다. 대신 바로 옆, 재민이 있던 자리를 덮쳤다. 거대한 팔이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뼈가 울리는 것 같은 진동이었다.
"재민!"
비명 같은 외침이 석실을 울렸다. 목소리를 낸 게 나인지 설아인지도 구분이 안 됐다.
다가가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발을 떼려는데 무릎이 꺾일 것 같았다. 이래도 되는 걸까. 몸이 이렇게까지 겁을 먹는 게 정상인가.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사치였다.
먼지가 가라앉고 나서야 재민의 상태가 보였다. 부서진 돌더미 사이에 반쯤 파묻힌 채, 팔 하나로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런데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무릎 아래가 정상적인 각도를 벗어나 옆으로 돌아가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틀렸다.
"괜찮아요, 재민 씨."
설아가 절뚝이며 다가가 지혈을 시작했다. 자신도 팔에서 피가 흐르는 채였다. 옷자락을 찢어 재민의 다리를 감싸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손놀림은 정확했다. 몇 번을 이런 상황을 겪어본 사람처럼.
"이런 상황에... 웃기지 않아요..."
재민이 억지로 웃었다. 웃음이 아니라 신음에 가까웠다. 입꼬리는 올라갔는데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말하지 마요. 힘 빼지 말고."
설아가 낮게 쏘아붙였다. 그 말투에서 이 사람이 지금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지 느껴졌다.
도현이 내 옆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헬멧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 왜 그랬어. 내가 앞에 있었는데."
"너 아니면 나였어. 그게 다야."
대답이 짧게 나갔다. 사실을 말한 거였다. 계산할 시간도 없었다. 몸이 먼저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속으로는 다른 말이 맴돌았다. 도현이 저 자리에서 죽었으면, 나는 또 뭔가를 뒤집어쓴 채로 살아야 했을 거라는 계산.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머릿속이 저절로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살아남는 쪽이 나였을 때, 죄책감이 얼마나 오래갈지, 그걸 견딜 수 있을지 없을지까지.
그런 계산을 하는 내가 싫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동생이 내 손을 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형, 나 살아있어."
"알아."
그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그렇게만 대답했다.
그것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느렸다. 마치 관찰하는 것처럼. 거대한 몸체가 천천히 좌우로 흔들렸고, 벽에 박힌 팔이 서서히 빠져나오면서 돌가루를 흩뿌렸다.
여섯 개의 눈이 우리를 차례로 훑었다. 하나씩, 순서대로. 사람을 훑는 눈빛이라기보다는 먹잇감의 목록을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저거, 우리를 살피고 있어요."
설아가 낮게 말했다. 지혈을 하던 손을 멈추지 않은 채로.
"공격 안 하고요?"
"안 해요. 지금은."
지금은, 이라는 단서가 유난히 무겁게 들렸다.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나는 그 여섯 개의 눈을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눈의 움직임이 완전히 무작위는 아니었다. 처음엔 그냥 흩어져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는데, 몇 번을 더 반복해서 관찰하니 규칙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 하나가 다른 눈들보다 조금 먼저 움직였다. 마치 그 눈이 먼저 신호를 보내고 나머지가 따라가는 것처럼. 정확히 반박자 정도의 시차였다. 그것도 매번 똑같은 리듬으로.
"저기, 가운데 눈. 저게 먼저 움직여요."
말하면서도 확신은 없었다. 목소리에 자신 없는 떨림이 그대로 섞여 나왔다.
"저게 뭐요?"
도현이 물었다. 눈은 여전히 그것에 고정한 채였다.
"저게 먼저 반응하고 나머지가 따라간다면, 저게 본체 아닐까."
말해놓고 나서야 스스로도 그 말이 얼마나 허술한 추측인지 깨달았다. 근거가 하나뿐이었다. 반박자의 시차. 그게 전부였다.
[분석 시도 — 정보 부족]
눈앞에 뜬 글자가 도움이 안 됐다. 시스템이란 놈이 이럴 때만 유독 무능해 보였다.
"확신할 수 없어요."
설아가 고개를 저었다. 지혈을 끝낸 손이 다시 재민의 상처를 확인하고 있었다.
"근데 지금 확신할 여유가 있어요?"
반문하자 설아가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지만, 맞는 말이라고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재민이 벽에 등을 기대며 몸을 조금 일으켰다. 다리는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상체만은 억지로 세웠다.
"저... 도와줄 방법이 없어서 미안해요."
"가만히 있어요. 그게 지금 도와주는 거예요."
내가 답했다. 재민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벽에 몸을 붙였다.
그것의 안개가 다시 뿜어져 나오려는 기색이 보였다.
몸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벽 전체가 진동했다.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그 소리를 몸으로 느끼는 순간 목뒤에 소름이 돋았다.
"온다."
짧게 말했다.
도현이 몸을 일으켰다. 아직 다리가 후들거리는데도 억지로 일어섰다.
"형, 나 다시 쏠게."
"이번엔 가운데 눈만 노려."
"어떻게 확신해?"
"확신 안 해. 그냥 그거밖에 없어."
말이 짧게 끊겼다. 더 길게 말할 시간이 없었다.
도현이 빛구슬을 만들어냈다. 이전보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구슬의 표면이 일정하지 않게 일렁였다. 힘이 온전히 담기지 않은 게 눈으로도 보였다.
"형, 무서워."
짧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게 들어있는지 알 것 같았다. 처음 이 던전에 들어왔을 때의 자신감, 그게 다 어디로 갔는지도.
"나도."
짧게 대답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도 무서웠다. 다만 무섭다고 멈춰 있을 시간이 없었을 뿐이었다.
안개가 뿜어지기 직전, 도현이 빛구슬을 던졌다.
정확히 가운데 눈을 향해서. 구슬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짧게 났다.
퍽.
맞았다.
그것의 몸 전체가 순간 경련을 일으켰다. 거대한 몸통이 한 번, 두 번, 흔들리듯 떨었다.
"먹혔다!"
설아가 소리쳤다. 목소리에 희망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그 반응은 짧았다.
곧바로 그것의 몸이 다시 안정을 찾았고, 여섯 개의 눈이 전부 도현을 향해 돌아갔다. 마치 방금 그 공격을 낸 존재를 정확히 짚어낸 것처럼.
"도현, 피해!"
소리쳤지만 늦었다.
안개가 도현을 덮쳤다. 회색빛 안개가 순식간에 그의 몸을 감싸며 뒤덮였다.
"으아악!"
비명이 석실을 가득 채웠다. 귀를 찢을 듯한 소리였다. 그 소리가 아직도 귓속에 남아있는 것 같다.
달려갔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던 것도 잊고 그냥 몸이 튀어나갔다. 도현의 몸을 끌어당겨 안개 밖으로 빼냈다.
어깨와 팔에서 살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옷이 눌어붙은 자리마다 살이 뭉개져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살이 타는 냄새와는 다른, 뭔가 부식되는 듯한 역한 냄새였다.
"도현아. 도현아!"
흔들었다. 눈이 반쯤 감겨 있었다. 초점이 흐릿하게 흔들렸다.
"형..."
도현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숨소리보다도 작게 새어나온 말이었다.
"말하지 마. 힘 빼지 마."
방금 설아가 재민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상하게 그 말이 저절로 나왔다.
손바닥의 신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처음 느껴보는 열이었다. 화상을 입을 것 같은 온도는 아니었지만, 그 열기 자체가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경고 — 신도의 생명 반응 급격히 저하]
글자가 눈앞에서 붉게 번쩍였다. 몇 번이고 껌뻑이면서.
나는 도현을 안은 채로, 아무 권능도 없는 손으로, 그저 그 몸을 붙잡고 있었다. 이 손으로 뭘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답이 없었다.
무언가 해야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설아가 절뚝이며 다가오려 했지만, 재민의 다리에서 다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위험한 상황이었다. 누구를 먼저 살려야 하는지조차 판단이 안 됐다.
도현의 숨소리가 점점 얕아지고 있었다. 팔에서 흘러나온 피가 내 옷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것이, 여섯 개의 눈으로 다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번엔 관찰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사냥을 끝내기 직전의 눈빛이었다.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안개가 준비되고 있다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