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식당 안은 여느 때처럼 시끌벅적했다.
아이들이 그릇을 부딪치는 소리, 낮은 웃음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아침 햇살이 식탁 위에 얇게 깔렸다.
나는 아리와 함께 자리에 앉아 죽을 먹고 있었다.
숟가락을 든 손이 어쩐지 무거웠다.
어젯밤 꿈의 잔상이 자꾸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파란 눈의 남자.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얼굴.
불길처럼 붉게 타오르던 배경.
아무리 지우려 해도 잔상은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하린아, 죽 다 식겠다."
아리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어... 응."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숟가락을 다시 움직였다.
하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입안에서 물처럼 넘어갈 뿐이었다.
아리가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안 좋아."
"아니야, 그냥... 잠을 좀 못 자서 그런가 봐."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어젯밤 꿈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아리는 더 묻지 않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식당 안의 소음이 다시 귓가를 채웠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
멀리서 누군가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때였다.
식당 문이 거칠게 열렸다.
탁.
문이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식당 전체에 울렸다.
송미란 원장이 안으로 들어섰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발걸음마다 마룻바닥이 삐걱거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마저 멈췄다.
"다들 조용히 해."
낮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식당 안이 순식간에 정적에 잠겼다.
누군가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원장은 천천히 걸어와 아리의 앞에 멈춰 섰다.
구두 소리가 또각또각, 규칙적으로 울렸다.
그 소리가 멈추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을 받았다.
"윤아리."
아리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네...?"
목소리에 미세한 긴장이 배어 있었다.
"내일 아침 일찍, 너를 데리러 손님이 오실 거야."
순간 식당 전체가 얼어붙었다.
아무도 숨소리를 내지 않았다.
나는 귓가가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손님이... 라고요?"
아리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숟가락을 쥔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인수를 원하시는 분이야. 좋은 곳으로 가는 거니 걱정 말고."
원장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 미소는 눈까지 닿지 않았다.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인수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머릿속이 하얘졌다.
인수라는 단어가 낯설고 불길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아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핏기가 사라진 얼굴.
그 순간 나는 생각할 새도 없이 몸이 움직였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끄어어억.
식당 안에 있던 모든 시선이 그 소리를 향해 쏠렸다.
"저기, 원장님. 아리는 안 갈 거예요."
목소리가 떨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식당 안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원장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뭐라고 했지, 서하린."
낮은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위압감은 뚜렷했다.
한 발짝, 원장이 다가왔다.
나는 두 손을 꽉 쥐었다.
손끝에서 미세한 온기가 퍼지는 게 느껴졌다.
(이게 뭐지... 몸이 왜 이렇게 뜨거워지지.)
이상한 감각이었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가 끓어오르는 느낌.
손바닥 위로 옅은 푸른빛이 스며 나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희미했지만,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몸속 어딘가 잠들어 있던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거... 어제 꿈에서도 이런 느낌이었어.)
원장이 성큼 다가왔다.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어른들 일에 함부로 끼어들지 마."
짝.
손바닥이 내 뺨을 스치듯 지나갔다.
뜨거운 통증이 얼굴에 번졌다.
시야가 순간 흔들렸다.
식당 안에는 다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누군가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원장을 올려다봤다.
분한 마음에 눈물이 차올랐지만 참았다.
이를 악물었다.
(왜 이렇게 무력한 거야, 이 몸은.)
방금 느꼈던 푸른빛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손바닥에는 그저 평범한 온기만 남아 있었다.
허무할 정도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다들 계속 밥 먹어. 서하린, 너는 방으로 가."
원장의 명령에 아무도 감히 거스르지 못했다.
아이들은 조용히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그릇 소리가 다시 식당 안을 채웠지만, 예전과 같은 소리는 아니었다.
무언가 조심스러움이 배어 있는 소리였다.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뺨이 여전히 뜨거웠다.
아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닫혔다.
그 짧은 순간, 아리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두려움, 그리고 미안함.
나는 애써 웃어 보이려 했지만 입가가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식당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다른 방 아이들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평소라면 시끄럽다고 느꼈을 소리였는데, 오늘은 그저 멀게만 느껴졌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뺨을 문질렀다.
아직도 화끈거리는 통증이 남아 있었다.
손끝에 닿는 뺨의 감촉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건 방금 손바닥에서 느꼈던 그 낯선 감각이었다.
(분명히 뭔가 있었어. 그런데 그게 뭐였는지 모르겠어.)
손을 펼쳐 다시 눈앞에 대봤다.
아무 변화도 없었다.
평범한 어린아이의 손이었다.
손금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일 뿐, 그 어떤 빛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그 순간, 그것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는 걸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몸속에서 느꼈던 그 열기.
그리고 손바닥에서 스며 나오던 푸른빛.
분명 내 몸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제 꿈속에서도... 비슷한 빛을 본 것 같은데.)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흐릿하게 흩어질 뿐,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창밖으로 해가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붉은 빛이 방 안을 물들였다.
벽지에 스며든 붉은빛이 마치 핏빛처럼 보였다.
마치 어젯밤 꿈속에서 봤던 그 불길의 색과 닮아 있었다.
바람이 창틈으로 스며들어 커튼을 흔들었다.
평소라면 그저 스쳐 지나갔을 바람 소리가, 오늘은 어딘가 삐걱거리는 듯한 낯선 파문처럼 느껴졌다.
(내일이라고 했지. 아리를 데려간다고.)
주먹을 꽉 쥔 손이 떨렸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원장에게 매달려 볼까.
다른 어른에게 부탁해 볼까.
하지만 어느 것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나와 아리는 그저 힘없는 아이일 뿐이었다.
그 순간, 어제 꿈속에서 봤던 파란 눈의 남자가 다시 떠올랐다.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얼굴.
선명하게, 마치 실제로 본 것처럼 눈앞에 그려졌다.
(그 사람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얼굴에 자꾸 매달리고 있었다.
창밖의 붉은 빛이 점점 짙어졌다.
방 안의 그림자도 점점 길어졌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올려다봤다.
눈을 감으면 다시 그 꿈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남자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이 손바닥의 빛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일, 아리를 지킬 방법이 있는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쉽사리 잠은 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내일 아침의 장면들이 떠올랐다가 흩어졌다.
낯선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
아리가 끌려가듯 방을 나서는 모습.
그리고 그 모든 걸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
(안 돼. 그렇게 둘 순 없어.)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방 안은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창밖에서 벌레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평소라면 평온하게 느껴졌을 그 소리가, 오늘은 어딘가 초조하게 울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손바닥을 펼쳐 들여다봤다.
여전히 아무 빛도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 분명히 무언가가 잠들어 있다는 걸,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 오기 전에, 그것을 다시 깨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리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나는 조용히 두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