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친구가 죽는 미래라니

5화

잠이 든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꿈이 찾아왔다. 몸은 분명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정신은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 있었다. 이번에는 그 불타는 방이 아니었다. 좁은 마차 안, 흔들리는 벽면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나무 냄새와 축축한 가죽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창밖으로 어두운 숲이 스쳐 지나갔다. 나뭇가지가 마차 옆면을 스치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평소라면 그저 스쳐 지나갈 배경음이었을 텐데, 어딘가 삐걱거리는 듯한 이질감이 섞여 있었다. 어머니가 내 옆에 앉아 나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따스한 체온과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말린 라벤더 같기도 하고, 갓 구운 빵 같기도 한 냄새였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 가슴 한쪽이 저릿하게 조여왔다. "하린아, 무슨 일이 있어도 소리 내지 마." 어머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다급했다. 목소리 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여러 마리의 말이 동시에 땅을 밟는 소리, 그 사이로 사람들의 낮은 외침이 뒤섞여 들려왔다. 마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몸이 옆으로 쓸려나갈 듯 기울었다가 다시 균형을 잡았다. 쿠웅. 무언가 마차 옆면에 강하게 부딪혔다. 나무판이 갈라지는 소리가 귓가에 날카롭게 박혔다. 어머니의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숨이 막힐 정도로 세게 나를 끌어안으셨다. "괜찮아. 엄마가 지켜줄게."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지만, 그 아래 깔린 긴장은 어린 나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마차 문이 거칠게 뜯겨나갔다. 콰득. 경첩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밤바람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검은 로브를 입은 그림자들이 안으로 손을 뻗었다. 로브 안쪽은 어둠보다 더 깊은 어둠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손끝만이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드러났다. 어머니가 나를 끌어안은 채 몸으로 막아섰다. "안 돼!" 그 외침은 비명이 아니라 명령처럼 들렸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주변을 압도하는 강렬한 힘이었다. 마차 안이 순간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림자들이 순간 뒤로 밀려났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몸을 뒤틀며 물러섰다. 그 빛의 색깔은, 낮에 내 손바닥에서 느꼈던 그 옅은 푸른빛과 닮아 있었다. 같은 색, 같은 온도, 같은 떨림. (저건... 나도 낮에 느꼈던 거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꿈속에서조차 그 감각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어머니가 나를 향해 다급히 말했다. "하린아, 이 힘은 절대 함부로 쓰면 안 돼. 알겠지?" 그 눈빛은 두려움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 물으려는 순간, 시야가 급격히 흔들렸다. 마차가 뒤집히는 감각. 몸이 허공에 떠오르는 듯한 부유감, 그리고 곧이어 바닥이 통째로 뒤집히는 충격. 어머니의 손이 내 손에서 스르르 빠져나갔다. 손끝의 온기가 사라지는 그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엄마!"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탁. 무언가 끊어지는 듬한 감각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이불이 등에 축축하게 감겨 있는 게 느껴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세게, 빠르게. 방 안은 여전히 어둡고 조용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달빛만이 방 안을 옅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리는 옆에서 잠들어 있었다. 작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 소리가 지금의 나를 조금은 붙잡아주는 것 같았다. (6년 전... 그날 일이야.) 나는 가슴을 짚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뻐근했다. 어머니와 헤어졌던 그날의 기억이 이렇게 선명하게 떠오른 건 오랜만이었다. 보통은 흐릿하게, 마치 물에 잠긴 그림처럼 떠오르곤 했는데, 오늘은 마치 바로 앞에서 다시 겪는 것처럼 생생했다. (엄마가 그때 쓰신 그 힘... 낮에 나한테서 나온 것과 같은 거였어.) 손바닥을 다시 펼쳐 바라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손바닥, 굳은살 하나 없는 여린 손금.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피부 아래 무언가가 잠들어 있는 듯한,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이었다. (내가 황족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힘이 그것과 관련된 걸까.) 어머니는 늘 초급 마법만 가르쳐주셨다. 불을 붙이거나, 물을 정화하는 정도의 간단한 것들. 촛불 하나를 켜는 데도 몇 번이나 실패해서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마차에서 봤던 그 힘, 그리고 낮에 느꼈던 그 감각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격차. 마치 촛불과 태양을 나란히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알고 계셨던 걸까.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이 힘을.) 그렇다면 왜 한 번도 말씀해주지 않으셨던 걸까. 숨겨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아직 내가 알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맨발에 닿는 나무 바닥이 서늘했다. 달빛이 창을 통해 은은하게 스며들었다. 푸르스름한 빛이 방 안 절반을 물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짙은 그림자에 잠겨 있었다. 마당의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림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그림자 속에서, 문득 어젯밤 꿈에서 봤던 파란 눈의 청년이 떠올랐다. "적대하지 말아달라..." 그 말이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목소리의 질감까지 기억이 났다. 낮고, 조용하지만, 어딘가 절박함이 배어 있는 그 말투. (그 사람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그리고 이 힘과는...) 생각이 복잡하게 얽혔다. 아리의 문제, 잃어버린 힘, 어머니의 기억, 그리고 정체불명의 청년까지. 모든 것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 어느 하나를 당기면 다른 하나가 함께 끌려 나오는, 풀 수 없는 매듭 같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이제는 정해야 해.)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아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잃어버린 힘의 정체를 알아내야 한다고. 더 이상 막연한 두려움에 밀려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창밖 마당 저편, 낡은 창고 문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였다. 문 표면의 나무결이 오래되어 갈라져 있었고, 자물쇠는 녹이 슬어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원장이 늘 아이들의 접근을 엄격히 금지하던 그곳이었다. 한 번은 아리가 그 근처에 갔다가 크게 혼이 난 적도 있었다. (저 안에 뭔가 있을지도 몰라.)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강한 예감이 들었다. 마치 그곳이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슴 한복판에서부터 은근하게 당겨지는, 낯선 파문 같은 감각. 나는 아리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발걸음을 최대한 소리 없이 옮기며, 아리의 얼굴을 한 번 더 내려다봤다. 평온하게 잠든 얼굴이었다. 이 아이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가슴을 눌렀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자세를 바꿔가며 눈을 감았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더 또렷해질 뿐이었다. 창고를 향한 이상한 확신만이, 어둠 속에서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었다. 마치 그 낡은 문 뒤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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