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사절단이 마차를 이끌고 마을을 빠져나간 뒤로도 마당의 흙먼지는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누런 먼지가 낮게 소용돌이치며 사람들의 발목을 휘감았고, 그 먼지 사이로 마을 사람들의 검게 그은 얼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대문 앞에 서서 낯선 소년을 흘긋거리며 수군거렸는데, 그 말투 속에는 호기심보다 경계심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누군가는 팔짱을 낀 채 혀를 차며 저런 아이가 무슨 연이 있어 이 산골까지 흘러들었느냐고 중얼거렸고, 또 누군가는 아이의 흰 얼굴빛을 두고 병색이 있는 게 아니냐며 걸음을 뒤로 물렸다. 소하는 그런 시선들을 등지고 선우결의 손을 잡은 채 마당 한쪽 그늘로 이끌었다. 손을 잡는 순간 소년의 손가락이 놀랍도록 가늘고 차가웠는데, 그 온도가 사막에서 자란 이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서늘해서 소하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조금 더 주었다.
"괜찮아요?" 소하가 청화촌 방언으로 물었지만 선우결은 그저 고개를 갸울이며 눈을 깜빡였을 뿐이었다. 그 눈은 마치 처음 보는 벌레를 관찰하는 듯한 눈빛이었는데, 겁을 먹었다기보다는 그저 낯선 소리 자체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 아기 같은 표정에 소하는 순간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으나, 곧 자신의 처지가 새삼 서글퍼져 입술을 깨물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와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지, 그 막막함이 목구멍께에 조용히 얹혔다.
그늘 아래 나무 등받이에 소년을 앉히고서도 소하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손끝으로 소년의 옷깃을 슬쩍 여며주었는데, 옷감이 얇아 벌써부터 산골의 서늘한 바람을 견디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 순간에도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등 뒤에 따갑게 꽂혀 있었고, 소하는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며 소년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오후 무렵, 산 너머 설령촌에서 사람이 왔다는 전언이 돌았다. 전언을 전한 아이는 숨이 턱에 차도록 마당까지 달려와서는, 촌장님이 손수 오신다는 말에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마을 어귀에 나타난 이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검은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린 채 짙은 남빛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으며 걸음걸이가 물뱀처럼 미끄러웠다. 걸을 때마다 두루마기 자락이 흙바닥을 스치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웠는데, 그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 여인을 알아보고는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설령촌 촌장 강지안이었다.
강지안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선우결에게 다가가 무릎을 살짝 굽히며 대륙 공용어로 유창하게 말을 건넸다. "먼 길 오셨습니다, 도련님. 불편하신 점은 없으신가요."
선우결의 얼굴이 그 순간 처음으로 환하게 풀어졌다. 그는 강지안을 향해 무언가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그 말투에는 안도와 반가움이 뒤섞여 있는 듯했다. 손짓까지 섞어가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이, 낯선 땅에 떨어진 뒤로 처음 마주한 익숙한 언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리 반가운 모양이었다. 소하는 그 옆에 우두커니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았으나,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어서 그저 표정만으로 짐작할 뿐이었다. 소년의 손짓 하나, 강지안의 고개 끄덕임 하나에도 뭔가 중요한 사정이 담겨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벽을 넘지 못하는 자신이 못내 답답했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강지안의 시선이 마당 한쪽에서 슬그머니 나타난 윤태호에게로 옮겨갔다. 그 순간 여인의 눈빛이 완전히 다른 색으로 바뀌었다. 방금까지 다정했던 눈매가 서릿발처럼 차갑게 굳었고, 입가의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변화가 너무도 순식간이라 마치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오랜만입니다, 촌장님." 강지안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그 안에 담긴 냉기는 마당의 온도를 몇 도쯤 떨어뜨리는 듯했다.
윤태호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손끝으로 괜히 옷섶을 매만지는 그 모습이 평소의 위세와는 사뭇 달라 보였다. "어, 그래. 지안이도 잘 지냈는가."
"덕분에요." 강지안이 짧게 답한 뒤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겁게 마당을 메웠는데, 마을 사람들조차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냉기를 눈치채고는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누군가는 밭일이 남았다는 핑계로, 또 누군가는 아이를 부른다는 핑계로 대문 밖으로 몸을 빼냈고, 순식간에 마당은 몇 사람만이 남은 채 정적에 잠겼다.
소하는 그 순간 강지안의 턱이 미세하게 조여지는 것을, 그리고 목덜미의 힘줄이 얇게 곤두서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저 여자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미움의 뿌리가 꽤나 오래된 것임을 소하는 직감으로 느꼈다. 언제 저런 일이 있었을까. 아버지의 입에서는 단 한 번도 설령촌 촌장의 이름이 다정하게 흘러나온 적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이토록 뚜렷한 냉기가 오갈 만한 사연을 짐작할 수도 없었다.
강지안은 곧 시선을 거두고 소하를 향해 돌아섰다. 그 눈빛은 다시 부드러워졌으나, 그 안에는 어딘가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소하야."
"네, 촌장님." 소하가 고개를 숙였다.
"공용어를 할 줄 아느냐."
소하는 그 질문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입술만 벙긋거렸다. 방언이라면 산 너머 세 마을 것까지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지만, 대륙 공용어는 서당에서 몇 마디 주워들은 것이 전부였다. 손가락을 꼽아가며 아는 단어를 세어보려 했으나, 열 손가락을 다 채우기도 전에 이미 밑천이 드러날 지경이었다. 강지안은 그 침묵만으로 답을 짐작한 듯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아이는 이 나라 말을 모른다. 너도 저 아이의 말을 모르지. 그러니 앞으로 며칠은 서로가 서로에게 벙어리나 다름없을 것이다." 강지안의 말투는 담담했으나 그 속에는 냉정한 진단이 담겨 있었다. "공용어를 배워라. 그게 네가 저 아이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소하는 그 말에 반박하려 했으나,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미처 정리하기도 전에 강지안은 이미 몸을 돌려 선우결에게 몇 마디를 더 건넨 뒤 마당을 나서고 있었다. 그 몇 마디에 선우결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묻는 듯했는데, 강지안은 짧게 답한 뒤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뱀처럼 미끄러운 걸음걸이로 대문을 향해 걸어가던 그녀는 문턱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참, 소하야." 강지안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저 아이가 왜 이런 산골까지 왔는지, 나중에라도 궁금해지면 함부로 캐묻지 마라. 그건 저 아이한테도, 이 마을한테도 좋을 게 없는 일이니."
그 말을 남긴 채 강지안은 소리 없이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 두루마기 자락이 마지막으로 문틀 너머로 스러지는 순간까지도, 그녀의 뒷모습은 여전히 그 미끄러운 뱀의 걸음걸이를 잃지 않고 있었다. 소하는 그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는데, 방금 들은 말의 무게가 가슴 한복판에 묵직하게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선우결의 손을 다시 꽉 붙잡았다.
바람이 다시 한 번 마당을 훑고 지나갔다. 소년의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고, 그 온도는 좀처럼 데워지지 않았다. 소하는 문득 궁금해졌다. 저 아이가 온 곳은 어디이며, 무엇으로부터 이토록 멀리 도망쳐 왔는가. 그리고 강지안이 그토록 신신당부한 그 비밀은, 앞으로 자신과 이 마을에 어떤 무게로 되돌아올 것인가. 답을 알 수 없는 물음들만이 저녁 어스름을 따라 조용히 마당에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