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소모병 1년, 공주의 선택

3화

채찜질 집행은 다음 날 새벽으로 정해졌다. 나는 형벌 대기소에 갇혔다. 좁은 나무 우리였다. 바닥에는 짚이 깔려 있었지만 습기가 배어 있었다. 창살 사이로 별이 보였다. 지구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배열이었다. 늘 그렇듯, 이 세계로 온 뒤로 낯선 것들이 익숙해질 때마다 나는 조금씩 무뎌졌다. 우리 밖에서 경비병 둘이 낮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채찜질 쉰 대면 죽지 않으려나." "몰라. 요즘 저놈들 이상하게 안 죽더라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등을 벽에 기댔다. 나무가 차가웠다. 박노식이 면회를 왔다. "괜찮냐." "괜찮습니다." "괜찮은 게 아니라 아프면 아프다고 해도 돼, 인마." 나는 웃지 않았다. 박노식은 우리 창살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을 줬다. "진짜 안 아프다는 게 아니라, 안 아픈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거잖아. 그거 다 보인다." "그놈도 뽑혔던데." 박노식이 말끝을 흐렸다. 강철수 얘기였다. "압니다." "뭘 어떻게 할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피리를 만졌다. 박노식이 한숨을 쉬었다. "너 그거, 손에서 안 놓더라. 그거 뭔지 나한테는 얘기 안 해줄 거지." "때 되면 얘기할 겁니다." "그 때가 언제인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노식도 더는 묻지 않았다. --- 박노식이 돌아간 뒤, 나는 우리 안에 혼자 남았다. '감정을 지워야겠다.' 그런 생각이 처음 든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결심이었다. 완전히, 철저하게 지워야 한다는 확신이었다. 특별행동대에 들어가면 지금과는 다른 판이 열릴 거였다. 공주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강철수도. '감정이 남아 있으면 틈이 생겨. 틈이 생기면, 그 틈으로 누가 들어와서 목을 조를 거야.' '지금까지처럼 살면 안 돼. 여기선 정 붙이는 순간 뒤통수 맞는다.' 나는 피리를 손안에서 굴렸다. 나무의 결이 손끝에 익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구에서. 경주 고분 발굴 현장. 밤. 나는 불법 도굴 의뢰를 받고 그 자리에 있었다. 용병 일이란 게 다 그런 식이었다. 돈이 되면 뭐든 했다. 의뢰인은 골동품 거상이었고, 발굴 허가 따위 받을 생각도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밤, 곡괭이 대신 작은 삽과 랜턴을 들고 봉분 옆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소연은 그날 나를 말리려고 그 자리까지 쫓아왔다. "지호야, 이번만 그만두자."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했다. 낮았지만 단단했다. "이번 건만 끝내면 그만둘 거야."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매번 그렇게 대답했다. 그녀는 매번 믿어줬다. '믿어준 게 아니라, 믿어주는 척을 해준 거였을지도 몰라.' 무덤 안, 관 옆에서 이상한 빛이 새어 나오던 순간, 나는 그녀의 손을 놓쳤다. 빛은 푸르렀고, 관 뚜껑 틈에서 새어 나왔다. 나는 그 빛에 손을 뻗었다. 소연이 내 팔을 잡았다. 그 순간 빛이 확 커졌다. 손을 놓친 건 순식간이었다. 다음 기억은 이 세계였다. 소연이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나는 모른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니면 나만 이곳으로 끌려왔는지. 그 무지가 가장 아팠다. 피리를 불 때마다, 나는 그 밤의 소리를 떠올렸다. 그녀가 부르던 이름. 내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 '지호야.' 그 목소리만 남고, 얼굴은 자꾸 흐려졌다. 그게 더 무서웠다. --- 새벽, 집행관들이 우리 문을 열었다. 나는 순순히 끌려 나갔다. 형틀에 묶였다. 형틀은 나무로 짜인 십자가 모양이었다. 손목과 발목이 가죽끈으로 고정됐다. 등을 하늘로 향하게 눕히는 방식이었다. 주변에는 구경꾼이 몇 있었다. 이런 형벌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이었다. 첫 번째 채찜이 등을 갈랐다. 살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나.' 숫자를 세기로 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이 어디로 새어나갈 것 같았다. 다섯 번째쯤, 살이 뜨겁게 벌어지는 느낌이 났다. '다섯.' 열 번째쯤, 등에서 뭔가 이상한 감각이 돌기 시작했다. 상처가 벌어지는 속도보다, 아무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집행관 하나가 그걸 눈치챈 듯 잠시 멈췄다가, 다시 채찜을 들었다. "이 자식, 뭐야." 옆에 있던 다른 집행관이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눈을 감고 있었다. '스물.' '스물다섯.' 숫자가 커질수록, 통증은 무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다만 소리를 낼 힘이 남지 않았을 뿐이었다. 서른 번째쯤, 등은 이미 걸레짝이 됐지만 나는 여전히 서 있었다. 정확히는, 매달려 있었다. 먼발치, 그늘 속에서 누군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한별이었다. 그녀의 표정은 냉정했다. 하지만 손은, 옷자락을 꽉 움켜쥔 채 떨리고 있었다. 그녀 옆에 선 시녀 소월이 몇 번이나 그녀를 흘긋거렸다. 뭔가 말을 걸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서한별은 미동도 없이 형틀만 응시하고 있었다. 마흔 번째쯤, 시야가 흔들렸다. 눈앞이 하얘졌다가 다시 붉어졌다. '마흔.' 마흔아홉 번째 채찜이 떨어질 때, 나는 이상하게 그 피리 소리가 다시 귓속에서 울리는 걸 느꼈다. 실제로 들리는 게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그날 밤의 그 선율이 되풀이됐다. 쉰 번째. 마지막 채찜이 떨어지고, 나는 형틀에서 풀려났다. 가죽끈이 풀리는 순간, 무릎이 꺾였다.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손바닥으로 땅을 짚었다. 손가락 사이로 흙이 파고들었다. 등 뒤에서 소월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저 자 상처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한별이 자리를 떴다. 발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 여자도 뭔가 숨기고 있구나.' '냉정한 척은 하는데, 저렇게 급하게 자리를 뜨는 사람은, 보통 뭘 보고 싶지 않은 게 있는 거지.' 집행관 하나가 다가와 내 팔을 잡아 일으켰다. 억지로 세워졌다. 등에서 흐르는 것이 피인지 다른 무엇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다만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처음 채찍을 맞았을 때보다 눈에 띄게 빨라져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멀어지는 서한별의 뒷모습 너머로, 성벽 위에서 누군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강철수였다. 그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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