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당신이 나를 지명했다니

3화

그날 이후 서연은 며칠 동안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 근처를 지날 때마다 걸음을 서둘렀는데, 그 문 뒤에서 무엇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상상을 부풀렸다. 차가운 돌계단이 어둠 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 아래에서 누군가의 신음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고,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는데, 실제로 무슨 소리를 들은 건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런 밤이면 서연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고 눈을 꼭 감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시녀들도 그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었고, 그 침묵이 서연에게는 더 큰 공포로 다가왔다. 언젠가 한번, 서연이 지나가는 말로 지하에 뭐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이 든 시녀 하나는 손에 든 쟁반을 떨어뜨릴 뻔했다. "거긴 아가씨가 신경 쓰실 곳이 아니에요." 그 말투에 담긴 단호함이, 오히려 서연의 궁금증을 더 부추겼다. 알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 더 알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던가. '그래도 이렇게까지 다들 겁을 낼 일인가.' 서연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더 캐물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밤, 서연은 목이 말라 부엌으로 향하던 길에 복도 끝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신음 소리를 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벽에 몸을 붙였다가,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발끝으로 걷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지만, 그렇다고 발소리를 크게 낼 수도 없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는데, 그것이 무서워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문이 살짝 열려 있는 방 안, 강혁이 상의를 벗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의 등판에는 오래된 상처와 새로 벌어진 것으로 보이는 자국이 뒤엉켜 있었다. 촛불이 그 등을 비추자, 오래된 흉터들이 마치 지도의 등고선처럼 겹겹이 새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한 시종이 떨리는 손으로 상처를 소독하는 동안, 강혁은 미간 하나 찌푸리지 않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무표정이 오히려 서연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아프지 않을 리가 없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탁자 위에는 핏자국이 묻은 검이 놓여 있었고, 방 안 가득한 피 냄새가 문틈으로 새어나와 서연의 코끝을 찔렀다. 쇠붙이의 비릿함과 어딘가 알싸한 약초 냄새가 섞여, 서연은 저도 모르게 코를 감쌀 뻔했다. "공작님, 자객이었던 것 같습니다. 죽이지 말고 살려두라 하셨는데..." 시종의 조심스러운 보고에 강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하에 가둬두시오. 내가 직접 물을 것이오." 그 목소리에는 어떤 동요도 없었고, 서연은 그 담담함이 사람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 숨이 턱 막혔다. 자객이라니. 이 저택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강혁의 반응이었다. 마치 오늘 저녁 메뉴를 정하는 것처럼 무심한 말투였다. 시종은 강혁의 등에 붕대를 감기 시작했고, 그 손길이 조심스러운 만큼 강혁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서연은 그 광경을 더 지켜볼 자신이 없었지만, 동시에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뒷걸음질 치던 서연의 발이 그만 바닥의 촛대를 건드리고 말았고, 쨍그랑하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강혁은 그 소리에 즉시 고개를 돌렸고, 문틈 사이로 서 있던 서연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 짧은 순간, 서연은 그의 눈동자 속에서 어떤 감정을 읽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얼어붙었다. 분노일까, 경계일까, 아니면 단순한 짜증일까. 찰나였지만 그 눈빛이 마치 서연의 존재 전체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아서, 도망칠 궁리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강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리자, 서연은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발소리는 느렸지만 확실하게 가까워졌다. 서연은 눈을 질끈 감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저 큰 몸이 다가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다음 행동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혁은 문을 완전히 열어 서연을 마주하며, 상처투성이 상체를 굳이 가리지 않은 채 낮게 물었다. "뭘 본 것이오." 그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으며, 대답을 강요하는 듯한 힘이 실려 있었다. 서연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시선을 떨어뜨릴 뻔했는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고 그의 등에 남은 상처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겁을 먹고 도망쳐야 정상인데, 왜 자꾸 저 상처에 눈이 가는 걸까. "많이... 아프셨겠어요." 두려움 대신 튀어나온 그 한마디에, 강혁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리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 방을 목격한 자들은 대부분 겁에 질려 도망치거나, 알은체하지 않으려 서둘러 시선을 거두었을 텐데, 이 작은 몸집의 여자는 오히려 그의 상처를 걱정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여자다.' 강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한 채 짧게 대꾸했다. "신경 쓸 것 없소. 돌아가서 자시오." 그 말에는 거절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서투른 회피가 담겨 있는 것 같았지만, 서연은 그걸 알아차릴 여유가 없었다. 강혁은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의자에 앉았고, 시종이 그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서연은 몇 걸음을 더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뒤늦게 정신이 든 사람처럼 걸음을 옮겼다. 부엌에 가려던 목적 같은 것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방으로 돌아온 서연은 이불 속에서 몸을 떨며, 방금 본 광경을 곱씹었다. 피 냄새,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그 아래 감춰진 무언가. '저 사람은 대체 얼마나 많은 밤을 그렇게 홀로 견뎌왔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두려움과는 다른 감정이 가슴 한켠에서 조용히 고개를 들었는데, 서연은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이름 붙일 수 없었다. 분명 무서운 사람이었다. 검을 아무렇지 않게 쥐고, 자객을 지하에 가두어 직접 캐묻겠다 말하는 사람. 그런데 그 등에 새겨진 상처들을 떠올리면, 서연의 가슴이 이상하게 저릿해졌다. 누가 저 상처들을 하나하나 소독해 주었을까. 그가 아플 때, 그 옆에 있어준 사람은 있었을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서연은 결국 잠들지 못한 채 새벽을 맞았다. 창밖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올 무렵, 눈을 감았다 뜨면 밤새 있었던 일이 전부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코끝에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은 피 냄새가 그것이 현실이었음을 자꾸 상기시켰다. 다음 날 아침, 서연의 방문 앞에 낯선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누가 두고 갔는지 알 수 없어, 서연은 한참을 문 앞에 서서 그 상자를 내려다보았다. 조심스레 상자를 열자, 안에는 은은한 나무 향이 나는 연고와, 상처에 좋다는 약초 몇 가지가 담겨 있었는데, 누가 갖다 두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서연은 손끝으로 연고 병을 만지며, 어젯밤 강혁의 등을 떠올렸다. '설마.' 그 생각이 들자마자 서연은 스스로도 어이없어 고개를 저었지만, 상자를 도로 문밖에 내놓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대체 이걸 누가, 무슨 뜻으로 가져다 두었는지. 서연은 상자를 품에 안은 채,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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