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팔려갔더니 흡혈귀 영주라니

3화

소문은 눈덩이처럼 빠르게 커졌다. 처음엔 그저 저 아이가 남들과 좀 다르다는 정도의 수다였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마녀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마녀. 그 두 글자가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걸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걸 느꼈는데, 이건 진짜 위험한 신호라는 걸 서른두 살 서은채의 직감이 즉각 경보를 울렸다. 회사 다닐 때도 이런 감이 오면 십중팔구 사고가 났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고가 아니라 목숨이 걸린 문제라는 게 다를 뿐이었다. "저 아이가 병을 옮긴다드라." "아니, 병을 낫게도 한다니까. 그게 더 이상한 거여." "둘 다 맞겠지. 마녀라는 게 그런 거 아녀?" 이런 대화들이 우물가에서, 밭머리에서, 저녁 밥상머리에서 오르내리는 걸 나는 몇 번이나 우연히 엿들었다.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다. 애들 장난 같은 소리려니 했다. 그런데 같은 말이 반복해서 들리기 시작하니, 이게 단순한 뒷담화가 아니라 마을 전체의 여론이 굳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해가 안 됐다. 나는 그냥 사람을 살리려고 한 건데, 왜 이게 마녀 짓으로 둔갑하는 건지. 개연성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이 세계의 논리는 내 상식과 애초에 다른 궤도를 돌고 있었다. 여기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라는 걸 몇 번이나 되새겨야 했다. 아버지는 처음엔 그 소문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우리 딴 사람 자식이 무슨 마녀냐, 그냥 야무진 거지." 그렇게 웃어넘기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까지 했다. 그 손길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리다. 그런데 소문이 마을 촌장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촌장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상한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고, 특히 유행병으로 마을 전체가 흔들린 뒤라 더욱 그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에는 항상 원흉이 필요했고, 나는 그 원흉으로 지목되기에 딱 맞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병을 고쳤다는 사실 자체가, 병을 안다는 뜻으로 둔갑해버렸으니까.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나면 대체 뭘 어떻게 해도 죄인이 되는 구조 아닌가. "그 아이를 데려와보게." 촌장이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걸 전해 들은 날, 나는 부엌 구석에 앉아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느끼며 어떻게 이 상황을 빠져나갈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도망칠까? 어디로? 이 몸으로, 이 세계에서, 갈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지도도 없고,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다. 부모를 배신하고 혼자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최대한 무해하고 순진한 아이처럼 보이는 것.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인 척. 손이 벌벌 떨리는 걸 참으며, 나는 몇 번이나 속으로 대본을 짰다. 질문이 이렇게 나오면 이렇게 대답하고, 저렇게 나오면 저렇게 받아치고. 서른두 살 인생에서 배운 게 있다면 위기 앞에서는 대본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촌장 앞에 서던 날,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애써 감추며 최대한 순박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 근육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저는 그냥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흉내 낸 것뿐이에요." 목소리가 떨렸는데, 이건 연기가 아니라 진짜 두려움이었다. 촌장은 나를 한참 노려보다가 낮게 물었다. "그게 다냐?" "네, 그게 다예요." 나는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순진한 얼굴을 유지하려 애썼다. 속으로는 제발, 제발 이걸로 넘어가라, 라고 빌면서. 결국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날은 그냥 돌려보냈다. 나는 그 순간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촌장의 눈빛이 그렁그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저건 의심을 거둔 눈빛이 아니라, 잠시 미뤄둔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정확했다. 며칠 뒤, 또 다른 이웃집 아이가 열병으로 죽었고, 그 집 어머니가 나를 지목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저 아이가 저주를 내린 거여! 내 새끼를 저 아이가 죽였어!" 이성적으로 따지면 완전히 말이 안 되는 논리였다. 내가 그 집 근처에 간 적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공포에 질린 사람들에게 이성은 통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 앞으로 몰려들었고, 낫이며 몽둥이 같은 걸 든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의 눈빛 속에서 처음으로 진짜 살의를 느꼈다. 하늘이 노래진다는 표현이 딱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그 짧은 틈에도 스쳐 지나갔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고, 등줄기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이런 게 진짜 죽음의 공포라는 건가, 하고 자문할 여유조차 사치스러웠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버지는 문 앞에 서서 팔을 벌리며 사람들을 막았고, 어머니는 나를 등 뒤로 밀어넣으며 울부짖었다. "우리 애는 그런 짓 안 했어! 제발 믿어줘!" 그러나 마을 전체의 분노를 개인이 막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사람들 숫자는 점점 늘었으며, 우리 집 담벼락 너머로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이대로면 정말 죽는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하얗게 채웠다. 촌장과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곽만석이 사람들 앞으로 걸어 나왔다. "거, 소란 피우지 말고." 곽만석이 걸걸한 목소리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덩치가 크고 얼굴에 흉터가 있는 남자였는데, 그 존재감 하나로 사람들의 기세가 순간 꺾이는 게 느껴졌다. "이 아이, 내가 사가겠소. 그럼 되겠지?" 그 말에 마을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죽이는 것보다는 팔아넘기는 게 그들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방법이었으니까. 나는 그 순간 이 사람들의 계산이 눈에 보여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냐, 사람 목숨이 무슨 물건 값 흥정이냐. 그런데 그 흥정 덕분에 내가 살 수 있다는 게 더 웃긴 아이러니였다. 촌장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나는 내 운명이 결정되는 소리를 들었다. "안 돼, 우리 딸을 왜 팔아!" 어머니가 울며 매달렸지만, 곽만석은 냉정하게 은화 몇 개를 아버지 손에 쥐여줬다. 짤그랑거리는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버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돈을 받으면서도 아버지는 몇 번이나 나를 돌아봤는데, 그 눈빛에 담긴 건 미안함과 안도감이 뒤섞인,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나는 그 순간 화가 나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화보다 먼저 든 감정은 이해였다. 이렇게라도 팔려가는 게, 마을 사람들 손에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아버지도 나만큼이나 이 상황이 지옥 같았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아주 조금. 곽만석의 마차에 실려 두촌을 떠나던 날, 나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어머니는 여전히 울고 있었고,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으며, 남동생은 그 소란의 의미도 모른 채 그냥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조그만 손짓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저 애는 내가 마녀라서 팔려가는 게 아니라, 그냥 어디 먼 곳으로 심부름 가는 줄 아는 걸까. 그런 무지가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마차 안에서 내가 묻자, 곽만석은 짧게 대답했다. "성 앞에 노예 경매가 열린다드라. 운이 좋으면 좋은 데 팔릴 거고, 운이 나쁘면..." 그는 말을 흐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그 뒷말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좋은 데, 라는 말이 대체 이 세계에서 뭘 의미하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봐도 곽만석이 친절하게 설명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마차를 모는 데만 관심이 있는 듯,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마차가 흔들리는 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계획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이제 두촌에서의 조용한 삶은 끝났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무조건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누구의 시선도 끌지 말고, 순응하는 척하며, 서은채라는 존재를 최대한 지워야 한다. 병을 고치는 재주도, 남들과 다른 지식도, 전부 깊숙이 파묻어야 한다. 그게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나는 그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다짐했다.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쥐면서,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 그 다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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