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남편의 지나친 사랑

2화

저택 안으로 들어선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복도 양쪽으로 늘어선 꽃, 그것도 계절에 맞지 않는 종류의 꽃들이 화병마다 가득 꽂혀 있었다. 벽에는 새로 걸린 듯한 태피스트리, 바닥에는 반짝이는 새 카펫. 발을 내디딜 때마다 카펫이 푹신하게 내려앉는 느낌이 낯설었다. 이게 다 오늘 준비된 거라고? 결혼식도 조용했는데, 저택은 왜 이렇게 성대한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뭐지, 이 낙차는. 식장에는 손님도 몇 없었으면서, 여기는 사람 하나 들어온다고 이 난리를 친 건가. "방으로 안내하지." 경헌이 앞장서서 걸었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곁눈질로 저택 곳곳을 훑었다. 오래된 저택이었지만 손길이 잘 닿아 있는 곳이었다. 낡은 구석 하나 없이 깔끔했다. 기둥의 나뭇결까지 윤이 나게 닦여 있는 걸 보니, 누군가 이 저택을 정말 오랫동안 정성껏 돌봐온 게 분명했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하녀들이 고개를 숙이며 지나갔다. 다들 나를 보는 눈빛이 이상했다. 신기해하는 것도 아니고, 경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뭔가를 기다려온 사람들 같은 눈빛이었다. 방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멈춰 섰다. 방이 아니라 거의 응접실 세 개를 합친 크기였다. 침대는 내가 평생 본 것 중 가장 컸고, 창가에는 작은 서재까지 마련돼 있었다. 책장에는 이미 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는데, 슬쩍 훑어보니 내가 평소 좋아하던 종류의 책들이었다. 우연인가. 옷장을 열어보니 이미 옷이 가득 걸려 있었는데, 하나같이 최고급 원단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색깔도, 소매 길이도, 다 내 취향에 맞춰진 것 같아서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이 정도면 우연이 아니라 조사한 거잖아.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다시 맞추라고 할 테니 말해." "……이 정도로도 충분한데요." 충분하다니, 이건 과분한 거지. 대체 뭘 상상한 거예요, 나한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잖아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괜히 튀는 소리를 해서 좋을 게 없다는 계산이 먼저 섰다. 이 결혼, 어차피 오래 갈 것도 아니고. 조용히 지내다가 조용히 빠져나가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경헌은 내 대답에 미간을 살짝 좁혔다. 만족스럽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더 필요한 게 생기면 언제든 말해. 부인이 필요로 하는 건 뭐든 준비할 거니까." 부인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렸다. 결혼한 지 몇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저렇게 자연스럽게 부르는 게 이상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단어를 준비해 온 사람처럼. 발음도, 억양도, 마치 몇 번이나 연습한 사람 같았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캐물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날 저녁, 저택의 여종 시장이라는 노명자라는 여인이 나를 찾아왔다. 중년의 여인이었는데, 눈빛이 유독 다정했다. 손등에 주름이 많은 걸 보니 이 저택에서 오래 일한 사람이라는 게 짐작이 갔다. "부인, 뭐 필요한 거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나리께서 워낙 신경을 많이 쓰셔서요."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게……." "이 저택 살림살이가 원래는 이렇게 화려하지 않았거든요. 부인 오시기 전부터 나리가 계속 새로 사들이라고 하셔서, 저희도 좀 정신이 없었답니다." 노명자가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 뒤에 살짝 걱정이 섞여 있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웃는 얼굴인데 눈은 웃지 않는, 그런 얼굴. "얼마나 전부터요?" "그게…… 꽤 오래됐죠. 반년쯃 됐나." 반년. 결혼 얘기가 나온 게 언제였는지 떠올려봤다.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혹시 나리께서, 저를 아세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눈빛이 계속 마음에 걸려서였다. 마치 오래 기다려온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눈빛. 노명자는 잠시 멈칫했다.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괜히 다시 접었다가 펼쳤다가 했다.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대답을 흐리는 게 더 수상했다. 뭔가 알고 있는데 말하지 않는 느낌. 이 저택에 들어온 지 반나절도 안 됐는데, 벌써 비밀이 몇 개나 쌓인 기분이었다. 집사인 박덕수라는 노년의 남자도 비슷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를 보는 눈빛에 은근한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앓던 병이 나은 사람의 얼굴 같았다. "부인께서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다행이라니, 그게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이 저택 사람들 전부가 뭔가를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느낌이었다. 다들 나를 보며 안심하는데, 나는 오히려 불안해지는 이 이상한 상황. 식사 자리에서 경헌은 계속 내 접시를 살폈다. 내가 먹는 걸 하나하나 지켜보다가, 조금이라도 손을 덜 대면 바로 물었다. "입맛에 안 맞아?" "아니요, 괜찮아요." "그럼 왜 안 먹어." "먹고 있는데요……." 숟가락을 들어 보이며 항변했지만 그는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내 접시를 훑었다. 이 사람 원래 이런 성격인가, 아니면 나한테만 이런 건가. 뭐가 됐든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밥 한 숟갈 먹는데 감시당하는 기분이라니. 밥을 먹다가 문득 그가 낮게 웃는 소리를 들었다. 웃을 때 눈꼬리가 살짝 내려가고, 광대뼈에 있는 작은 점이 도드라졌다. "뭐가 그렇게 재밌으세요?" "아니, 그냥. 예전 생각이 나서." 예전이라니, 그게 언제를 말하는 건지 물어보려는데 그는 이미 다른 얘기로 넘어가 있었다. 그 순간의 미소가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방금 그 표정, 처음 만난 사람을 보는 표정이 아니었는데. 이 사람은 대체 나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식사가 끝날 때까지 나는 몇 번이나 그의 얼굴을 흘끔거렸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국을 뜨고, 물을 마시고, 가끔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나는 계속 내 접시로 눈을 돌렸다. 이런 걸 두고 살 떨리는 신혼이라고 하나, 아니면 감시당하는 죄수라고 하나. 방으로 돌아온 후에도 낮에 봤던 사람들의 눈빛이 자꾸 떠올랐다. 노명자의 흐린 대답, 박덕수의 안도감, 경헌의 알 수 없는 웃음. 다 조각조각인데, 하나로 이어붙이면 뭔가 큰 그림이 나올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노명자가 다시 방에 들어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부터 평소와 달랐다. 조심스럽고, 낮고, 누가 들을까 신경 쓰는 듯한 소리였다. "부인, 이건 좀 이상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요……." 그녀의 표정이 유독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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