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설곰이 파혼녀를 주웠다

5화

대전을 빠져나온 뒤에도 이서준의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는데, 그것이 조금 전의 대치 때문인지, 아니면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제안 때문인지는 스스로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었다. 궁의 겨울은 유난히 조용해서, 발소리마저 눈에 먹혀 사라지는 듯했다. 그는 후원으로 향하는 회랑을 걸으며, 방금 대전에서 벌어진 모든 일이 여전히 현실감 없이 느껴진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대전의 문이 닫히던 그 순간의 무게가, 아직도 어깨 위에 얹혀 있는 것 같았다. 도상현 경은 왕비의 제안을 즉시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다온국 왕과의 협의를 서둘러 진행하겠다는 뜻을 조심스럽게 밝혔는데, 그 침착한 태도 뒤에는 딸을 보호하려는 절박함이 감춰져 있었다. 다온국의 사절로서 그가 오늘 겪은 굴욕은, 단순히 외교적 실수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의 굴욕을 씻어낼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설령 급작스러운 새 혼약이라 할지라도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딸의 얼굴에 남을 상처보다, 가문에 남을 상처를 먼저 계산하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이서준은 회랑 끝에서 걸음을 멈추고 눈 덮인 후원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정원의 나무들이 하얗게 얼어 있었는데, 가지마다 얼음이 맺혀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낮게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그 풍경이 오늘 대전에서 도윤서가 견뎌낸 침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얼어붙은 채로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그러고 보니 그렇게 되었구나. 자신이 오늘 나서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스쳤다.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때 왕비가 회랑으로 다가왔다. 발소리가 유독 조용해서, 이서준은 그녀가 곁에 설 때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아들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불편해 보이는구나." "어머니." 이서준이 낮게 불렀다. "그런 제안을, 그렇게 갑자기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갑자기가 아니었다." 왕비가 답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네 혼담을 정리할 방법을 오래전부터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 그 기회가 왔을 뿐이지." "기회라고요." 이서준이 되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 "제 혼담이 매번 깨진 이유를 어머니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 얼굴, 이 체격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곰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 말을 하면서 이서준은 스스로도 놀랐다. 오래전에는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참지 못했는데, 이제는 무심하게 흘러나올 만큼 익숙해져 있었다. 설곰이라는 별명이 처음 붙었을 때는 분노했고, 다음에는 부정했고, 이제는 그저 인정했다. 그 변화가 성장인지 포기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왕비가 물었다. "그 여인도 너를 그렇게 볼 거라 생각하니?" 그 물음에 이서준은 답하지 못했다. 도윤서의 침묵을, 그 견딤의 방식을 떠올리면 왠지 그녀는 다르게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곧 스스로 그 생각을 지웠다. 결국 다들 똑같았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다가왔다가, 예의상 몇 번의 자리를 함께하고, 결국은 이 거친 외모 앞에서 물러났던 여인들. 어떤 이는 편지로 거절을 알렸고, 어떤 이는 아예 얼굴을 비추지 않은 채 파혼을 통보해왔다. 도윤서도 그 명단에 하나 더해질 뿐일지도 몰랐다. "저는 강압적으로 혼약을 성립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이서준이 말했다. "그 여인은 오늘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강요당했습니다. 저까지 그 위에 무언가를 더 얹고 싶지는 않습니다." 왕비는 잠시 아들을 바라보다가, 뜻밖에도 부드럽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오랜만에 보는 온기가 있었다. "그 마음이면 됐다. 강요할 생각은 나도 없단다. 다만." 왕비가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그녀의 눈빛이 순간 멀어지는 듯했다. "노강 선정왕이 이 일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거야." "무슨 뜻입니까."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왕비가 말했다.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될 거다. 지금은 다만, 오늘 네가 나선 그 행동이 단순한 항의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만 알아두어라."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서준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어머니의 눈빛 속에 스쳐 지나간 그림자가, 오랫동안 묻어둔 무언가의 무게를 담고 있다는 것만은 느껴졌다. 그는 더 묻고 싶었지만, 왕비는 이미 몸을 돌려 회랑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뒷모습이 눈발 사이로 흐릿해질 때까지, 이서준은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청연국 사절단이 머무는 객사로 도상현 경이 찾아왔다. 눈은 낮부터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었고, 객사의 처마 끝에는 이미 고드름이 맺혀 있었다. 도상현 경은 딸의 미래를 두고 다온국 왕과의 연락이 이미 오가고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전했는데, 그 말투는 지나치게 공손해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예의라는 갑옷을 두 겹 세 겹 걸치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는 말끝에 이서준을 향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졌다. "왕자님은, 정말로 제 딸을 받아주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그 질문에는 묘한 무게가 있었다.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패를 앞에 두고 상대의 손을 살피는 도박꾼의 눈빛 같은 것이 도상현 경의 얼굴에 스쳐 있었다. 이서준은 그 물음에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거친 외모와 설곰이라는 악명이 결국 그녀의 거절을 부를 것이라는 오래된 두려움이 다시 목구멍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는 것이 느껴졌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눈이 그치지 않고 내리고 있었고, 그 눈발 사이로 도상현 경의 대답을 기다리는 눈빛이 흔들림 없이 그를 향해 있었다. 마치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이 방 안의 공기마저 서서히 얼어붙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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