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신탁의 표식을 받았다는 소식은 사흘 만에 수도 전체로 퍼졌다.
말이 참 빠르다. 원래 이런 소문은 발이 열 개는 달렸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번지는데, 신전이랑 관련된 일이니 더했겠지.
채원은 그저 신기해하며 웃었다.
"언니, 신관님이 그러시는데 이런 표식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대요. 저도 처음엔 무슨 얼룩인가 했는데."
손등에 새겨진 옅은 문양을 들여다보며 채원은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면서. 나는 그 웃음을 보는 게 점점 불편해졌다.
왜 불편한지 처음엔 나도 잘 몰랐다. 그런데 곧 알게 됐다.
"청하 자작댁 영애가 신전의 총애를 받았다더군요." "신탁의 표식이 나타난 게 벌써 몇십 년 만이라던데." "한백작가 도련님과 인연이 있다는 말도 있어요."
다과회마다 그런 말들이 오갔고, 채원은 그 자리마다 초대받았다. 초대장이 하루에도 서너 통씩 날아들었다. 어떤 건 필체부터 화려했고, 어떤 건 향까지 입혀 보낸 것도 있었다.
인기라면 인기였다. 갑자기 유명해진 시골 사촌 동생. 원래도 예쁘고 착한 아이였으니 사람들이 좋아할 만도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인기의 뒷면이 자꾸 눈에 밟혔다.
사람들이 채원을 볼 때, 그 시선 속에는 호기심 말고 다른 것도 섞여 있었다. 계산. 그래, 그건 분명히 계산이었다. 누구는 채원을 통해 신전과의 연을 만들고 싶어 했고, 누구는 채원이 어느 가문 쪽으로 붙을지 미리 점을 찍어두고 싶어 했다.
채원은 그걸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도.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표식을 받은 지 열흘쯤 되던 날, 나는 정원에서 우연히 그 장면을 봤다.
그날은 볕이 좋아서 산책이나 할까 하고 나온 거였다. 별생각 없이 회랑 쪽으로 걷다가,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서 발을 멈췄다.
채원이 회랑 구석에서 낯선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대여섯 명쯤 됐던가. 겉으로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지만, 뭔가 이상했다.
채원의 손이 부채를 쥔 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떨림을 보는 순간 걸음을 늦췄다. 목소리를 낮추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윤 양께서는 참 운이 좋으시네요. 신탁까지 받으시고." 한 여인이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에는 날이 서 있었다. 부채로 입가를 가렸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혹시 정혼자라도 미리 정해두신 건 아니고요? 신탁의 총애를 받은 몸으로 함부로 마음을 주시면, 신전 쪽에서 곤란해하실 텐데."
다른 여인이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그러고 보니 한백작댁 도련님과 자주 마주치신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어머, 그런 얘기가 있었나요? 저는 못 들었는데." 첫 번째 여인이 짐짓 놀란 척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이미 답을 알고 던지는 질문 특유의 여유가 있었다.
채원은 당황한 얼굴로 대답을 못 했다.
"저는, 그런 건……" 말끝이 흐려졌다. 부채를 쥔 손끝이 하얘질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걸음을 멈췄다.
저건 그냥 다과회 잡담이 아니었다. 웃는 얼굴로 하는 말이라고 다 친절한 건 아니다. 저건 경고였다. 채원에게 한지혁 쪽에 다가가지 말라는, 혹은 누군가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라는 경고.
누가 시킨 걸까.
여인들의 옷차림이나 장신구를 보니 그리 낮은 가문은 아니었다. 저들끼리 온 것도 아닐 텐데, 저렇게 몰려서 채원 하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림이 벌써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원래 이런 일에 끼어드는 사람이 아닌데. 나는 늘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살아왔는데. 남의 다과회에 끼어들어서 좋은 소리 들을 리도 없고, 오히려 내 얘기가 하나 더 얹혀서 소문이 커질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는데.
그런데 그날은 발이 먼저 움직였다.
"채원아, 여기 있었구나. 어머니가 찾으셔."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채원의 팔을 잡아끌었다. 목소리는 최대한 태평하게, 방금 산책 나온 사람처럼.
여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렸다. 부채 뒤에서 눈빛들이 재빠르게 오갔다.
"이서윤 양이시군요. 두 분이 사촌이시라고요?" 한 여인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목소리엔 은근한 탐색이 배어 있었다.
"네, 그런데요." 나는 짧게 대답하며 채원을 데리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더 이상 말을 섞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등 뒤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좋은 뜻은 아니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저런 웃음은 늘 뒷말을 준비하고 있는 웃음이다.
"언니, 무슨 일이에요?" 채원이 걸으면서 물었다. 아직 얼굴에 놀란 기색이 남아 있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건 아무 일도 아닌 게 아니었다.
채원이 눈치 없는 애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저 자리에서는 그냥 웃고 넘기려던 걸 보면, 이런 종류의 압박이 그날 처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지금 물어봐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채원 얼굴이 아직도 하얗게 굳어 있었으니까.
그날 밤, 나는 이도윤 오라버니의 서재를 찾아갔다.
오라버니는 문관이라, 이런 정치적인 기류를 나보다 훨씬 빠르게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다가 나를 보고는 붓을 내려놓았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채원이 신탁의 표식을 받은 뒤로, 이상한 압박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오늘 회랑에서 본 걸 그대로 옮겼다. 여인들의 말투, 채원의 떨리던 손, 그 웃음소리까지.
오라버니는 서류를 내려놓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네가 그런 걸 눈치챌 줄은 몰랐는데."
"놀리실 거면 그냥 나갈게요." 나는 정말로 몸을 돌릴 준비를 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야." 오라버니는 짧게 웃었다. 붉은 머리카락이 등불 아래 흔들렸다. 웃음기가 가시자 목소리가 낮아졌다.
"신탁을 받은 사람은 원래 그래. 표식이 나타나는 순간부터, 그 사람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니게 되거든. 가문들 입장에서는 이용할 수 있는 상징이 되는 거지."
건조한 설명이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수백 번은 해본 말처럼.
"그럼 채원이가 위험하다는 거네요."
"위험이라기보단, 도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오라버니는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등불이 흔들려서 그런지, 그 눈빛이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네가 나설 일은 아니야, 서윤아. 이건 어른들 사이의 문제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어른들 사이의 문제라니. 채원은 이제 열넷인데, 그 어른들이 채원의 손목에 새겨진 무늬 하나를 두고 저마다의 셈을 하고 있는 거였다. 그 셈 속에서 채원의 기분 같은 건 계산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게 뻔했다.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날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돌아와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채원의 떨리던 손, 그 여인들의 웃음, 오라버니의 낮은 목소리가 자꾸 겹쳐졌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규칙을 어겼다.
채원에게 익명으로 편지를 보냈다. 필체를 평소와 다르게, 최대한 흘려서. 다과회 초대장 중에서 특정 몇 개는 절대 응하지 말라고, 이유는 밝히지 않은 채로.
몇몇 이름을 적어 넣었다. 어제 회랑에서 봤던 여인들의 가문, 그리고 그들과 자주 어울린다고 알려진 다른 몇몇 부인들의 이름까지.
그건 그냥, 조용한 경고였다.
나는 그게 어떤 파장을 부를지, 그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