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300년 등대, 그녀만이 고친다

3화

두 달 전, 그날의 왕궁 대연회장은 황금빛 샹들리에 불빛과 현악 선율로 가득 차 있었으나, 강서율에게는 그 화려함이 오히려 자신을 더욱 작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수백 개의 촛불이 천장에서 쏟아지듯 빛을 흩뜨리고, 바이올린의 선율이 대리석 바닥을 타고 미끄러지듯 퍼져 나갔지만, 서율의 눈에는 그 모든 광경이 마치 유리 너머의 풍경처럼 아득하게만 비쳤다. 그녀는 구석 기둥 옆에 서서,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몸이 조금씩 굳는 것을 느꼈는데, 그 시선 속에는 늘 같은 말이 담겨 있었다. *저 아이가, 그 백작가의 부족한 영애로군.* 서율은 그 말을 직접 들은 적은 없었지만, 사람들의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부채 뒤로 가려진 입술, 은근히 곁눈질하며 주고받는 웃음, 그리고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살짝 낮아지는 목소리의 톤—그 모든 것이 하나의 문장을 이루고 있었다. 왕세자 이도현과의 혼약이 성립된 이후 삼 년 동안, 그녀는 사교계의 규범을 따라가려 애썼으나 늘 한 발짝씩 늦었고, 화술도 무도도 서투른 채로 남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춤을 청받아 발을 맞출 때면 박자를 놓쳐 상대의 구두코를 밟기 일쑤였고, 정중한 인사말을 건네야 할 순간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엉뚱한 침묵만 흘렀다. 그런 순간마다 사람들은 부드럽게 웃으며 넘어가 주었지만, 그 웃음의 결이 서율에게는 비웃음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그날 밤, 연회는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왕세자 이도현이 서율의 손을 잡고 연회장 한복판으로 이끌었을 때,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쏠렸다. 서율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발을 옮겼으나, 몸에 익지 않은 스텝은 어김없이 삐끗거렸고, 결국 그의 발끝을 스치듯 밟고 말았다. 이도현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스치는 냉기를, 서율은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는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소." 그 말은 짧았지만, 서율의 귓가에 오랫동안 남아 메아리쳤다. 주변의 음악은 멈추지 않았고, 사람들의 시선도 여전히 그녀에게 머물러 있었지만, 서율은 그 순간 자신이 연회장의 화려한 빛 한가운데서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고, 그 자리를 벗어나 마차에 오를 때까지도 뺨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서율은 방 안의 낡은 마도구 거울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 거울은 백작가에 전해지던 오래된 물건으로,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 있었지만 아직도 사람의 형상을 흐리게나마 비추는 기능을 잃지 않고 있었다. 방 안은 촛불 하나만이 밝혀져 있어,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흔들리는 빛을 따라 일렁이듯 왜곡되었다. 서율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화장기 없는 낯빛과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두 개의 서로 다른 얼굴이 겹쳐 보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하나는 사교계가 원하는 완벽한 영애의 얼굴이었다. 부드럽게 굽이치는 곡선의 미소, 우아하게 내려앉은 시선, 남의 말을 경청하는 척하는 침묵. 그러나 그 얼굴은 서율에게 늘 낯설었고, 아무리 오래 연습해도 제 것이 되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게 겉돌았다. 마치 남의 살갗을 빌려 쓴 것처럼, 조금만 움직여도 뒤틀리고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다른 하나는 손끝에 기름때가 묻은 채로 낡은 태엽과 마정석을 매만질 때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만이 서율에게는 진짜처럼 느껴졌는데, 그것은 파괴된 물건들이 내는 미세한 음성—끊어진 태엽이 삐걱이는 소리, 균열이 번지기 직전의 낮은 떨림—을 들을 수 있는 그녀만의 능력과 맞닿아 있었다. 그 능력은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비밀이었다. 어릴 적, 유모의 손이 닿아 부서졌던 오르골을 서율이 다시 조립해 냈을 때,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손끝에 닿는 낡은 부품들이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며 호소하는 듯했고, 그 미세한 진동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가 어긋났는지, 무엇이 부족한지가 마치 그림처럼 눈앞에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그 재능은 백작가의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영애가 손에 기름을 묻히고 다니는 것은 체통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어머니는 늘 눈살을 찌푸렸고, 아버지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서율은 거울에 손끝을 가져다 대며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저런 얼굴로 살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런 손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그 물음에는 답이 없었다. 다만 거울 표면의 균열이 그녀의 손끝에 닿는 순간, 아주 희미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마치 오래된 물건이 낡은 주인에게 무언가를 호소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서율은 숨을 죽이고 그 미세한 떨림에 귀를 기울였다. 균열을 따라 흐르는 진동은 마치 오래전에 잊혀진 노래의 한 소절 같았고, 그 소절이 반복될수록 서율의 손끝도 함께 떨려 왔다. 그녀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이 사교계에서 얻지 못한 인정을 어쩌면 이 낡은 물건들에게서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품었다. 그날 이후 며칠, 서율은 방 안에 틀어박혀 백작가에 굴러다니던 고장 난 마도구들을 하나둘 손보기 시작했다. 오래도록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회중시계는 태엽이 삭아 있었으나, 서율의 손끝을 거치자 다시 규칙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낡은 등롱은 마정석이 거의 다 닳아 희미하게만 빛을 내던 것이 서율의 조율을 거쳐 다시 은은한 빛을 되찾았다. 그녀는 밤이 깊도록 촛불 아래 앉아 부품을 매만지며, 그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만큼은 연회장에서 느꼈던 수치심도, 이도현의 차가운 목소리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손끝에 스며드는 기름때와 미세한 진동만이 그녀에게 유일한 언어처럼 느껴졌다. 하녀들은 처음에는 영애의 이런 행동을 수상히 여겼으나, 곧 그것이 나쁠 것 없는 소일거리라 여기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소문이란 것은 아무리 조심스레 감추어도 어디선가 새어 나가는 법이었다. 그 소문이 어디서부터 새어 나갔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열흘도 지나지 않아 청하 변경백의 이름으로 된 서찰 한 장이 백작가에 도착했다. 서찰을 전한 사자는 정중한 태도로 예를 갖추었으나, 그 눈빛 속에는 은근한 호기심이 감추어져 있었고, 백작가의 사용인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그 서찰의 내용을 궁금해했다. 서율은 그 서찰을 손에 쥔 채, 낡은 거울 속 자신의 두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촛불의 흔들리는 빛을 따라 거울 속의 얼굴도 조금씩 흔들렸는데, 그것이 사교계가 원하는 얼굴인지, 아니면 손끝에 기름때를 묻힌 얼굴인지 서율 자신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서찰의 봉인을 매만지며, 그 안에 담긴 것이 자신의 삶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지 알 수 없다는 불안과 동시에, 알 수 없는 기대가 가슴 깊은 곳에서 조용히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진짜로 서 있어야 할 자리일지도 몰라.* 서율은 그 생각을 끝으로 서찰의 봉인에 손끝을 가져다 대었다. 두꺼운 밀랍 위에 새겨진 변경백가의 문장이 촛불 아래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 낯선 문양을 바라보는 서율의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어려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 서찰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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