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밥상 위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릇에서 김이 올라오다 이내 사그라들었다. 국은 벌써 식어가고 있었지만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다.
아버지 강태오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탁.
나무 젓가락이 상 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도현아."
"예, 아버지."
"너는 이번 달로 본가에서 나가거라."
숨이 턱 막혔다.
삼 년째 검을 잡았지만 내공 한 줌 모으지 못한 자식이었다. 상단의 셋째 아들이면서 무공은 하인보다 못했다. 새벽마다 마당에서 검을 휘둘렀지만, 남는 것은 팔의 근육통뿐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창고지기 자리라도 있으면 감사히 여겨야 할 처지지."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노기도 실망도 없었다. 그저 사실을 나열하는 담담함뿐이었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아팠다.
누나 강서윤이 조용히 밥을 삼켰다. 시선은 상 위 어딘가에 고정된 채, 아무 말도 얹지 않았다. 그녀다운 방식이었다. 나서서 편들지도, 나서서 나무라지도 않는.
막내 강나은만이 눈치 없이 젓가락을 두드렸다. 탕탕. 장단이라도 맞추는 것처럼.
"오라버니, 그럼 이제 창고에서 사는 거예요?"
"그런 셈이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창고면 곡식이 많으니 배는 안 곯겠네요."
밥상 위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버지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저런 상황에서까지 끼니 걱정을 하는 자식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눈썹이 미세하게 좁혀졌다가, 이내 포기한 듯 풀렸다.
"...그래. 마음대로 하려무나."
"쌀은 창고지기가 마음대로 퍼가도 되는 겁니까?"
"...."
아버지는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밥그릇은 반도 비지 않은 채였다.
식사가 끝난 뒤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마루 밑에서 풀벌레 우는 소리가 낮게 이어졌다.
이불을 펴놓고도 눕지 않았다. 벽에 등을 기댄 채 무릎을 세우고 앉아, 천장의 나뭇결을 오래 바라보았다.
4년 전, 나는 어느 노인의 부름을 받아 이곳에 떨어졌다. 현암 장로라 불리던 사내였다. 마황이라는 것이 십 년 후 세상을 뒤덮는다고 했다. 그것을 막을 자가 나여야 한다고 했다.
그날의 기억은 이제 흐릿하다. 얼굴도, 목소리도 안개 속에 있는 듯했다. 확실한 건 단 하나, 시간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십 년 중 사 년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내공 한 줌 쥐지 못한 채, 상단의 골칫거리 셋째 아들로 남아 있었다. 검을 든 지 삼 년이 지났지만 몸속에서는 아무런 기운도 돌지 않았다. 그 사실이 가장 두려웠다. 남들은 그저 재능 없는 자식이라 여기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촉박한지, 그리고 내가 지금 얼마나 무력한지.
나은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오라버니, 옛날이야기 해줘요. 마황 이야기."
"싫다는데도 매번 묻는구나."
"싫어요! 무서운 거 안 들을래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눈을 반짝였다. 작은 손이 내 옷깃을 붙잡았다.
나는 짧게 몇 마디를 지어냈다. 어둠 속에 사는 커다란 짐승이 있었고, 언젠가 용감한 무사가 그것을 물리쳤다는, 어디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였다. 진짜 이야기는 꺼낼 수 없었다.
나은이 잠들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어린 동생의 숨소리를 들으며,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십 년 뒤에는 어떻게 변할지 가늠해보았다.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짐을 싸서 창고로 향했다.
짐이라 해봐야 옷가지 몇 벌과 낡은 검 한 자루뿐이었다. 봇짐은 가벼웠고, 발걸음은 그보다 더 가벼웠다.
본가 뒤편, 오래전부터 쓰지 않는 낡은 창고였다. 지붕 한쪽이 내려앉아 비가 새는 자리도 있었고, 문짝은 삐걱거리며 겨우 매달려 있었다.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곡식 부대들이 벽을 따라 쌓여 있었다. 쥐가 파먹은 흔적이 여기저기 보였다. 봇짐을 내려놓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 한구석에 낡은 궤짝이 놓여 있었다.
크기는 작았지만 유독 눈에 걸렸다. 다른 세간들과 달리 먼지가 덜 앉아 있었다.
자물쇠는 녹슬어 있었지만, 그 위에 새겨진 문양이 낯설었다. 달과 검이 겹쳐진 모양이었다.
무릎을 굽혀 궤짝 앞에 앉았다. 손끝으로 문양을 따라 그려보았다.
손을 대는 순간, 손끝이 저릿했다.
전류가 스치듯 팔뚝까지 타고 올라왔다. 놀라 손을 떼려 했지만, 손가락은 오히려 궤짝에 더 붙었다.
무언가 그 안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