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환생 황자의 만렙 무공

2화

2화. 소고기 삼십 인분 다음 날부터 몸이 이상해졌다. 아침에 죽 한 그릇을 먹었는데 한 시간도 안 돼서 배가 등가죽에 붙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그냥 허기인가 했다. 그런데 위장이 아니라 뼈 속에서부터 뭔가가 빨려나가는 감각이었다. 손끝이 시리고 눈앞이 살짝 흔들렸다. 춘심이 놀란 얼굴로 다시 죽을 내왔고, 나는 그걸 삼십 초 만에 비웠다. 그리고 또 배가 고팠다. "마마, 어제까지도 미음 반 그릇도 겨우 넘기셨는데..." 춘심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 있었지만 나는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위장이 텅 빈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인 갈증 같은 게 온몸을 지배했다. 회사 다닐 때 폭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습관이 있었지만 이건 그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뭔가를 요구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배터리가 다 된 휴대폰을 억지로 충전기에 꽂아놓은 것 같은, 채워지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이상한 갈증. 죽 세 그릇을 더 비우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됐다. 그런데 그것도 반나절이었다. 오후가 되자 다시 그 갈증이 시작됐고, 이번엔 더 심했다. 손이 떨릴 정도였다. "이러다 굶어 죽는 게 아니라 처먹다 죽겠네." 혼자 중얼거리다가도 웃음이 안 나왔다. 진짜였으니까. 결국 소고기를 시켰다. 궁중 요리사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 얼굴로 물었을 때, 나는 그냥 삼십 인분을 달라고 했다. "저, 대황자 전하... 삼십 인분이라 하셨습니까? 서른 명이 아니라, 전하 혼자서...?" "어. 나 혼자서. 뭐, 문제 있어?" 요리사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했다. 아마 속으로는 이 황자가 드디어 미쳤구나 싶었을 거다. 그런데 나로서도 별 수가 없었다. 안 먹으면 정말로 뭔가 잘못될 것 같은 느낌이 온몸을 짓눌렀으니까.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몸이 뭔가를 향해 비명을 지르는 느낌. 소고기가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는데 그 사이에 벌써 소문이 퍼졌다. 대황자가 미쳤다는 소문이 하루 만에 도는 게 이 궁의 정보력이라면, 나중에 뭔가 큰일이 생겨도 여기 사람들이 제일 먼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씁쓸한 감탄이었다. 상관없었다.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체면은 사치였다. 고기가 들어왔을 때 나는 체면 따질 정신도 없이 손으로 집어 먹었다. 궁녀들이 기함을 하며 젓가락을 가져다줬지만 그마저 느렸다. 서른 인분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채 삼십 분이 안 됐다. 다 먹고 나니 그제야 몸이 좀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배가 부른 게 아니라, 뭔가 임계점을 넘긴 느낌. 밤에 배를 두드리며 누워 있는데 다시 그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배가 안 부르지, 그렇지?' 소름이 돋았다. 처음엔 환청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몸 안 깊은 곳에서 뭔가가 나와 대화하고 있었다. "어. 근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느껴지느니라. 이 몸이... 원래... 그런 몸이니.' "너 뭐야. 이 몸의 원래 주인이야?" '어쨌든... 원래 자리였느니라.' 말투부터 뭔가 흐릿했다. 완전한 문장이 되다 안 되다 했고, 목소리도 자꾸 끊겼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가 안 맞는 것처럼, 어떤 대목에서는 또렷하다가 다음 순간엔 잡음처럼 뭉개졌다. "이름이라도 있어?" 침묵. "야, 있냐고." '...부, 를... 자격이... 아직은...' "뭐야 그건. 자격 심사하는 거야, 지금?" '네놈이 뭘 먹든...상관은... 없다만.' 대화가 이어질 만하면 뚝 끊겼다. 나는 몇 번 더 물어보려 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뭔가 힘이 부족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숨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벽에다 대고 말하는 기분이었는데, 그 벽이 가끔 대답을 하는 거였다. 확실한 건, 이 몸 안에 나 말고 뭔가가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생충처럼 눌러앉은 원래 주인의 잔재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판단이 안 섰다. 원래 이 몸의 주인이었던 이겸의 흔적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었다. 일단은 위협적이지 않으니 넘어가기로 했다. 지금 신경 써야 할 일이 산더미였으니까. 죽지 않는 것부터, 굶어 죽지 않는 것까지. --- 다음 날, 서귀비가 처소로 찾아왔다. 서귀비, 서채린. 이 몸의 생모라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마흔은 훌쩍 넘었다는데 외모는 삼십 대 초반처럼 보였다. 회춘 비법이 궁금해질 정도의 미모였다. 물론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지만, 사람이 위기 상황에서도 눈은 살아 있다는 걸 나는 여기서 배웠다. 궁녀 둘을 물리고 방문을 닫은 뒤에야 서귀비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를 낮췄지만 그렇다고 힘이 빠진 건 아니었다. "몸이 좋아 보이는구나. 다행이다." 서귀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날카롭게 나를 훑었다. 마치 물건을 감정하는 상인 같은 시선이었다. 이 여자, 자기 아들 몸 상태를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투자한 물건의 가치를 재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어제 소고기 서른 인분을 시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그게..." "잘했다." 예상 못 한 대답이었다.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먹어야 산다. 몸이 약해서는 아무것도 못 한다. 이 판에서는." "판이라니, 무슨 판이요?" 서귀비가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삼황자 쪽에서 요즘 자꾸 움직인다. 조승상이 뒤에서 판을 짜는 게 보인다." "조승상이요? 그게 누군데... 아니, 조승상이 뭘 하는데요." 말이 헛나왔다. 이 몸의 원래 기억으로는 당연히 알아야 할 인물인데, 나는 여전히 서귀비 앞에서 아는 척을 하는 것과 모르는 척을 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다행히 서귀비는 크게 의심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조승상은 삼황자의 외조부다. 조정의 절반이 그의 손아귀에 있다. 태자가 흔들리고, 이황자가 어리석고, 네가... 네가 이런 상태이니, 지금이 기회라고 여기는 게지." "네가 곧 무너질 것이라 믿는 판이지." 그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무너진다는 게 정확히 뭘 뜻하는지는 몰랐지만, 좋은 뜻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죽는다는 소리일 수도 있고, 폐위된다는 소리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냥 조용히 사라진다는 소리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예요, 저더러." "살아 있으라는 거다. 그리고 강해지라는 거다." 서귀비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낡은 목갑이었다. 손잡이 부분이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어서, 이게 얼마나 오랫동안 손을 탄 물건인지 짐작이 갔다. 열어보니 안에는 손바닥만 한 책자가 들어 있었는데, 표지에 붉은 글씨로 '용멸패원공'이라 쓰여 있었다. "이걸... 왜 저에게 주십니까?" "네 아버지의 사부께서 남긴 것이다. 원래는 태자에게 갈 물건이었으나, 지금 이 상황에서는 네게 더 필요하겠지." "태자한테 갈 거였다면서요. 그런 걸 왜 저한테..." "태자에게는 이미 다른 것이 있다. 이건 원래부터 네게 왔어야 했다고, 나는 그리 생각한다." 서귀비의 눈에는 확신이 있었다. 자기 아들이 언젠가 이 무공으로 일어설 것이라는 믿음. 그 눈빛을 마주하고 있으니 나는 살짝 죄책감이 들었다. 저 믿음의 대상은 원래 이겸이고, 나는 그 자리를 빌려 앉은 강도윤일 뿐이니까. 이 여자는 자기 진짜 아들이 아니라 그 아들의 몸을 뒤집어쓴 낯선 놈에게 지금 필생의 물건을 넘겨주고 있는 거였다. 그래도 지금은 그 신뢰가 고마웠다. 미안함과 감사함이 동시에 밀려왔지만, 우선순위는 생존이었다. 미안한 건 나중에 갚아도 된다. 일단 죽지 않고 봐야 뭘 갚든 말든 할 거 아닌가. "감사합니다, 어머니." 그 말이 입에서 어색하게 나왔다. 태어나서 처음 써보는 말인데, 이상하게 목이 메었다. 이게 몸의 반응인지 내 감정인지도 헷갈렸다. 서귀비는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을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마라. 그리고... 몸조리 잘하고. 앞으로도 잘 먹어야 한다." 그 말을 남기고 서귀비는 처소를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 서귀비가 나가고 나서 목갑을 열어 책자를 꺼냈다. 종이 질감이 묘하게 서늘했다. 손으로 만지는 순간 눈앞에 익숙한 파란 창이 떴다. [등록된 서책을 감지했습니다. '용멸패원공' — 흡수하시겠습니까?] 나는 몇 초간 멍하니 그 창을 쳐다봤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건 볼 때마다 새삼 어이가 없었다. "이건 또 뭔 시스템이야, 아이템 스캐너야?" [금손가는 세상 만물의 이치를 계산하는 자니, 이런 것쯤 못할까 보냐.] "오타 하나는 못 고치면서 만물의 이치는 계산한다고?" 대답이 없었다. 이 시스템, 은근히 자존심은 있는 모양이었다. 대답할 가치가 없어서 그냥 확인 버튼 같은 걸 눌렀다. 그 순간 눈앞이 하얘지면서 정보가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초식, 심법, 기의 순환 경로까지 통째로. 마치 usb 하나를 뇌에 꽂아서 파일을 전송받는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뇌에 뭘 꽂으면 이런 느낌일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그런 감각이었다. [1단계 습득 완료. 2단계로 진행하시겠습니까? — 비용 : 무료 이벤트 (한정)] 무료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계속 눌렀다. 회사 다닐 때 배운 게 있다면, 무료 이벤트는 놓치는 순간 손해라는 거였다. 나중에 뭔가 청구서가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지만, 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손이 먼저 움직였다. 2단계, 3단계, 4단계, 5단계까지 순식간에 완료됐다. [5단계 습득 완료. 육체 개조 진행 중. 잠시 대기하십시오.] "육체 개조? 야, 잠깐, 그건 좀..." 말릴 틈도 없었다. 그리고 몸속에서 뭔가가 뒤틀리는 감각이 시작됐다. 뼈가 늘어나는 듯한 통증, 근육이 다시 짜여지는 느낌. 마치 몸속의 모든 관절을 누군가 손으로 붙잡고 억지로 재배열하는 것 같았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아팠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을 벌려도 바람만 새어나왔다. 방바닥을 손톱으로 긁었다. 손끝에 감각이 없었다. 눈앞이 번쩍번쩍했다. '이걸 무료라고 해도 되는 거야...'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할 정도의 여유는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억울했다. 이렇게 아플 걸 알았으면 2단계에서 멈췄을 텐데. 그 와중에도, 몸 안 깊은 곳에서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뭘 한 거냐, 넌.' 이번엔 목소리에 확실한 동요가 묻어 있었다. 지금까지 들었던 그 흐릿하고 끊기던 말투와는 달랐다. 또렷했다. 놀란 게 분명했다. '이 기운... 이건... 말도 안 되는...' 목소리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원래처럼 자연스럽게 끊긴 게 아니라, 뭔가에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통증 속에서도 그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이 목소리가 놀랄 정도의 일이 지금 내 몸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네놈, 대체... 그걸 어디서...' 몸이 다시 한번 크게 뒤틀렸다. 이번엔 정신까지 아득해졌다. 눈앞이 완전히 하얘지면서, 나는 그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뭐라고 했는지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정신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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