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나는 노인을 등에 업고 오두막 안으로 옮겼다.
등에 걸쳐진 몸이 너무 가벼웠다.
한 사람의 무게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발끝이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오두막 문을 발로 밀어 열었다.
방바닥에 노인을 눕히고, 이불을 덮었다.
손끝이 떨렸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노인의 얼굴만 들여다보았다.
"할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내 목소리가 낮은 방 안에 부딪혀 되돌아왔다.
노인의 눈이 천천히 열렸다.
흐릿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부엌으로 가 물을 떠왔다.
그릇을 든 손이 자꾸 흔들려 물이 조금씩 넘쳤다.
노인의 입가에 조심스레 그릇을 대고, 천천히 흘려주었다.
목울대가 힘없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한참 뒤에야 노인의 목소리가 겨우 흘러나왔다.
"진호야……"
노인의 목소리는 낡은 종이처럼 갈라져 있었다.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목에서 가는 쇳소리가 났다.
"시험은…… 어찌 되었느냐."
나는 대답을 삼켰다.
말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 사람에게 굳이 무거운 소식을 전할 필요는 없었다.
혼력이 없다는 판정을, 폐물이라는 낙인을, 이 마지막 순간에까지 들려줄 이유는 없었다.
"괜찮았습니다."
노인이 옅게 웃었다.
그 웃음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웃음처럼 보였다.
주름진 눈가가 잠깐 접혔다가, 다시 힘없이 풀어졌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아이가."
노인은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손끝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평생 붓을 쥐고 글을 가르치던 손이었다.
그 손에 온기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나."
"그런 말씀 마세요."
나는 노인의 손을 꽉 붙잡았다.
목소리가 떨렸다.
붙잡은 손을 통해서라도 남은 온기를 붙잡아두고 싶었다.
노인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가슴이 크게 오르내렸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뒷산…… 소나무 세 그루가 있는 곳으로…… 나를 묻어라."
"할아버지……"
"그리고…… 무덤 앞에서…… 절대 울지 마라."
노인의 눈에 옅은 물기가 어렸다.
평생 눈물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노인의 눈가가 젖는 것을, 나는 처음 보았다.
"너는…… 폐물이 아니다. 그것만 기억해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목이 메어 왔다.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입 밖으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노인의 손에서 힘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숨소리가 점점 길어지고, 느려졌다.
그리고 마침내, 멈췄다.
방 안은 조용했다.
창밖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다.
등잔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가, 다시 잔잔해졌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대신 가슴 한복판이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노인의 손을 놓지 못하고, 그 온기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붙잡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노인의 말대로 뒷산 소나무 세 그루가 있는 곳에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혼자 하는 작업이었다.
임가 사람 누구도 도와줄 리 없었고, 나 또한 부탁할 생각이 없었다.
삽 대신 나무 막대와 손을 썼다.
흙을 파낼 때마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그 물집이 터지고, 다시 흙이 파고들어 쓰라렸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노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부탁이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질 때까지 나는 쉬지 않았다.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목이 말랐지만 물을 마시러 갈 시간조차 아까웠다.
해가 저물 무렵, 무덤이 완성되었다.
나는 노인의 시신을 조심스레 안장했다.
흙을 덮는 동안 몇 번이나 손이 멈췄다.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울지 말라던 그 말.
나는 이를 악물고 흙을 덮었다.
한 삽, 한 삽, 흙이 노인의 몸 위로 쌓일 때마다 숨이 막혔다.
그래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무덤 앞에 서서, 나는 오랫동안 그곳을 바라보았다.
노인과 함께한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글을 가르쳐주던 손길.
밥상 앞에서 웃던 얼굴.
혼력이 없다고 슬퍼할 때마다 어깨를 두드려주던 온기.
비 오는 날 처마 밑에서 함께 듣던 빗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이제 흙 아래에 묻혔다.
나는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사방이 어두워질 때까지.
그럼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가슴 안쪽이 계속 아려왔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저녁 무덤을 찾았다.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덜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고, 어떤 날은 혼자 중얼거리듯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무덤 주변의 공기가 다른 곳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처음에는 그저 기분 탓이라 여겼다.
슬픔이 만들어낸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졌다.
소나무 세 그루 아래, 무덤을 둘러싼 공간에서는 이상하게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동시에 그 서늘함 속에는 묘하게 온기 같은 것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그 자리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소나무 잎이 스치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손끝으로 무덤 옆 소나무 뿌리를 만져보았다.
순간, 손끝이 미세하게 저려왔다.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손목까지 타고 올라왔다.
혼력이 없다는 내가,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마른침을 삼켰다.
뭔가 있다.
확신이 들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노인의 무덤 뒤편, 소나무 뿌리 사이로 흙이 살짝 꺼져 있는 구간이 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이곳을 오가면서도 눈치채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매일 같은 자리에 앉으면서도, 정작 그 자리 옆을 제대로 살펴본 적은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그 자리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춘 채, 흙을 손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손톱 밑에 흙이 파고들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손끝의 저린 느낌이 점점 강해졌다.
파낼수록 그 서늘하고도 이상한 기운이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끝에 딱딱한 감촉이 걸렸다.
돌이 아니었다.
표면이 지나치게 매끈했다.
다듬어진 표면.
인공적인 무언가였다.
숨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