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성문 앞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오후 9시 26분이었다.
거대한 철문 두 개가 천천히 열렸다.
안에는 넓은 정원이 있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등불들이 공중에 떠 있었다.
불빛은 파랬다.
초도 아니고 전구도 아닌데, 흔들림 없이 공중에 박혀 있었다.
그 아래로 자갈길이 곧게 뻗어 있었다.
길 양옆으로는 처음 보는 식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잎이 유리처럼 반짝였다.
"따라와."
서태림이 앞장섰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걸었다.
발밑에서 자갈이 밟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망토를 입은 학생들이 지나갔다.
다들 나를 힐끔거렸다.
그 시선이 몸에 닿을 때마다 등이 굳었다.
반지를 낀 손을 소매 속으로 숨겼다.
"저 사람 누구야."
"서태림 교수 뒤에 있는 애."
"소환된 애 아니야?"
"파괴법사라던데."
소문은 벌써 퍼져 있었다.
숲에서 있었던 일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알려졌는지 이해가 안 됐다.
분명 산에서 서태림과 나, 둘뿐이었다.
그런데 벌써 학원 전체가 알고 있었다.
서태림이 낮게 말했다.
"여긴 소문이 빛보다 빠르지."
"그게 무슨 뜻이에요."
"자네가 여기 도착한 순간부터, 마법으로 소식이 퍼져. 벽에도 눈이 있고 바람에도 입이 있어."
그 말이 은유인지 진짜인지 구분이 안 됐다.
여기선 그 두 가지 경계가 없는 것 같았다.
학생 몇이 걸음을 늦추며 우리를 지나쳤다.
누군가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못 들은 척 걸었다.
오후 9시 40분.
서태림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좁고 어수선했다.
책장에는 낡은 마법서들이 꽂혀 있었다.
책 표지마다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어떤 것은 은은하게 빛났고 어떤 것은 완전히 죽어 있었다.
책상 위엔 시들지 않는 화분이 하나 있었다.
꽃잎이 유리처럼 단단해 보였다.
방 안엔 마른 종이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섞여 있었다.
"앉아."
나는 낡은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서태림이 맞은편에 앉으며 물을 한 컵 따라줬다.
컵도 낯선 재질이었다.
투명한데 유리는 아니었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유일하게 지구와 닮은 감각이었다.
"파괴법사가 뭐예요."
곧바로 물었다.
더 이상 묻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
서태림이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이 화분 쪽으로 잠깐 움직였다가 다시 나를 향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마법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어."
"어떤 종류요."
"마법을 쓰는 사람, 그리고 마법을 무너뜨리는 사람."
"저는 후자고요."
"그래."
서태림이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손등에 옅은 흉터가 있었다.
오래된 흉터였다.
살이 접힌 방향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도 파괴법사야."
나는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교수님이요?"
"삼십 년 전부터. 이곳에서 파괴법사는 환영받지 못해."
"왜요."
"마법을 쓸 수 없으니까. 마법사들의 세계에서, 마법을 못 쓰는 건 그냥 무능한 게 아니야.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거지."
목이 마르는 느낌이었다.
물을 한 컵 다 마셨는데도 그랬다.
"그럼 저도 그렇게 될 거란 말이에요."
"이미 되고 있어."
서태림이 씁쓸하게 웃었다.
웃는 게 아니라, 웃는 척하는 얼굴이었다.
입꼬리는 올라갔는데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아까 학생들이 저를 보는 눈빛, 그것도 그거예요?"
"그래. 저들에게 자넨 이미 흠집 난 물건이야. 시장에 나오기도 전에 등급이 매겨진 거지."
"저는 물건이 아니에요."
"여기선 그렇게 취급받아. 익숙해지는 게 나을 거야."
그 말투에 화가 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그냥 사실을 전달받은 느낌이었다.
숫자를 통보받는 느낌.
"그럼 왜 저를 데려온 거예요."
"파괴법사는 마법을 못 쓰지만, 대신 마법에 오염되지 않은 것들을 다룰 수 있어."
"오염되지 않은 거요."
"자네 세계의 물건들. 지구의 것들 말이야."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식재료나 그런 것들이요?"
"어쩌면."
서태림은 확신이 없어 보였다.
그저 오래된 이론을 읊는 것 같았다.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확실한 건 아니에요?"
"삼십 년 동안 아무도 증명한 적이 없거든."
"그런데 왜 저한테 그렇게 말해요."
"자네가 물었으니까. 거짓말은 안 해."
그 말에 실망이 밀려왔다.
느껴야 하는 실망인데 정작 무덤덤했다.
대신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가장 급한 질문이었다.
"저 집에 돌아갈 수 있어요?"
서태림의 표정이 굳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돌아갈 수 있어. 반지가 매개체니까."
"그럼 지금 바로."
"지금은 안 돼."
"왜요."
"반지가 다시 힘을 모으는 데 시간이 걸려. 그리고…….."
그가 잠깐 말을 멈췄다.
그 정지가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뭐요."
"이곳의 시간과 자네 세계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
나는 순간 멍해졌다.
"다르게요?"
"이곳에서 한 시간이 지나면, 자네 세계에서는 여섯 시간이 지나."
숫자가 머릿속에 박혔다.
1시간.
6시간.
1대6.
손끝이 차가워졌다.
방금 마신 물 때문이 아니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자네가 여기서 하루를 보내면, 그쪽에서는 엿새가 지난다는 뜻이야."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방금 도착한 지 벌써 한 시간이 넘었다.
지구에서는 이미 여섯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었다.
머릿속에서 시계가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내가 사라진 시각.
지구에서 흘렀을 여섯 시간.
그 여섯 시간 동안 조현우가,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저 지금 당장 가야 해요."
"안 된다고 했잖나."
"왜요."
"몸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넘어가면, 반지가 자네를 어디로 보낼지 몰라."
"어디로 보내는데요."
"모른다니까. 최악의 경우, 자네 세계의 다른 시간대나 다른 장소로 떨어질 수도 있어. 지금 넘어가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해."
나는 입을 다물었다.
손이 떨렸다.
컵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가 다시 풀렸다.
조현우가, 어머니가, 지금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지 상상이 안 됐다.
어머니는 늘 그랬다.
연락이 조금만 늦어도 전화를 걸었다.
밥은 먹었어?
그 흔한 한마디가 지금은 사무치게 그리웠다.
"연락할 방법은 없어요?"
"이 세계에서 자네 세계로 소리나 글자를 보내는 방법은, 삼십 년 동안 발견된 적이 없어."
"그럼 저는 그냥, 사라진 사람이 되는 거예요?"
"지금 당장은 그래."
그 말이 목구멍에 걸렸다.
삼켜지지도, 뱉어지지도 않았다.
오후 10시 2분.
서태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오늘은 여기서 자. 내일 학원장에게 자네를 소개해야 해."
"거부하면요."
"그럼 자네는 밖에서 죽어."
단호한 말투였다.
반박할 수 없었다.
그 말에는 어떤 협박의 온도도 없었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목소리였다.
그게 더 무서웠다.
"교수님은 왜 이렇게까지 도와줘요."
서태림이 문 앞에서 멈췄다.
등을 돌린 채 대답했다.
그의 어깨가 아주 잠깐 굽었다가 다시 펴졌다.
"삼십 년 전, 나를 도와준 사람이 없었어."
그 한마디를 남기고 그는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나는 좁은 침대에 누웠다.
매트리스는 딱딱했고, 이불에서는 낯선 향이 났다.
천장을 봤다.
낯선 별들이 창문 틈으로 보였다.
별의 배열조차 지구와 달랐다.
북두칠성도, 오리온도 없었다.
완전히 다른 하늘이었다.
숫자가 계속 머릿속을 돌았다.
1시간.
6시간.
엿새.
내가 여기서 며칠을 보내면, 지구에서는 몇 주가 지날지 계산이 서지 않았다.
계산을 하려고 할수록 숫자가 뒤엉켰다.
하루면 엿새.
이틀이면 열이틀.
그 이상은 세는 것조차 두려웠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대신 반지의 문양이 눈앞에 계속 떠올랐다.
작은 원 안에 세 갈래로 갈라진 선.
그것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몸을 뒤척였다.
낡은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방 안의 정적을 더 크게 만들었다.
서태림의 말이 귓가에 남아 있었다.
파괴법사는 마법에 오염되지 않은 것을 다룰 수 있다.
확실한 건 아니라고 했다.
삼십 년 동안 증명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럼 나는 뭘 믿고 여기서 버텨야 하나.
질문이 답을 찾지 못하고 제자리를 돌았다.
문득, 조현우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의 톤.
평범했다.
그냥 평범한 하루의 끝이었다.
그 평범함이 지금 이 순간 가장 그리운 것이 됐다.
창밖에서 낯선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지구의 새소리와 비슷했지만, 리듬이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그 미묘한 어긋남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여기는 지구가 아니다.
당연한 사실인데, 몸으로 실감하는 건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 채, 나는 어둠 속에서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차가웠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손끝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반지가, 지금, 반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