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가게 안은 어둑해졌다.
강도현은 진열대를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먼지 쌓인 총기 케이스들, 낡은 탄약 상자들, 녹슨 도검 몇 자루.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무기점의 재고였다.
손끝으로 진열장 유리를 한 번 훑었다.
지문 자국이 남았다.
닦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손을 뗐다.
어차피 내일이면 또 묻을 텐데.
뒤편 창고 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끼익.
"오늘 매출은."
낮고 갈라진 목소리, 박정호였다.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 흰머리가 반쯤 섞인 머리를 짧게 깎았다.
눈빛만은 젊은 사람보다 날카로웠다.
체격은 크지 않았지만 걸음걸이에 힘이 있었다.
그냥 걸어도 위압감이 도는 사람.
강도현은 그런 박정호를 석 달째 봐왔다.
"괜찮았습니다. 진상 하나 왔었고요."
강도현이 짧게 답했다.
"진상."
박정호가 되물었다.
"뭘 하는 놈이던가."
"그냥 시끄럽게 굴다 갔습니다.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니면 됐고."
박정호가 계산대 옆에 섰다.
"별일 없었지."
묻는 게 아니라 확인하듯 말했다.
"네."
박정호는 오늘치 장부를 훑기 시작했다.
손끝이 종잇장 넘기는 소리만 가게 안을 채웠다.
사르륵.
사르륵.
강도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진열대 정리를 마쳤다.
박정호는 이 도시에서 무기점을 유일하게 지켜온 사람이었다.
갱단들도 이 가게는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이유는 몰랐다.
강도현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
캐물어봤자 대답해줄 사람도 아니었고.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게 없는 노인이었다.
"동쪽 도시 소식 들었나."
박정호가 갑자기 물었다.
장부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였다.
"아니요."
"함락됐다는군. 갱단 하나가 통째로 삼켰대."
강도현의 손이 잠깐 멈췄다.
진열대 위에 올려두려던 탄약 상자가 그대로 멈춰 있었다.
"거긴 그래도 좀 안정적이라고 들었는데요."
"삼 년 전 재해 이후로 안정적인 곳은 없어."
박정호가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는 코웃음이었다.
하늘이 갈라지고 영기가 사라진 그날.
이 세계 사람들은 그걸 대재해라 불렀다.
그날 이후 도시들은 하나씩 갱단의 손에 넘어갔다.
힘 있는 자가 곧 법이 되는 곳이었다.
법이라는 말도 웃긴 소리지.
강도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법이 있었다면 이런 가게가 왜 필요했겠나.
"동쪽 도시엔 아는 사람 없죠."
강도현이 물었다.
별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다.
"없어. 있었어도 지금쯤 없겠지."
박정호가 장부를 넘기며 대답했다.
무심한 어조였다.
이 노인은 늘 이런 식이었다.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든 자기 일만 확인하면 그만인 사람.
"광란두더지파도 요즘 세를 넓힌다던데."
박정호가 장부를 덮으며 중얼거렸다.
"마봉구, 그 인간 요즘 부하들 풀어서 뭘 그렇게 찾는다더군."
"뭘 찾는데요."
강도현이 물었다.
"모르지. 알고 싶지도 않고."
박정호가 짧게 대답했다.
"그런 놈들 일에 껴서 좋을 거 하나 없어."
그 말투에 강도현은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껴서 좋을 거 없다는 건 나도 안다.
문제는 안 껴도 알아서 껴지는 세상이라는 거지.
박정호가 문 쪽으로 걸어갔다.
발소리가 가게 바닥에 규칙적으로 울렸다.
또각.
또각.
"퇴근해. 내일도 늦지 말고."
"네."
"그리고,"
박정호가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요즘 골목 조심해. 밤에 도는 놈들이 늘었다더군."
"신경 쓰겠습니다."
"신경만 쓰지 말고 조심하라고."
박정호는 그 말을 남기고 창고 쪽으로 사라졌다.
강도현은 잠깐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저 노인이 저런 말을 할 때가 있나.
평소엔 매출 얘기밖에 안 하는 사람인데.
뭔가 이상하긴 한데.
그냥 기분 탓이겠지.
강도현은 가게 문을 잠그고 골목으로 나섰다.
철컥.
자물쇠 걸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숨을 내쉬자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가로등이 몇 개는 꺼져 있었다.
깜빡, 깜빡거리다 완전히 죽어버린 것도 있었다.
낮에 봤던 그림자가 다시 떠올랐다.
건물 벽에 붙어 있던 검은 형체.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는데 그새 사라져 있었다.
괜히 신경 쓰이네.
강도현은 발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가방 속에 챙겨둔 소형 나이프를 손끝으로 한 번 확인했다.
만약을 위한 습관이었다.
이 도시에서 밤길을 혼자 걷는다는 건 그 정도 대비는 기본이었다.
골목을 하나 지났다.
가게에서 파는 낡은 총들, 관리도 제대로 안 되는 재고들.
저런 걸로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웃긴 일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걷던 중이었다.
골목을 두 개 지났을 때였다.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강도현의 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등 뒤 감각이 곤두섰다.
발소리는 세 갈래, 아니 네 갈래.
일부러 소리를 죽이려는 게 느껴졌다.
숨죽인 발걸음이라는 게 오히려 더 크게 들리는 법이다.
강도현이 몸을 돌리려는 순간, 무언가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퍽.
시야가 흔들렸다.
눈앞이 새하얗게 번쩍거리더니 곧 캄캄해졌다.
무릎이 꺾였다.
바닥이 확 가까워지는 감각.
누군가 그의 몸을 붙잡아 자루 속으로 밀어넣었다.
거친 삼베 자루, 코를 찌르는 곰팡이 냄새.
"조용히 해, 이 새끼야."
낮은 목소리가 자루 밖에서 들렸다.
또 다른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이 새끼 맞아? 확실해?"
"맞다니까. 아까부터 계속 봤어."
입구가 묶이는 느낌이 났다.
거칠게 잡아당기는 손길, 밧줄이 살을 파고드는 감각.
강도현은 뭐라 소리치려 했지만 입이 막혀 있었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들려서 옮겨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어깨 위에 걸쳐진 채로 흔들렸다.
젠장, 이게 뭐야.
머릿속에서 마지막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강도현의 의식이 그대로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