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영기 1% 남은 선인

3화

덜컹, 덜컹. 어딘가로 실려가는 진동이 계속됐다. 강도현이 눈을 떴다. 시야가 온통 어두웠다. 자루 속이었다. 손발이 묶여 있었다. 입에도 헐거운 재갈이 물려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자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젖은 삼베 냄새, 그 밑에 깔린 쇠 냄새. 누군가의 피가 여기 스며든 적이 있다는 뜻이었다. 조용히 상황부터 파악하자. 바닥의 진동으로 짐작해보면 낡은 트럭이나 손수레.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일정하지 않았다. 포장도로가 아니었다. 두 명 이상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이거 확실히 그 놈 맞지?" 건장한 목소리, 걸걸했다. "당연하지. 무기점 점원 놈. 얼굴 곱상해서 딱 표적 잡기 좋다니까." 마른 목소리, 조금 더 낮고 차분했다. "박달구, 형은 진짜 이런 거 잘 찾는다니까." "이재춘, 너나 잘해라. 마봉구 형님한테 잘 보이면 우리도 팀 하나 맡을 수 있어." 강도현은 자루 안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박달구, 이재춘. 마봉구.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박정호가 언급했던 그 갱단, 광란두더지파. 마봉구가 요즘 뭔가를 찾는다고 했었다. 그게 나였나. 이름값 한번 요란하네. "예물로 바치면 형님이 좋아하시겠지?" 박달구가 신난 목소리로 물었다. "당연하지. 곱상한 애 좋아하시잖아. 힘도 없어 보이고. 딱 마음에 들어할 거야." 이재춘이 대답했다. 힘도 없어 보인다. 강도현의 입꼬리가 자루 속에서 아주 살짝 올라갔다. 그렇게 보이도록 했으니까. 세 달간 이 도시에서 살면서 강도현은 힘을 숨겼다. 진열대 뒤에서 조용히 일하고, 눈에 띄지 않게 굴었다. 누가 물건값을 물어와도 어눌하게 웃어넘겼다. 손님이 시비를 걸어도 눈을 피했다. 전부 계산이었다. 영기가 거의 다 빠져나간 세계에서, 남은 한 줌마저 들키면 위험했다. 이 세계는 영기를 감지하는 자들이 곳곳에 깔려 있었다. 조금만 흘려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놈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강도현은 손목의 묶인 상태를 확인했다. 밧줄이 헐겁게 느껴졌다. 묶은 자가 서툴렀거나, 아니면 그를 진짜로 무력하다고 믿었거나. 둘 다겠지. 손끝에 힘을 모아봤다. 미세한 온기가 손바닥에서 퍼졌다. 낮에 진상 손님을 제압할 때 느꼈던 그 감각. 영기가 남아 있었다. 극히 적은 양이지만, 분명 있었다. 이거면 충분해. 칠 년의 검술이 몸에 새겨져 있었다. 영기가 없어도 몸은 기억한다. 영기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 몸을 완벽히 움직일 수 있다. 죽을 뻔한 날들이 몸에 새겨져 있으니까. 강도현은 재갈 사이로 침을 삼켰다. 목이 뻐근했다. 자루 안에서 오래 구겨진 자세로 있었더니 어깨도 뭉쳤다. 이 상태로 싸울 수 있나. 가능하다. 못할 것도 없다. "근데 형, 이 자루 좀 조용한데. 안 죽은 거 맞지?" 박달구가 갑자기 걱정스레 물었다. "쫄지 마. 아까 확실히 목 짚었어. 숨 쉬더라." 강도현은 숨을 더 얕게 골랐다. 조금 더 겁먹은 척해줘야겠다. "근데 이 새끼 진짜 무기점 점원이었어? 칼 좀 만졌으면 몸이 좀 다르지 않나." 박달구가 의심스레 물었다. "몰라. 겁쟁이처럼 굴던데. 손님한테 소리도 못 지르고. 그냥 얼굴만 팔려고 있는 애야." 이재춘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겁쟁이라니. 강도현의 눈썹이 자루 속에서 살짝 꿈틀거렸다. 말은 나중에 갚아주면 된다. 트럭이 덜컹거리며 어딘가로 계속 나아갔다. 목적지는 아마 마봉구가 있는 본거지일 것이다. 도착하기 전에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일단 겁먹은 피해자처럼 굴고, 경계가 풀리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한 번에 끝낸다. 몇이나 있을까. 박달구와 이재춘, 최소 둘. 안에 더 있다면 셈이 복잡해진다. 영기는 한 줌뿐이다. 아껴 써야 한다. 전투가 길어지면 답이 없다. 첫 수에 최대한 많이 눕혀야 한다. 소란이 커지기 전에. 강도현은 손목의 밧줄을 다시 확인했다. 느슨한 부분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매듭이 단순했다. 풀 수 있다, 이 정도는. 다만 지금 풀면 티가 난다. 자루가 열리는 순간까지는 참아야 한다. 트럭이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덜컹거림이 멈췄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익. 낡은 철문 소리였다. 경첩이 오래 방치된 소리. "다 왔다. 꺼내자." 박달구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발소리가 여러 갈래로 들렸다. 셋, 아니 넷쯤 되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많다. 자루 입구가 풀리는 감각이 느껴졌다. 바깥의 찬 공기가 살갗에 닿았다.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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