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삼 개월 뒤로 예정된 가문 무술대회의 소식은, 청하성 전역을 조용히 들끓게 만들었다.
저잣거리에서는 벌써부터 내기가 벌어졌다. 누가 그 자리에서 이현우와 맞설 것인가, 임가의 혼약은 정말로 성사될 것인가,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저마다의 예측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 어느 이야기에도, 이도윤이라는 이름은 진지하게 오르지 않았다.
폐물 도련님. 그 별명은 여전히 성 전체에 무겁게 눌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대장로 이씨 일가의 저택 안에서는, 그 이름이 조금씩 다른 무게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대장로 이씨 일가는 이번 대회를 성주 교체의 결정적 계기로 삼으려 했다. 이현우의 명성은 이미 적천성 일대까지 퍼져 있었고, 그가 참가하는 대회는 곧 후계 구도를 확정 짓는 무대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하인들이 퍼뜨린 '폐물 도련님이 건달을 제압했다'는 소문은, 오히려 대장로파에게 새로운 경계심을 심어주었다.
대장로의 처소, 그 어두운 서재 안에서 촛불이 낮게 흔들리고 있었다.
"확인해 보아야 한다." 대장로가 낮게 말했다. 근엄한 얼굴에 서린 것은 의심이었다. "이강철의 아들이, 정말로 그저 폐물일 뿐인지."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서찰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저잣거리에서 올라온 보고였다. 몇 줄뿐인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건달 셋을 상대로, 상처 하나 없이 제압했다는 게 사실이냐."
"그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다만, 목격자들의 증언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이는 도련님이 단 한 번의 손짓으로 끝냈다고 하고, 어떤 이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도 합니다."
"운." 대장로가 낮게 되뇌었다. 그 단어가 그의 입안에서 씁쓸하게 굴러다니는 듣했다. "운으로 세 명을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재능이지."
이현우는 아버지의 말에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설령 그 아이가 조금 달라졌다 해도, 저와는 격이 다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검을 뽑아 촛불 아래 비스듬히 세웠다. 검신에 반사된 불빛이 그의 얼굴 위로 일렁였다.
"저는 세 살 때부터 검을 잡았습니다. 그 아이가 갑자기 무언가를 얻었다 한들, 그 세월의 격차를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 밑바닥에는, 옅은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대장로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들의 자신감 아래 깔린 미세한 떨림, 그것이 오히려 그의 불안을 더 부추겼다.
"그래도 방심하지 말거라." 대장로가 검을 든 아들의 손을 응시하며 말했다. "무술대회는 단순한 승부가 아니다. 그 자리에서 이겨야만, 우리 이씨 일가가 성주 자리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이현우는 검을 검집에 다시 넣으며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 무렵, 임가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임씨 저택의 후원, 매화나무 아래 마련된 정자 안에서 임재호는 딸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피고 있었다.
"설화야." 임재호가 조심스레 딸을 불렀다. "이 도련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느냐."
임설화는 붓을 든 채로, 화선지 위에 그리던 매화 그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붓끝이 잠시 멈추었다.
"건달 몇 명 제압한 게 뭐 그리 대단한가요." 그녀가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했지만, 그녀의 손끝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저택 앞뜰에서 마주쳤던 소년의 눈빛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눈빛에는 흔히 보아온 도련님들의 오만함이 없었다. 대신 담담함이 있었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을 이미 겪어본 사람의 눈빛 같았다.
'그날, 그 담담한 눈빛은···'
"설화야." 임재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혼약이 성사된다면, 너의 삶이 바뀌게 될 것이다. 만약 상대가 정말로 폐물이 아니라면, 그것이 우리 가문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단하기 어렵구나."
임설화는 붓을 내려놓았다. 화선지 위의 매화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였다.
"아버지." 그녀가 낮게 말했다. "저는 아직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말을 잇지 못한 그녀의 시선이, 창밖 먼 곳을 향했다. 이씨 저택이 있는 방향이었다.
"직접 보아야 알 것 같습니다."
임재호는 딸의 얼굴에서 낯선 표정을 발견했다. 오랫동안 보아온 딸의 무표정한 얼굴 아래, 처음 보는 종류의 흔들림이 있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짐작하지 못했다.
청영문의 처소에서도, 설유란은 청의를 입은 검객들 앞에서 낮게 입을 열었다.
높은 누각 위, 밤바람이 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설유란의 앞에는 세 명의 청의 검객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아이를 계속 주시해야겠다."
"사부님께서 그리 관심을 두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검객 중 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설유란은 대답 대신, 창밖 먼 곳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담긴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수많은 기의 흐름을 보아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예감이었다.
"기의 흐름이··· 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진다. 그런 존재는, 이 대륙에서 흔치 않아."
그녀는 손끝으로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매만졌다. 찻물의 표면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내가 젊었을 적에도, 딱 한 번 그런 기운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이후, 대륙의 판도를 바꾸었지."
검객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 정도의 존재라는 말씀이십니까?"
"아직은 모른다." 설유란이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일 뿐이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진짜라면, 우리 청영문이 가장 먼저 그것을 알아보아야 한다."
그녀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차향이 방 안에 낮게 퍼졌다.
"삼 개월 후의 무술대회. 그 자리에서, 그 아이의 진짜 그릇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대장로파, 임가, 청영문. 세 세력의 시선이, 각기 다른 이유로 청하성 이씨 저택의 한 소년에게 조용히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이도윤은 여전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었다.
무술대회를 앞둔 어느 오후, 이강철은 아들을 별채로 불렀다.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진중했다.
별채 안, 낮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부자가 마주 앉았다. 창을 통해 들어온 오후 햇살이,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을 비스듬히 가로질렀다.
"삼 개월 뒤, 무술대회가 열린다." 이강철이 낮게 말했다. "그 자리에서 임가와의 혼약이 최종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대장로파는 그 자리를 성주 교체의 명분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도윤은 조용히 아버지의 말을 들었다. 그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대회의 형식은 어떻게 됩니까." 그가 물었다.
"각 가문에서 대표를 내세워 겨루는 방식이다." 이강철이 대답했다. "대장로파에서는 당연히 현우가 나설 것이고, 우리 쪽에서는···"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 침묵 속에, 오랜 세월 쌓인 무력함이 배어 있었다.
"솔직히 말하마. 우리 쪽에는, 현우와 겨룰 만한 자가 없다. 가신들 중 몇몇이 있지만, 현우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이도윤은 아버지의 얼굴을 응시했다. 오랜 세월 짓눌려온 가주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아버지."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가 그 자리에서, 혼약을 완전히 거부하겠습니다."
이강철의 눈이 커졌다. "도윤아, 지금 그게 무슨···"
"제 방식대로, 이 상황을 풀어가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저 지켜봐 주시면 됩니다."
이강철은 아들의 눈빛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그 눈빛에는 예전의 유약함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낯설지만 단단한 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 일이냐." 이강철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혼약을 거부한다는 것은, 대장로파와 임가 모두를 자극하는 일이다. 만약 네가 그 자리에서 아무런 힘도 보이지 못한다면, 우리 가문은···"
"압니다." 이도윤이 아버지의 말을 잘랐다. "그 위험을 알기에, 삼 개월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정말로 각오한 것이냐."
"네."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무게는 어느 긴 설명보다 컸다.
이강철은 결국 낮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절박한 처지에서, 그는 마지막 희망을 아들에게 걸어보기로 했다.
"좋다." 그가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거라. 나는··· 그저 지켜보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들의 어깨를 잠시 짚었다. 그 손길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강철이 별채를 나선 뒤, 이도윤은 홀로 남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삼 개월. 그 시간 안에 해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서 차례로 떠올랐다.
그날 밤, 이도윤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방 안은 어두웠고, 오직 작은 등잔불 하나만이 종이 위를 비추고 있었다.
저잣거리의 사건 이후, 서생의기는 눈에 띄게 안정되어 갔다. 붓끝을 타고 흐르는 기운이, 이전보다 훨씬 매끄러웠다. 종이 위의 문양도 조금씩 형체를 갖춰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흐릿한 선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는 명확한 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붓을 들어 한 획을 그어 보았다. 종이 위에서 미세한 파동이 일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종이의 섬유 사이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씩··· 조금씩이지만, 분명히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 낯선 목소리는,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다시 들리지 않았다. 검생의 힘이 처음 발현되던 그 순간, 귓가에 들려왔던 그 목소리.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이도윤은 아직도 알지 못했다.
'다음엔 언제 다시 나타날까.'
그는 붓을 내려놓고, 창밖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빛이 흐릿하게 흩어져 있었다.
무술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삼 개월. 그 사이 완성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서생의기의 완전한 각성, 검생의 힘을 다루는 법, 그리고 세 세력의 시선을 견뎌낼 각오까지.
그는 손가락을 펼쳐 보았다. 예전과 다름없는 평범한 손이었지만, 그 안에 깃든 기운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이 손으로, 대체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
방문 밖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오빠, 아직 안 자?"
이서윤이었다. 문틈으로 삐죽 내민 얼굴이, 어둠 속에서도 창백해 보였다.
"서윤아, 이 시간에 왜 안 자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여동생의 작은 몸이, 문틈으로 조심스레 들어왔다.
"그냥, 오빠 얼굴 보고 싶어서." 그녀가 힘없이 웃었다. "콜록. 오빠, 요즘 뭔가 되게 멋있어졌어. 그거 알아?"
이서윤은 방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책상 위에 놓인 종이들을 발견했다. 그녀가 다가가 종이 위의 문양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만졌다.
"이게 뭐야?" 그녀가 물었다. "이상하게··· 따뜻해."
이도윤은 여동생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슴 한켠이 묵직해졌다.
'이 아이를 반드시 구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가 부드럽게 대답하며 종이를 조심스레 접었다. "그냥 연습하던 거야."
이서윤은 오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선 속에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오빠." 그녀가 낮게 말했다. "아버지랑 뭔가 중요한 얘기 했지? 하인들이 다들 수군거리더라."
이도윤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삼 개월 후에, 무술대회가 열려. 거기서 오빠가 결정해야 할 일이 있어."
"그래, 오빠가 조금씩 강해지고 있으니까." 그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서윤이도 조금만 더 기다려줘. 오빠가 다 해결할 테니까."
이서윤은 잠시 오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작은 손을 뻗어, 오빠의 손을 살짝 잡았다.
"헤헤, 믿을게."
그녀의 손은 작고 차가웠다. 병약한 몸이 지닌 서늘한 온도가, 이도윤의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는 그 손을 잠시 꼭 쥐어주었다.
이서윤이 방문을 닫고 사라진 뒤, 이도윤은 다시 창밖을 응시했다. 방 안에 홀로 남은 그의 표정 위로, 등잔불이 낮게 흔들렸다.
삼 개월 후의 무술대회.
그 자리에서 혼약 거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순간, 대장로파와 임가, 청영문, 세 세력의 이해관계가 동시에 충돌할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청하성 전체를 흔들 도화선이 될 터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세 세력 모두 이미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다.
이도윤은 창가에 서서, 종이 위의 문양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문양이었지만, 그 안에 깃든 힘은 분명히 자라나고 있었다.
'삼 개월. 그 안에 충분할까.'
그는 자문했지만, 답은 아직 없었다. 다만 확신만이, 그의 가슴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먼 하늘 끝에서, 낮게 깔린 구름이 조금씩 짙어지고 있었다. 그 구름은 마치 다가올 폭풍을 예고하듣, 이씨 저택의 밤하늘 위로 천천히 번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밤, 청하성의 세 저택에서는 각기 다른 촛불이, 각기 다른 이유로 늦도록 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