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박거석이 쓰러졌던 자리를 눈으로 훑던 나는, 조금 떨어진 나무 밑동 근처에서 그의 큰 칼이 흙 위에 처박혀 있는 걸 발견했다. 칼날의 절반은 이미 흙 속에 묻혀 있었는데, 그 각도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누군가 넘어지면서 손에서 놓친 게 아니라, 최후의 순간까지 땅을 짚고 버티려던 흔적처럼 보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는데, 그 칼 옆으로 몸이 축 늘어진 채 누워 있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리를 절뚝이며 다가갔고, 발을 옮길 때마다 종아리 근육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가까이서 확인한 그의 상태는 예상보다도 처참했다. 옆구리를 관통했던 창은 이미 빠져나가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주변의 흙을 검붉게 물들이고 있었고, 옷자락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의 손은 여전히 칼자루를 놓지 않은 채 굳어 있었다.
'끝까지 놓지 않았구나.' 나는 그 자세에서 무언가 뭉클한 것이 올라오는 걸 느꼈지만, 애써 그 감정을 삼키며 그의 목에 손을 대었다. 손끝이 떨렸다. 맥을 짚는 그 짧은 순간이 마치 몇 분처럼 길게 느껴졌는데, 미약하게나마 맥이 뛰고 있었다. 손가락 아래로 전해지는 그 미미한 박동이,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감각이었다.
"살아 있다!" 나는 뒤따라온 강무영을 향해 소리쳤고, 그는 절뚝이는 다리로 다가와 박거석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처음으로 표정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지는 걸 보였다. 그가 상처 부위를 손끝으로 짚어보고, 피가 스며 나오는 속도를 가늠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출혈이 심합니다.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그가 낮게 말했고, 나는 그 담담한 어조 속에 숨은 절박함을 눈치챘다. '이 사람도 슬픔을 참는 법을 배운 거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겉옷을 벗어 박거석의 상처를 압박했는데, 옷감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가는 걸 보며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응급처치라고는 대학 시절 봉사동아리에서 배운 게 전부였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는 나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좀 더 열심히 배워둘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스쳤지만, 지금 이 순간엔 그런 후회조차 사치였다.
강무영이 주위를 경계하며 말했다. "공자님, 여기 오래 머물 수는 없습니다. 저들이 다시 무리를 재정비해 몰려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의 시선은 우리가 내려온 산길 위쪽을 향해 있었는데, 그 눈빛에는 단순한 경계심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이미 알고 있는 결말을 향해 걷고 있는 사람의 표정 같았다. 나는 압박을 유지하며 물었다. "안전한 곳이 있는가?" 그가 답했다. "단양성입니다. 그곳에는 이가와 연이 있는 세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곳까지만 가면 최소한의 안전은 확보될 겁니다." 그 이름은 조금 전 자신도 죽음의 문턱에서 언급했던 곳이었는데, 나는 그것이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이 도주극의 유일한 목적지라는 걸 실감했다. '단양성. 저 사람이 죽기 전에도 그 이름을 말했지.' 나는 그 우연 같지 않은 반복에서 뭔가 중요한 실마리를 느꼈다. 두 사람의 입에서 같은 지명이 나온다는 것은, 이가라는 가문과 이 이름이 단순한 우연으로 얽혀 있지 않다는 뜻일 터였다.
"거기까지 거리는?" 내가 다시 물었다. 강무영은 잠시 하늘을 살피더니 답했다. "쉬지 않고 걸으면 반나절, 하지만 지금 저희 상태로는 그보다 더 걸릴 겁니다." 반나절이라는 말에 나는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부상자 하나, 부상자에 가까운 두 사람, 그리고 뒤에서 쫓아오는 적. 이건 무슨 서바이벌 게임의 최악 난이도 시나리오가 아닌가. '적어도 회복 포션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헛된 생각이 스쳤지만, 지금 내 손에 있는 건 피에 젖은 겉옷 한 장뿐이었다.
박거석을 등에 업으려 하자 강무영이 나를 만류하며 말했다. "공자님의 몸으로는 무리입니다. 제가 업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몸도 이미 만신창이였는데, 그가 팔을 들어 올릴 때마다 어깨 쪽 상처에서 신음을 억누르는 게 보였다. 나는 짐짓 능글맞은 어조로 되받았다. "자네도 걸을 힘이 남았는지 모르겠는데, 괜히 무리하다가 둘 다 쓰러지면 그건 더 손해 아닌가." 강무영은 잠시 나를 응시하다가,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를 움직였는데, 그것이 웃음인지 그저 통증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공자님답지 않은 말씀이십니다." 그가 말했고, 나는 그 말에 속으로 뜨끔했다. '원래 이현 공자는 이런 말투가 아니었나 보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겉으로는 태연하게 웃어 보였다. "사람이 죽을 위기에선 다들 조금씩 변하는 법이지." 나는 그렇게 둘러댔고, 강무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 그저 나를 한 번 더 응시하고는 시선을 거두었는데, 그 짧은 시선 속에 담긴 의문이 완전히 해소된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우리는 근처에 쓰러져 있던 나뭇가지 몇 개를 주워 급히 들것을 엮었다. 강무영이 끈으로 쓸 만한 것을 찾아 자신의 허리끈까지 풀어 내는 걸 보며, 나는 그의 침착함에 다시금 놀랐다. 이 사람은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박거석을 그 임시 들것에 눕히고, 셋이서 번갈아 그를 옮기며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새벽 공기가 폐부를 찌를 듯 차가웠고, 발밑에서 부서지는 낙엽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는데, 나는 그 걸음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걸 참아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깨에 걸린 들것의 무게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고, 손바닥에는 나뭇가지의 거친 표면이 파고들어 피부가 벗겨질 것 같았다.
'고고학자 시절엔 발굴 현장 오가는 것만으로도 힘들다고 투덜거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건 산책 수준이었군.' 그런 자조적인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잡으며, 나는 문득 이 몸의 원래 주인, 병약했던 진짜 이현 공자에 대해 생각했다. 이 육체의 기억 어디에도 투기를 다룰 능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지금 내가 얻은 이 힘은 분명 그 파편에서 온 것일 터였다. '그 문양, 그 붉은 기운.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손바닥에 남아 있던 그 감각을 떠올리려 했지만, 지금은 오직 걸음을 옮기는 데에만 집중해야 했다. 딴생각에 빠질 여유조차 사치스러운 순간이었다.
강무영과 나는 교대로 들것의 앞쪽과 뒤쪽을 맡았는데, 그 짧은 침묵의 시간 속에서 나는 그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는 걸 느꼈다. 그는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발걸음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 사람, 대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스쳤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함께 걷는 것뿐이었다.
산길이 굽어지는 지점에서 강무영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손을 들어 정지 신호를 보냈다. 그 동작이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나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그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갔는데, 저 멀리 나무 사이로 붉은 화살처럼 스치는 인영 몇 개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벌써 따라잡혔나.'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식는 감각이 들었지만, 나는 애써 숨을 고르며 강무영을 바라보았고, 그의 얼굴에도 짙은 피로와 함께 처음으로 뚜렷한 불안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 불안이라는 감정을, 이 사람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오히려 더 실감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