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사실 저 안 약합니다

5화

선유하는 약당 뒤편, 사람이 지나지 않는 작은 마당으로 나를 이끌었다. 담장 밑에 마른 국화 화분이 몇 개 놓여 있었다. 꽃잎은 이미 다 떨어지고 줄기만 앙상했다. 늦가을의 냄새가 마당 전체에 배어 있었다. 그녀가 목소리를 낮췄다. "운계문에서 사람이 하나 와 있습니다. 소아를 만나고 싶다고요." 운계문. 회풍문과는 다른 이름이었다. 나는 잠시 그 이름을 곱씹었다. 이 지역의 세력 지도에 새로 나타난 조각이었다. 지도라는 것은 늘 그렇다. 안다고 생각한 순간, 새로운 선이 하나 더 그려진다. "이름이 무엇이오." "묵현(墨賢)이라 했어요." 선유하가 말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화분 가장자리를 무심히 훑고 지나갔다. "얼굴은 창백한데, 말투는 참 정중하더군요. 소아와는 예전에 무술대회에서 몇 번 마주친 인연이 있다고요." "그자를 직접 봤소?" "먼발치에서요. 정문에서 문지기와 대화하는 걸 봤을 뿐이에요." 그녀가 잠시 뜸을 들였다. "느낌이 좋지 않았어요. 웃는데, 그게 다 얼굴 위에서만 벌어지는 웃음이더라고요." 나는 그 정보를 머릿속에 정리했다. 인연이라는 말은 편리한 포장이다. 진짜 목적이 그 안에 숨어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선유하의 관찰은 늘 믿을 만했다. 그녀는 사람의 표정을 읽는 데 나보다 나은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소아에게는 아직 알리지 마시오." "당연히요." 선유하가 짧게 답하고는, 화분 사이로 시선을 돌렸다. "제가 먼저 왔으니, 공자가 먼저 만나보시는 게 낫겠지요." 그날 저녁, 묵현이 낙하문 정문 앞에 나타났다.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었다. 어깨가 좁았고, 걸음이 조용했다. 훈련된 자의 걸음이었다. 땅을 밟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는, 그런 종류의 발걸음이었다. 얼굴은 과연 창백했고, 그 위에 걸린 미소는 지나치게 다정했다. 선유하가 말한 그대로였다. 웃는데, 눈은 웃지 않는다. "낙하문의 문소아 소저를 뵙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그가 나를 향해 포권했다. 나를 소아의 오라버니로 인식하고 온 것이었다. "무슨 용건이오." 나는 담담히 물었다. "작은 안부와, 전해드릴 소식이 있어서요." 그가 말을 흐리며 나를 살폈다. 눈이 흔들리지 않았다. 이 남자는 준비된 대답을 하고 있었다. 대본이 있는 대화라는 뜻이었다. 즉석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소아는 지금 바쁘오. 용건이 있다면 나에게 말하시오." 나는 문소아를 이 자리에 세울 생각이 없었다. 정체가 불분명한 자를 그녀 가까이 두는 것은, 지금으로선 위험 부담이 큰 일이었다. 소아가 나와서 저 미소를 마주하는 그림 자체가,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묵현의 눈에 짧은 실망이 스쳤다가 곧 사라졌다. 계산이 하나 무너졌다는 표정이었다. 원래 그리던 각본이 있었고, 나는 그 각본의 배역을 바꿔놓은 셈이었다. "그러시다면……" 그는 잠시 침묵했다. 침묵도 계산된 것처럼 길었다. "사부님의 죽음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말이 나오자 내 안에서 무언가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안개밤. 사부의 죽음을 둘러싼 그 이름이 낯선 자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손끝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감각을 곧바로 눌러 담았다. "무엇을 알고 있소." 나는 목소리에 힘을 싣지 않으려 애썼다. "청현진인께서 돌아가신 그날 밤, 근방에서 낯선 기운을 느꼈다는 이가 있었습니다. 운계문 쪽 사람이었지요." 묵현이 말했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을 훑었다. 반응을 살피는 시선이었다. "자세한 것은 저도 모릅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신뢰를 쌓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자의 이름은 아시오? 낯선 기운을 느꼈다는 그 사람 말이오." "거기까지는……" 그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저도 전해 들은 이야기라서요. 좀 더 알아보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신뢰를 쌓고 싶다는 말. 그 말이야말로 가장 의심스러운 부분이었다. 정보를 미끼로 삼아 접근하는 방식은, 전생의 나 역시 여러 번 써본 수법이었다. 상대가 갈증을 느끼는 지점을 정확히 찾아, 그 갈증을 채워주는 척하며 거리를 좁힌다. 지금 묵현이 하는 짓이 딱 그것이었다. "고맙소. 새겨두겠소." 나는 짐짓 담담히 답했다. 속으로는 그의 얼굴과 말투, 그리고 그가 언급한 '근방의 낯선 기운'이라는 단서를 하나씩 기록해뒀다. 창백한 얼굴, 조용한 걸음, 웃지 않는 눈. 그리고 대본을 읽는 듯한 말투. 이 정도면 다음에 다시 마주쳤을 때 알아볼 수 있을 것이었다. 묵현이 물러가려다 다시 걸음을 멈췄다. "강 공자." 그가 낮게 불렀다. "낙하문이 다시 일어서기를, 저도 바랍니다." 그 말이 진심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목소리의 결은 진심처럼 들렸다. 하지만 목소리의 결이라는 것도 훈련하면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이 남자가 이곳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판이 하나 더 복잡해졌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운계문과 회풍문, 그리고 낙하문. 세 개의 이름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나를 향해 실을 뻗어오고 있었다. 그가 사라진 뒤, 나는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정문 밖으로 이어진 좁은 길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소자가 단전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경계의 신호였다. "저자를 믿을 수 있겠느냐." 나는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다만 그 조용한 진동 속에서, 나는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저 남자를 완전히 밀어내지 않되, 그가 흘리는 정보를 이용하는 쪽으로 판을 짜야 한다는 것. 적을 이용하는 것도 전략이다. 나는 그 문장을 마음에 새겼다.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마당 저편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소아였다. 언제부터 저기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표정이 평소와 달랐다. 무언가를 묻고 싶은데, 묻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아직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