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잔치를 치른 지 며칠이 지났다.
한무진은 여전히 그날 스승의 눈빛을 잊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서른 해 가까이 사제로 지내며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잔칫상 너머로 스치듯 지나갔던 그 시선은, 마치 값을 매기는 저울질과 같았다.
아이의 눈을 보고 놀란 것이 아니라, 아이의 눈을 보고 무언가를 셈하는 눈빛이었다.
그는 밤늦게까지 서재에 앉아 옛 서책들을 뒤졌다.
등불이 서너 번 꺼질 듯 흔들렸으나 그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중동에 관한 기록은 극히 드물었으나, 그마저도 대부분은 전설이나 민담의 형태로 흩어져 있었다.
한무진은 낡은 죽간과 서첩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한 줄 한 줄 확인했다.
그러다 딱 한 문장이 그의 눈을 붙잡았다.
'하늘이 내린 눈은, 다른 이의 몸에 옮겨 심을 수 있다고도 하나 그 대가는 크다.'
한무진의 손이 멈췄다.
서첩의 종이가 그의 손끝에서 파르르 떨렸다.
그는 그 문장을 세 번 다시 읽었다.
읽을 때마다 글자의 뜻이 다르게 다가왔다.
'옮겨 심는다...' 그는 그 말을 곱씹었다.
옮겨 심는다는 것은, 원래 그 자리에 없던 것을 억지로 자리 잡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선우탁이 즐겨 쓰던 세 손가락의 신령지 비술이 떠올랐다.
신령지는 원래 화강암을 뚫는 파괴적인 기술로 알려져 있었으나, 그 기법의 근본이 사실은 '정교하게 무언가를 파고들어 옮기는 술법'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한무진은 예전에 그 소문을 우스갯소리로 여기고 넘겼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 우스갯소리가 목덜미를 스치는 칼날처럼 느껴졌다.
한무진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그는 그 생각을 애써 지웠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평생 존경해온 스승을 의심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서른 해 가까이 사제의 예를 다해온 사람이었다.
검술을 가르쳐준 것도, 상단의 험한 물길을 함께 헤쳐온 것도 선우탁이었다.
그런 사람을 의심한다는 것 자체가 죄스러웠다.
"상인의 검은 저울이다." 선우탁의 말이 다시 머릿속을 스쳤다.
언젠가 잔칫상에서 술기운에 흘리듯 던진 말이었다.
그때는 그저 상도를 일컫는 격언으로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조차 다르게 들렸다.
저울은 셈을 위한 것이지, 신뢰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저울 위에 올려진 것이 무엇인지, 한무진은 이제야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
한무진은 결심했다.
확실한 것을 알기 전까지, 도윤의 눈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기로.
결심을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불확실함 속에서 방황하는 것보다, 하나의 길을 정해두는 것이 나았다.
그는 대륙 남쪽에서만 은밀히 거래되는 환술사를 찾아갔다.
표사도 없이 홀로 말을 몰아 사흘 밤낮을 달렸다.
남쪽의 습한 공기가 그의 옷깃을 무겁게 눌렀다.
환술사는 늙은 여인으로, 눈빛을 일시적으로 흐리게 만드는 술법을 안다 했다.
여인의 거처는 낡은 토담집이었고, 방 안에는 알 수 없는 약재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여인은 한무진의 얼굴을 보자마자 대뜸 물었다.
"한가의 대상주가 여기까지 걸음할 일이 뭐가 있소."
한무진은 말없이 은자를 내밀었다.
여인은 은자를 받아 쥐고서야 표정을 풀었다.
"이 술법은 오래가지 않소." 여인이 말했다.
"반년, 길어야 일 년이오. 그 이상은 아이의 기운이 견디지 못할 것이오."
"그것으로 충분하오." 한무진이 답했다.
시간을 버는 것이 지금의 목표였다.
확실한 진실을 알아낼 시간, 그리고 대응할 방법을 찾을 시간이었다.
환술은 그날 밤 도윤에게 걸렸다.
여인의 손끝에서 옅은 안개 같은 기운이 아기의 눈으로 스며들었다.
아기는 잠결에 작게 뒤척였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기의 눈은 다시 평범한 쌍둥이 눈처럼 보이게 되었다.
한무진은 아기의 눈을 들여다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평범함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 세상을 흔들 만한 눈이었던 것이, 지금은 그저 갓난아기의 눈이었다.
하지만 그 안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미 도윤의 중동에 대한 소문이 대륙 전역에 퍼진 뒤였기 때문이다.
술법 하나로 눈을 감출 수는 있었으나, 이미 퍼진 말은 감출 수 없었다.
부인은 그 소식을 듣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녀는 도윤을 품에 안은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와서 감춘다고 소문이 사그라들까요." 그녀가 물었다.
목소리에 옅은 떨림이 섞여 있었다.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오." 한무진이 담담히 답했다.
"하지만 진짜를 보여주지 않으면, 최소한 확신은 못 할 것이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아기를 품에 안았다.
아기의 숨소리가 그의 손바닥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작고 여린 숨결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것은 결코 작지 않았다.
'조금만 더 시간을 벌면 된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았다.
시간이 있다면 진실을 캐낼 수 있었다.
진실을 알면 대응할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
곧 있을 상단 연합의 봄맞이 잔치를 그는 피할 수 없었다.
한가와 오랜 거래를 이어온 여러 상단의 원외들이 모이는 자리였고, 이번 잔치의 주최는 다름 아닌 한가였다.
초대장은 벌써 각지로 나갔고,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려는 눈들이 그곳에 몰릴 것이 뻔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축하의 말을 건네겠지만, 속으로는 저마다 셈을 하고 있을 터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날카로운 눈을 가진 자는, 오랜 라이벌 임대현이었다.
임대현은 화령경 중기의 수련자로, 한무진과 이십 년 가까이 상권을 놓고 다퉈온 사이였다.
두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예를 갖췄으나, 그 예 아래에는 항상 날 선 경계가 깔려 있었다.
그는 한가의 명성이 높아지는 것을 늘 배 아파했다.
지난 잔치에서도 임대현은 축배를 들면서 눈빛만은 웃지 않았다.
소문 속 중동의 존재가 사실이라면, 그것을 폭로해 한가의 신뢰를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였다.
상단 사이의 신뢰란 한번 무너지면 다시 쌓기 어려운 것이었다.
한무진은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임대현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잔치를 준비하며 그렇게 예감했다.
잔치를 준비하는 손길 하나하나에도 평소보다 더한 신경이 쓰였다.
+++
지호는 그 무렵부터 부쩍 말이 없어졌다.
식사 자리에서도 눈을 마주치는 일이 줄었고, 안부를 물어도 짧게만 답했다.
서재에 틀어박혀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한무진은 아들의 변화를 눈치챘으나, 단순한 수련의 고민이라 여겼다.
왜냐하면 그는 아직 알지 못했다.
스승 선우탁이 그 며칠 사이, 지호를 은밀히 세 번이나 따로 만났다는 사실을.
첫 번째 만남은 후원의 대나무숲에서였다.
두 번째는 새벽 검술 수련이 끝난 뒤 잠깐이었고, 세 번째는 아무도 없는 서고의 뒤편이었다.
매번 짧은 대화였으나, 그 짧음 속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형님으로서, 아우를 지켜야 하지 않겠나." 선우탁이 지호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 담긴 뜻은 분명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켜야 할 것은... 아우입니까, 아니면 저입니까." 지호가 되물었다.
그 물음에는 오랫동안 쌓아둔 무언가가 배어 있었다.
선우탁은 그 물음에 대답 대신 웃음만 지었다.
그 웃음은 인자하면서도 어딘가 서늘했다.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호는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 웃음이 자신의 마음 한켠에 있던 오래된 질시를, 천천히 부풀리고 있다는 것만은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지호 자신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것이 이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져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