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하늘을 삼킨 폐인

3화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뿐이었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서, 나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쿵. 소리가 방을 울렸고, 뒤통수가 얼얼했다. '천무대제 이 몸이 다리 하나 못 가누는 꼴이라니.' 서글프다 못해 웃겼다. 웃을 힘도 없어서 그냥 헥헥거렸다. "이 폐인이 뭘 하려고!" 유태식이 코웃음을 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조롱과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이서린의 뺨을 향해 뻗어 있었다.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진짜로 때릴 생각인 모양이었다. '저 새끼가 진짜 치려고 하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몸이 안 움직이면 입이라도 움직여야지.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목청을 쥐어짜냈다. "손 놔라." 목소리가 갈라져서 우스울 정도로 초라했다. 스스로 듣기에도 위엄이라곤 없는, 감기 걸린 노인 같은 목소리였다. 유태식이 그 소리를 듣고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이야, 이 새끼 정신 차리자마자 대장 노릇이네. 폐인이 폐인 같은 소리를 해야지. 니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 그가 낄낄대며 팔을 더 크게 휘둘렀다. 정말로 그녀의 뺨을 후려치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정확히는, 손이라기보다 손끝에서 무언가가 뻗어나갔다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내 의지랑은 상관없이, 몸속 깊은 어딘가에서 툭 튀어나온 느낌. 스릉— 방 안 공기가 순간적으로 팽창했다. 벽에 걸린 족자가 흔들리고, 탁자 위 촛불이 크게 일렁였다. 유태식의 손이 목표에 닿기 직전,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의 팔을 옆으로 쳐냈다. 그는 균형을 잃고 벽에 부딪혔다. 퍽! '뭐, 뭐야 이거.' 나조차도 놀랐다. 천무대제 시절의 기운이 아니었다. 그 기운이라면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내가 모를 리 없었다. 이건 뭔가 완전히 다른, 낯설고 거대한 무언가가 몸 깊은 곳에서 잠깐 꿈틀거리다가 다시 잠들었다. 마치 잠자던 짐승이 실눈을 뜨고 나를 한 번 훑어보고는 다시 눈을 감아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거 뭔데. 나도 모르는 게 내 안에서 나온다는 게 말이 되나.' 유태식은 벽에 등을 부딪히고 나서야 상황을 이해했다.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조금 전까지의 여유와 조롱은 어디로 갔는지, 눈동자가 사방으로 흔들렸다. "이, 이 새끼 뭐야! 성맥도 없는 폐인이 어떻게—" "닥쳐라." 나는 겨우 상체를 일으켜 그를 노려봤다. 팔이 후들거려서 상체를 지탱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눈빛만큼은 흐트러지지 않게 힘을 줬다. 내 눈빛에는 여전히 천무대제의 잔재가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겁쟁이 새끼가 저렇게까지 얼굴이 하얗게 뜰 이유가 없었다. 유태식은 그 눈빛을 정면으로 받고서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쿵, 그의 몸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방금 내가 낸 소리와 똑같아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 이건 뭔가 오해가... 저는 그냥 도련님 심부름을..." "꺼져." 그는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이 어찌나 급했는지 문틀에 어깨를 부딪고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복도 저편에서 뭔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병신 새끼, 겁은 또 잘 먹네. 아까 그 기세는 다 어디로 갔냐.' 방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촛불도 잠잠해지고, 족자도 흔들림을 멈췄다. 이서린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이상했다. 겁먹은 눈이 아니었다.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저울에 무게를 재는 듯한 눈이었다. "방금... 그거."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서 조금 전까지의 시녀다운 조심스러움이 사라져 있었다. "기운을 느끼셨습니까?" '느낀 게 아니라 내가 쓴 거잖아, 이 여자야.'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에는 내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설명한다고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대신 나는 되물었다. "넌 뭔데 그런 걸 물어." 이서린이 잠깐 망설였다. 그 짧은 침묵 속에서 그녀의 표정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그러고는 소매를 걷어 팔뚝을 드러냈다. 그 순간 나는 숨을 삼켰다. 그녀의 팔뚝에는 정교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촘촘하게 얽힌 선들이 살갗 위에서 은은하게 빛을 내는 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천무대제 시절, 오직 전설로만 전해지던 상급 무맥(武脈)의 표식이었다. 실존하는 걸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여자, 시녀가 아니었네. 이거 완전 큰 그림이었잖아.' 이서린이 낮게 웃었다. 방금까지의 겁먹은 얼굴이 아니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 모습이, 이제까지 내가 봐온 얌전한 시녀의 얼굴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도련님. 우리, 얘기 좀 길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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