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검의를 각성했다니

2화

한무천의 손이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숨이 안 쉬어졌다. 시야 가장자리가 하얗게 번졌다.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했다. 스물몇 해를 살고 이런 동굴 바닥에서 목이 졸려 죽는구나. 억울하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그냥 멍했다. 그 순간이었다. '서준아.' 또 들렸다. 이번엔 확실했다. 죽은 스승의 목소리였다. 처음 들었을 때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산소가 부족해서 뇌가 헛것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그렇게 넘겼다. 그런데 두 번째로 들리니 확신이 섰다. 착각이 아니었다. 나는 목이 졸린 채로도 헛웃음을 흘렸다. "사, 사부님?"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져 나왔다. 숨이 제대로 안 들어가니 발음도 엉망이었다. 대답 대신, 내 팔이 저절로 움직였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분명히 말하는데, 내 의지가 절대 아니었다. 손목이 먼저 움직이고 그다음에 어깨가 따라갔다. 마치 누가 내 몸을 뒤에서 조종하는 인형사처럼, 딱 그런 느낌이었다. 검이 허공을 그었다. 한무천의 손목을 스쳤다.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쇠와 살이 부딪치는 소리치고는 이상하게 맑았다. 놈이 뒤로 물러났다. 목을 조르던 손이 풀렸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캑, 캑.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숨 쉬는 것 하나가 이렇게 감사할 일인지 오늘 처음 알았다. "뭐 하는 짓이냐, 지금." 내가 속으로 물었다. 물어봤자 대답이 올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냥 물어본 거였다. '설명은 나중에 하마.' 목소리가 태연했다.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내 몸속 어딘가에서 스승의 정신이, 아니 잔재가, 뭐가 됐든 뭔가가 함께 있었다는 뜻이었다. 반년 전에 죽은 사람이. 지금까지 계속.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럼 그동안 나 화장실 가는 것도 다 보고 있었다는 소리인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근데 왜 그 생각이 먼저 드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진작 말을 하지." 내가 이를 갈며 속삭였다. '말할 틈이 있었느냐.' 스승의 목소리가 예스러운 어투로 되물었다. 뻔뻔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네놈이 워낙 정신없이 굴러다녀서 말을 걸 여유가 없었느니라.' "제가 굴러다닌 게 아니라 얻어맞은 거잖아요." '그게 그거 아니냐.' "아니거든요." 한무천이 다시 달려들었다.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싸우다가 말싸움을 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검을 세웠다. 몸이 가벼워졌다. 이상했다. 분명 내력은 바닥이었는데, 이상하게 검을 쥔 손끝만은 뜨거웠다. 마치 손끝에 작은 불씨가 붙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검의 흐름 이상 감지. 새로운 형(形) 시도 중.] 건조한 문장이 눈앞을 스쳤다. 또 이 짓이다. 사람이 죽을 것 같은 순간에도 시스템은 시스템대로 자기 할 일을 했다. 누가 죽어가는지 관심도 없다는 듯이. 뒤이어 팔뚝에서 뭔가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혈관이 아니라 회로 같은 게, 뜨겁게. 살갗 아래로 뭔가가 지나가는 감각이었다. 전기가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뜨거운 물이 지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아프지는 않았는데, 낯설었다. 너무 낯설어서 오히려 불안했다. "뭐야 이거." '후, 이제야 열렸군.' 스승의 목소리가 만족스럽다는 듯 울렸다. 만족스러워? 지금? 사람이 죽다 살아났는데 만족스러워? "뭐가 열렸는데요." 내가 되물었다. '제대로 베어보아라.' 설명은 그게 끝이었다. "그게 다예요? 설명이?" '설명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 놈이 다시 오는군.' 정말이었다. 한무천이 검은 안개를 끌며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놈의 눈에서 시뻘건 빛이 흘러나왔다. 사람 눈이라고 믿기 힘든 색이었다. "저기요, 사부님. 저 지금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몸이 알고 있다. 믿어보아라.' "몸을 믿으라니, 지금 그 몸이 죽다 살아난 몸인데요." '그러니 더욱 믿어야 하지 않겠느냐.' 논리가 이상했다. 근데 지금 이걸 따질 시간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검을 뻗었다. 놈의 어깨를 노렸다. 검끝에서 뭔가 다른 감각이 흘렀다. 서늘하고, 동시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검신을 타고 뻗어나가는 느낌이었다. 마치 검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내가 검을 쓰는 게 아니라, 검이 나를 이끄는 느낌. 한무천의 몸이 반쪽으로 갈라질 뻔했다. 놈이 비명을 질렀다, 처음으로. 그 소리가 동굴 벽을 타고 울렸다. 찢어지는 소리였다. 사람 소리인지 짐승 소리인지 구분이 안 됐다. "이, 이런 것이!" 놈이 뒤로 튕겨나갔다. 검은 안개가 흩어졌다. 안개가 걷히자 놈의 어깨에서 검은 액체 같은 게 흘러나오는 게 보였다. 피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속이 뒤틀렸다. 됐다. 그 틈에 나는 뒤도 안 보고 굴 입구를 향해 달렸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발이 땅에 제대로 붙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뛰었다. 뛰지 않으면 죽는다는 감각이 온몸을 밀어붙였다. 무릉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지금은 살아야 했다. 살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살아야 했다. '잘 뛰었다.' 스승이 칭찬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말을 던졌다. "이게 지금 칭찬할 상황이에요?" '그럼 혼을 내랴.' "아니 그것도 아니고요." '그럼 뭘 어찌하란 말이냐.'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알겠느니라.' 스승이 순순히 입을 닫았다. 그 순순함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짜증이 확 났다. 하지만 살았다는 게 우선이었다. 굴 밖으로 나오자 새벽 공기가 밀려들었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폐 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 순간 무릎이 완전히 꺾였다. 나는 그대로 흙바닥에 처박혔다. 얼굴에 진흙이 튀었다. 입안에도 흙이 들어왔다. 퉤퉤 뱉어냈다. 이 와중에 이런 게 신경 쓰이는 게 웃겼다. '괜찮은 것이냐.' "안 괜찮아요." 숨을 몰아쉬며 나는 하늘을 봤다. 별 하나 없는 흐린 하늘이었다. 몸 곳곳이 다 아팠다. 목은 아직도 조여드는 느낌이 남아 있었고, 팔뚝은 뜨거운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아 얼얼했다. 손목은 검을 쥐고 있느라 저렸다. 어깨뼈가 삐걱거렸다.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 어딘가가 콱콱 조여왔다. 살아있다는 게 이렇게 아픈 일인지 몰랐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겪게 만든 원흉이 지금 내 몸속에서 태연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몸을 좀 씻는 게 좋을 듯하다. 냄새가 심하구나.' "지금 그게 문제예요?"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느냐.' 이 사람, 아니 이 목소리는 진짜 스승이 맞는 걸까. 아니면 스승의 흔적을 흉내 내는 다른 무언가인 걸까. 확신이 안 섰다. 근데 말투는 진짜 똑같았다. 저 예스러운 말투, 저 뻔뻔함, 저 태연함. 가짜라면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흉내 낼 이유가 없었다. 이게 시작이라니.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건지, 감도 안 왔다. 당장 한무천만 해도 언제 또 쫓아올지 몰랐다. 저 검은 안개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는 걸, 나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스승은 죽지 않았다. 적어도, 완전히는. 그리고 그 사실이, 앞으로 내 인생을 훨씬 더 골치 아프게 만들 거라는 것도. 나는 흙바닥에 널브러진 채 눈을 감았다. 잠깐이라도 쉬고 싶었다. 하지만 몸속 어딘가에서, 그 예스러운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일어나라. 놈이 다시 온다.' "……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멀리서, 정말로, 검은 안개가 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