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관리국 조사팀이 흑정굴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람 수는 부족했다.
원래 셋이었던 조사원이 하나로 줄어 있었다.
둘은 어디 갔냐고 물으니 대답이 애매했다.
"사정이 있어서."
사정이 있어서, 라니.
그 말 뒤에 숨은 사정이 궁금했지만 캐묻지 않았다.
캐물어봐야 좋은 얘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았으니까.
남은 하나가 나를 보며 인상을 썼다.
키는 작고, 눈매는 매섭고, 팔짱을 낀 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게 딱 상관 계급의 습관이었다.
"당신, B급이라고 했지."
"네."
"그럼 앞장서."
조사팀장이라는 자였다.
말투가 딱 자기 편할 대로였다.
질문도 아니고 확인도 아니고, 그냥 통보였다.
'절차를 무시하는 자로군.'
스승이 조용히 평했다.
'저런 자를 상관으로 두면 부하가 먼저 죽어나가는 법이다.'
"부하가 아니라 저는 그냥 동행인인데요."
'그것도 곧 죽어나가는 쪽에 속하지 않겠느냐.'
말이 씨가 되는 법이라던데, 저 양반은 씨를 아주 대차게 뿌리고 있었다.
실제로 지부장이 정해준 절차는 훨씬 신중했다.
입구에서 신호만 보내고 대기하는 게 원칙이었다.
확인, 대기, 지원 요청, 그다음에 진입.
서류로 보면 세 단계는 더 있었다.
그런데 이 팀장이라는 사람은 벌써 굴 입구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발걸음에 망설임이 하나도 없었다.
저게 용기인지 무모함인지는 굴 안에 들어가야 알 것 같았다.
"저기요, 절차는..."
"절차는 실종자 살려놓고 따지죠."
말은 맞았다.
하지만 위험했다.
맞는 말과 안전한 말이 항상 같은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이미 여러 번 배웠다.
조은서도 함께였다.
가이드로 동행한다고 했는데, 아까부터 표정이 굳어 있었다.
평소 같으면 눈웃음이라도 한 번 흘리고 지나갈 사람인데, 오늘은 입가에 그 웃음조차 없었다.
"괜찮아요?"
내가 물었다.
"괜찮아요."
대답이 너무 빨랐다.
너무 빠른 대답은 보통 거짓말일 확률이 높았다.
경험상 그랬다.
굴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확 바뀌었다.
차갑고, 축축하고, 그 특유의 피 비린내가 났다.
발밑에서는 물기 밴 돌 소리가 났고, 벽을 타고 흐르는 검은 얼룩은 손을 대면 끈적하게 묻을 것 같았다.
실제로 대볼 생각은 없었다.
[검의(剑意) 4성 진입.]
어제와 다른 알림이었다.
숫자가 올랐다.
진유리의 치료 덕분인지, 어제 새로 각성한 검의의 여파인지 몰랐지만, 확실히 몸이 가벼웠다.
어깨가 뻣뻣하지 않았고, 손목에 걸리던 미세한 지연도 없었다.
좋아.
이 정도면 해볼 만했다.
'좋아하기는 이르다.'
스승이 딴지를 걸었다.
'네 몸은 늘 오르는 순간에 방심하는 버릇이 있느니라.'
"방심 안 해요."
'방심하고 있지 않느냐, 지금.'
'……'
할 말이 없었다.
정곡이었다.
안쪽으로 100미터쯤 들어갔을 때, 벽 틈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검은 벌레 떼였다.
크기는 손가락만 했고, 다리가 여러 개였고, 움직임이 파도처럼 한 방향으로 쏠렸다.
숫자가 셀 수 없이 많았고, 지나가는 자리마다 벽의 돌가루가 부스스 떨어졌다.
조사팀장이 소리를 질렀다.
"뭐야, 이거!"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까까지 절차 무시하고 앞장서던 사람이 이 정도 벌레 앞에서 저렇게 무너지는 게 신기했다.
사람이란 게 참, 뭐랄까, 종잇장 같았다.
"물러서요!"
내가 앞으로 나섰다.
검을 뽑았다.
칼날이 뽑히는 소리가 좁은 굴 안에 유독 크게 울렸다.
한 번 그었다.
벌레 열댓 마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검은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고, 냄새는 더 심해졌다.
[신형(新形) '단류(斷流)' 발현.]
건조한 알림이 또 떴다.
어제 무의식중에 썼던 그 기술에, 이름이 붙어 있었다.
뭐야, 이름까지 생겼네.
이름이 붙으면 뭐가 다른가 싶었는데, 확실히 다음번엔 더 자연스럽게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이 그 이름을 기억하려는 듯 손목 안쪽이 살짝 저렸다.
조은서가 뒤에서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그거, 무슨 등급 기술이에요?"
"몰라요."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벌레 떼 뒤로, 더 큰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림자가 벽을 긁는 소리, 무겁게 끌리는 발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섞여오는 낮은 숨소리.
숨소리만으로도 크기가 짐작됐다.
한무천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하급 술물, 음영수(阴影獸) 같은 것이었다.
윤곽이 흐릿하고,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엔 그냥 더 깊은 어둠만 있었다.
조사팀장이 뒷걸음질쳤다.
"이건 계약 밖이잖아!"
계약 밖이라는 말이 웃겼다.
계약서 어디에 음영수가 안 나온다고 써 있었나.
아마 없었을 거다.
있었으면 저 사람이 벌써 그 조항을 읊었을 테니까.
원래 절차대로였으면 이런 게 나올 굴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다.
임기응변이 필요했다.
빠르게 계산했다.
팀장은 전투력이 낮고, 겁을 먹었고, 지금 상태로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조은서는 가이드지, 전투원이 아니다.
남는 건 나 하나.
음영수의 크기와 속도, 지금 검의 4성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까지 대략 잡혔다.
길게 잡아도 몇 분.
"조은서 씨, 뒤로 빠져요. 팀장님도."
"당신은?"
"저는 좀 더 남을게요."
"미쳤어요? B급이 저런 거 상대로?"
"미쳤을 수도 있죠."
농담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농담을 안 하면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았다.
그들이 물러나는 걸 확인하고, 나는 다시 검을 세웠다.
검신에 남은 벌레 체액이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불쾌했지만 닦을 시간은 없었다.
음영수가 달려들었다.
검을 맞부딪쳤다.
손목이 저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어깨뼈까지 삐걱거리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밀리지 않았다.
어제보다 확실히 강해졌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더 오래 남아 있었고, 다리도 버텨줬다.
'성장 곡선이 이상하다.'
스승이 말했다.
"뭐가 이상한데요."
'보통은 이 정도 시간에 이만큼 오르지 않는다. 저 아이의 술법이 관여한 게 확실하다.'
"저 아이라뇨, 진유리요?"
'그렇다.'
'단순한 치료로 이 정도 상승 곡선이 나오는 법은 없느니라. 무언가가 더 있다.'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음영수가 다시 몸을 낮추고 달려들었고, 나는 검을 눕혀 그 옆구리를 흘려 쳤다.
빗맞았는지 놈이 잠깐 균형을 잃었다.
그 틈에 팔뚝을 벤 자국을 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완전히 처치할 힘까지는 없었다.
음영수를 겨우 밀어내고 나서, 우리는 결국 실종자를 찾지 못한 채 후퇴했다.
팀장은 오는 길보다 나가는 길에 더 빨리 걸었다.
아까 그 성큼성큼 걷던 기세는 어디 갔는지, 이제는 거의 뛰다시피 했다.
밖으로 나오자, 마을 사람들이 이미 소식을 듣고 모여 있었다.
소문은 빨랐다.
누가 벌써 다녀와서 옮겼는지,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얘기가 벌써 부풀어 있었다.
"저 사람이 흑정굴을 두 번이나 살아 나왔대."
"두 번이나?"
"들었어, 나도."
숫자가 부풀려지는 속도가 벌레보다 더 빨랐다.
사람들 속에서 진유리가 걸어 나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 팔을 다시 잡았다.
손이 차가웠는데, 그 차가움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또 상처났어."
"이번엔 안 났는데."
"났어."
"진짜 안 났어요."
"났다니까."
말싸움이라기보단 확인이었다.
그녀가 저렇게 말하면 대개 맞았다.
그녀가 손을 대는 순간, 팔뚝 안쪽에서 뭔가가 확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근육이 아니라 그보다 더 안쪽, 회로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그 자리가 움찔거렸다.
[검의 회로, 미확인 반응 감지.]
이번엔 알림이 처음 보는 문구였다.
스승도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더 불안했다.
스승은 보통 뭐라도 한마디씩 던지는 사람인데.
"사부님?"
'……저 아이와 네 회로가, 단순한 치료 관계가 아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무슨 뜻이에요, 그게."
'말 그대로다. 치료 이상의 무언가가 오가고 있다는 뜻이다.'
무슨 뜻인지 더 물으려는데, 진유리가 갑자기 손을 뗐다.
표정이 살짝 굳어 있었다.
평소의 그 짓궂은 표정이 아니라, 뭔가를 들켜버린 사람의 표정이었다.
"뭔가 이상해."
"뭐가."
"몰라. 근데 이상해."
그녀도 나만큼 대답이 부실했다.
둘 다 뭐가 이상한지도 모르면서 이상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시선이 우리 둘에게 쏠려 있었다.
누군가는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켰고, 누군가는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소문의 두 번째 장이 벌써 만들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조은서도 그 자리에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웃고 있었는데, 아까와는 다른 웃음이었다.
뒤끝이 남는 게 아니라, 뭔가를 확인한 듯한 웃음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궁금했던 답을 지금 막 손에 넣은 사람 같은.
그 웃음이 몇 초쯤 이어지다가,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팀장 쪽으로 걸어가 뭐라 말을 걸었다.
평소의 웃음으로 완벽하게 되돌아가 있었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더 이상했다.
그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오래.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굴 밖으로 나왔는데, 마음은 아직 굴 안에 반쯔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