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통증이 아니라 위화감이었다.
몸이 너무 가벼웠다. 원래 내 몸이라면 이 정도 충격을 받고 이렇게 가뿐할 리가 없었다. 폐가 작았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갈비뼈가 이상하게 좁게 움직였다. 손가락이 얇았다.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고 있었는데, 그 감촉이 낯설어서 처음엔 누가 내 얼굴에 천을 덮어놓은 줄 알았다.
손을 들어보려다가 나는 그 손이 내 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손톱에 옅은 분홍빛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손목은 가늘었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오래된 흉터가 있었다. 나는 그 흉터들을 세다가 그만두었다. 셀 수 없이 많았다. 마치 누군가가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이 손을 어딘가에 부딪히고 긋고 짓눌러온 것처럼 보였다.
이상한 건 그뿐이 아니었다. 몸의 균형감이 완전히 달랐다. 무게중심이 낮았고, 걷는 법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잠깐 이게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꿈이라면 이렇게 구체적으로 아프고 이렇게 구체적으로 냄새가 날 리가 없었다. 흙냄새, 매연 냄새, 그리고 어딘가에서 나는 낯선 향수 냄새.
거울을 찾을 겨를도 없이 상황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나는 어느 골목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위로는 낯선 색의 하늘이 있었다. 노을이 지는 시간인 것 같았는데, 색이 이상했다. 붉은색이 아니라 옅은 자주색이었다. 옆으로는 도로가 있었다. 자동차가 지나갔는데 모양이 이상했다. 바퀴가 지면에서 살짝 떠 있었다. 이 세계의 물리 법칙이 내가 알던 것과 다르다는 걸 그 순간 어렴풋이 짐작했다.
나는 원래 이런 세계 사람이 아니었다. 폭탄이 터졌던 그 순간까지도 나는 분명 다른 곳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여기, 성별도 다르고 몸도 다른 채로, 낯선 골목 바닥에 누워 있었다. 이게 사후세계인지, 다른 차원인지, 아니면 그냥 내 머리가 고장 난 건지 판단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리고 브레이크 소리가 났다.
"어! 저기 사람 있어!"
차가 급정거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 구두 소리, 그리고 낯선 목소리가 이어졌다. 구두 소리는 다급했다. 뛰다시피 걸어오는 소리였다.
"괜찮으세요? 정신이 드세요?"
고개를 든 자리에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나이는 20대 초중반쯤, 눈이 크고 걱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타입이었다. 명품 브랜드처럼 보이는 코트를 입었지만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 손이었다. 낯선 사람을, 그것도 골목 바닥에 쓰러진 정체불명의 사람을 향해 아무 망설임 없이 뻗어오는 손.
이 여자가 선우다인이었다.
훗날 내가 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가장 깊이 얽히게 될 사람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저 낯선 여자, 걱정이 많은 얼굴, 그리고 이상하게 사람을 진정시키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이름이 뭐예요? 다친 데 있어요?"
대답하려 했지만 목이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려는 순간 이질감이 먼저 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게 진짜 내 성대가 아니라는 자각이었다. 나는 대신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는 뜻이었는데, 그녀는 그걸 아프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일단 차에 태울게요. 병원 가요."
반항할 힘도,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반항해서 뭘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 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나는 그 팔에 이끌려 차에 실렸다. 차 안에서는 가죽 냄새가 났다. 뒷좌석에 앉는 내내, 나는 계속 손가락의 흉터를 만지고 있었다. 그게 유일하게 확실한 정보였다. 이 몸의 주인은 뭔가를, 오랫동안, 견뎌왔다는 사실.
병원에서의 검사는 짧았다. 외상은 없다는 소견이 나왔다. 다만 오래된 상처들이 발견됐고, 그 상처들의 위치와 형태를 두고 의사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손목의 흉터, 팔 안쪽의 흉터, 그리고 등에 있던 흉터까지. 의사는 그걸 사진으로 찍었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그때는 정확히 몰랐다. 나중에야 알게 된다.
"기억이 안 나요?"
선우다인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건 연기가 아니었다. 정말로 몰랐다. 이름도, 얼굴도, 이 몸의 과거도. 다만 그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남자였고, 다른 세계에서 왔고, 도망치다가 폭탄에 맞았다는 이야기를 여기서 늘어놓았다면 아마 정신병동에 갔을 것이다. 그것도 가장 깊숙한 병동으로.
기억을 잃었다고 하는 게 가장 안전한 거짓말이었다.
"이름도 몰라요?"
"...네."
목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내 목소리가 아니었다. 몇 번을 말해도 그 사실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마치 남의 입을 빌려 말하는 기분이었다.
"신분증 같은 건 없었어요? 지갑이라도."
간호사가 옷 주머니를 확인해보더니 학생증 하나를 꺼냈다. 사진 속 얼굴이 지금의 이 몸과 같았다. 웃지 않은 사진이었다.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이 어딘가 지쳐 보였다.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지안.
그게 이 몸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게 내가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얻은 이름이 되었다. 원래 갖고 있던 이름은, 이제 이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서지안 씨. 우선 그렇게 부를게요."
선우다인이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마음을 놓게 만들었다. 낯선 사람인데 낯설지 않은 온기가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쉽게 남을 걷어붙이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문제는 그 다정함 뒤에, 이 여자의 가문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이 숨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가족한테 연락은요?"
"없어요. 기록에... 아무것도 안 나와요."
간호사의 말에 선우다인의 표정이 바뀌었다. 잠깐이었지만 분명했다. 걱정에서 무언가 다른 것으로. 그 눈빛에 아주 짧게 계산 같은 것이 스쳤다. 나는 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다.
"그럼 일단 우리 집으로 데려갈게요."
의사가 뭐라 반문하려 했지만 선우다인은 이미 결정한 뒤였다. 종이에 뭔가를 적어 내밀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보증서였다. 신원 미상의 환자를 개인이 인수하겠다는, 웬만한 병원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요청이었다. 보통은 경찰에 신고하고 보호시설로 넘기는 게 절차였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 절차를 종이 한 장으로 건너뛰고 있었다.
의사는 잠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규정이 어떻고, 절차가 어떻고 말을 꺼내려는 찰나였다.
그런데 병원 직원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서류를 확인한 순간, 다들 허리를 굽혔다. 방금까지 곤란한 표정을 짓던 의사도, 서류에 도장을 찍던 간호사도, 심지어 복도를 지나가던 다른 직원까지 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그 광경을 멀뚱히 바라봤다. 뭐지, 이 여자. 갑자기 병원 전체가 조용해지는 이 분위기는 뭐지.
"그럼 부탁드릴게요. 서지안 씨 짐은 제가 챙길게요."
선우다인은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말하고는, 침대 옆에 놓인 몇 안 되는 소지품을 직접 챙겼다. 학생증 하나,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열쇠 하나. 그게 이 몸이 남긴 전부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이 이름이 무게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선우.
성 하나에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병원이라면, 이 여자의 뒤에 있는 게 평범한 집안일 리가 없었다. 나는 아직 이 세계의 지도조차 그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미 그 지도의 한가운데에, 이유도 모른 채 던져진 느낌이었다.
차에 다시 올라탈 때, 선우다인이 내 쪽을 흘긋 보며 웃었다.
"걱정 마요. 우리 집 크니까 방 하나쯤은 남아요."
그 말이 위로였는지 자랑이었는지 구분이 안 갔다. 나는 그저 창밖으로 지나가는, 바퀴가 지면에서 살짝 떠 있는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단 이 여자에게 붙어 있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런데 그 판단이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 올지는, 그때의 나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