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혼수남의 세 연인

3화

그날 오후,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삐걱- 하는 소리와 함께 문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으니, 본좌는 그 소리만으로도 누군가 찾아왔음을 직감하였다. 이번엔 세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섰으니, 민지와 서연, 그리고 처음 보는 낯익은 얼굴의 여인이 함께였다. '삼인성행*三人成行: 세 사람이 무리를 이루어 다닌다이라, 참으로 위엄 있는 행차로다.' 허나 그 위엄이라는 것이 무색하게, 세 여인의 손에는 각기 다른 봉투와 과일 바구니, 그리고 무언가 요망하게 생긴 인형이 들려 있었다. 병문안이라는 것이 본래 이런 것인가, 본좌는 잠시 의아하였다. 분홍과 금발이 뒤섞인 쌍둥이 상투*雙紇: 머리 양쪽을 묶는 방식 머리를 한 그녀는, 문가에 서서 본좌를 바라보다가 이내 눈물을 쏟았다. "지훈 오빠..." 그 목소리가 병실 벽을 타고 울렸다. 본좌는 순간 가슴이 저릿하였다. "...하윤이냐." 그 이름이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낯이 익었다. 아니, 낯익은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리움이 솟구쳤다. 마치 오래전 헤어진 사매*師妹: 같은 스승 아래 배운 여동생를 다시 만난 듯한 감정이었으나, 정작 그 관계가 사매인지 연인인지조차 본좌는 알지 못하였다. '참으로 기괴한 일이로다. 정을 기억하되 연을 기억하지 못하니.' 하윤은 침대 곁으로 다가와 본좌의 손을 붙잡았다. 그 손길이 따뜻했다. 마치 화롯불을 쥔 듯한 온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진짜 걱정했어요. 매일매일 왔었어요." "고맙구나." 본좌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으나, 몸을 일으킬 힘이 없었다. 대신 손을 살짝 쥐어주는 것으로 답하였다. "매일 왔다니, 그 정성이 참으로 하늘에 닿을 만하도다. 무슨 서약이라도 하였느냐?" "서약이 아니라... 그냥 보고 싶어서요." 하윤이 코를 훌쩍이며 답했다. 그 순박한 대답에 본좌는 잠시 말을 잃었다. 민지는 그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다정함과 어색함이 반쯤씩 뒤섞여 있었으니,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는 듯하면서도 연인을 대하는 듯한 낯빛이었다. "밥은 좀 먹었어? 죽 시켜줄까?" "죽이라니, 본좌는..." "먹어야 돼. 살 다 빠졌잖아." 민지의 말투가 단호해졌다. 그 단호함 속에는 걱정이 뭉쳐 있었다. "본좌의 몸은 본래 강건하여..." "강건은 개나 줘. 얼굴이 반쪽이야." 본좌는 그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강건함을 논하려 했으나, 민지의 눈빛이 워낙 매서워 감히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참으로 강자존*强者存: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의 이치가 이곳에도 적용되는가.' 서연은 창가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냉담했으나, 시선만은 계속 본좌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 시선이 마치 화살촉처럼 날카로우면서도, 동시에 물기를 머금은 듯한 이상한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저 여인은 어찌 저리 마음을 숨기는가.' 본좌는 그것을 눈치챘으나 굳이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럴 여력도 없었으니. "서연이는 안 오려고 했어." 민지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서연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내가 언제." "어제 오빠 병실 앞까지 왔다가 그냥 갔잖아." "그건..." 서연이 말을 잇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이 본좌에게는 마치 무공을 감추는 은거고수*隱居高手: 세상에 숨어 사는 고수의 태도처럼 보였다. "오빠, 우리 다 왔어요. 매일 순번 정해서 왔어요." 하윤이 다시 말했다. 그 순수한 어조에 본좌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순번이라니, 어찌 그런 수고를..." "수고는 무슨. 당연한 거지." 민지가 끼어들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짧게 끊어지는 말투가 섞여 있었다. "우리 다 너 좋아하니까. 그니까 걱정하지 마. 그냥 회복만 잘해." 그 말에 서연이 살짝 미간을 좁혔으나 반박하지는 않았다. 본좌는 세 여인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다정함과 냉담함과 눈물, 세 가지 서로 다른 감정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본좌를 향해 있었다. '참으로 복이 많은 몸이로다. 삼처사첩*三妻四妾도 아니거늘, 어찌 이리 많은 정을 한 몸에 받는가.' 그러나 그 복 뒤에 무언가 불길한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본좌는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마치 화창한 봄날 하늘에 먹구름이 슬며시 밀려드는 것처럼, 이 병실 안의 온기 밑에도 서늘한 기운이 스며 있었다.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 민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의 온도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뭐이냐." "...유진이 기억나?"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병실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하윤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서연의 표정은 더욱 딱딱해졌다. 병실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마치 누군가 커다란 바위를 방 한가운데 던져놓은 듯한 정적이었다. "유진..." 본좌는 그 이름을 되뇌었다. 무언가 심장 깊은 곳에서 저릿한 감각이 올라왔으나, 구체적인 기억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었다. 마치 짙은 미궁*迷宮: 길을 잃게 만드는 복잡한 공간 속에서 한 줄기 빛만 새어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모르느니라. 그 이름이... 낯설지 않은데, 형체가 떠오르지 않는구나." 민지와 서연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 눈빛 속에는 안도와 불안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으나, 본좌는 그 눈빛의 교환이 무언가 중대한 것을 감추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됐어. 그냥... 나중에 얘기하자." 민지가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러나 본좌는 그 화제 전환이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것임을 눈치챘다. '이 자들이 무언가를 은폐하고 있도다. 허나 지금은 캐물을 기력도 없으니, 잠시 묵인하리라.' 그때, 창밖으로 시선이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본좌는 다시 그 그림자를 보았다. 이번엔 형체가 더욱 뚜렷했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인의 실루엣이, 병실 창밖 나무 그늘 아래 서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자태가 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마치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듯 고요하였다. '저것은... 필시 원혼*怨魂: 원한을 품고 떠도는 넋이 아니고서야.' 심장이 쿵, 하고 크게 뛰었다. 손끝이 저절로 떨려왔다. "저것을 보아라!" 본좌가 소리치며 창을 가리켰다. 그 목소리가 병실을 쩌렁하게 울렸다. 그러나 세 여인이 고개를 돌렸을 때, 그림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뭐가... 없는데?" 민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윤의 얼굴이 새하얗게 굳었고, 서연은 창가로 다가가 밖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어." 서연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오히려 그 확신 없음이, 그녀 역시 무언가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였다. 본좌는 침대에 누운 채로도 그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가, 저 창밖 어딘가에서 여전히 이 병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서늘한 감각이, 그것이 결코 헛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윤이 본좌의 손을 더욱 세게 붙잡았다. 그 손이 조금 전보다 훨씬 차가워져 있었다. "오빠... 괜찮아요? 뭐가 보였어요?" 본좌는 답하지 못하였다. 그저 창밖의 나무 그늘을, 그 텅 빈 자리를 응시할 뿐이었다. '분명 보았거늘. 저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 순간, 본좌의 머릿속에 유진이라는 이름과 그 그림자가, 마치 서로 얽힌 실타래처럼 겹쳐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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