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무적의 히어로, 전리품이 되다

5화

결속구가 손목을 파고들었다. 가느다란 금속이 살갗을 죄어오는 감각이 저릿저릿 뼈까지 전해졌다. 나는 다시 한번 몸을 비틀며 저항을 시도했다. 어깨를 뒤로 젖히고, 발끝으로 바닥을 밀어내고, 팔꿈치를 있는 힘껏 당겨봤다. 그러나 파란 필드가 즉시 반응했고, 몸 안쪽에서 남은 힘의 마지막 조각까지 빨려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필드의 표면이 잔물결처럼 일렁이며 내 쪽으로 밀려왔다가, 그대로 살갗을 훑고 지나갔다. '제발 조금만, 조금만 더.' 손끝에 아주 미약한 빛의 파편이 맺혔다가 이내 흩어졌다. 그마저도 손톱만 한 크기였고, 채 반짝이기도 전에 필드에 잡아먹혔다. '이 정도 가지고는···' 비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나 자신에게 하는 비웃음이었다. 노강호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지막이 웃었다. "그래, 계속 발버둥 쳐봐." 그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심지어 지루하다는 듯 하품이라도 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발버둥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확인시켜주는 것도 재밌으니까." 그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봤다. 마치 어항 속 물고기가 유리벽에 부딪히는 걸 구경하는 사람처럼, 그 시선에는 어떤 긴장도 없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그를 노려봤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폐 안쪽까지 필드가 스며든 것 같았다. "강철거인이 알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말해봤자 별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뱉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말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조차 목구멍을 긁고 나오느라 갈라졌다. "알겠지." 노강호가 심드렁하게 답했다. 그는 마치 내일 날씨 이야기를 하듯 태연했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넌 이미 내 손안에 있는 채로 나타날 거고." 그가 손짓하자 흑정예 대원 하나가 다가와 내 어깨를 강하게 눌렀다. 숨이 턱 막혔다. 손아귀 힘이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뼈가 눌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이 자식들, 힘 조절도 안 하네.' 속으로 욕을 삼켰다. 겉으로 드러낼 여유조차 없었다. 필드의 압박이 점점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온몸이 무거운 물속에 잠긴 것 같은 감각이었다. 손끝, 발끝, 심지어 눈꺼풀까지 무거워졌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팍이 안쪽으로 짓눌리는 듯했고, 내뱉을 때는 힘이 함께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계속 뽑혀나가면.' 두려운 생각이 스쳤지만 끝을 맺을 수 없었다. 생각의 끝자락마저 필드가 삼켜버리는 기분이었다. 창고 안은 조용했다. 아니, 완전한 정적은 아니었다. 천장 어딘가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멀리서 환기구가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 그리고 흑정예 대원들의 낮은 숨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그 모든 소음 위로, 유난히 또렷하게 파고드는 소리가 있었다. 끼릭··· 끼릭··· 바퀴 소리는 여전히 다가오고 있었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속도로, 어둠 깊은 곳에서 창고 중앙 쪽으로. 그 소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여유로워서 더 소름이 끼쳤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걸어오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려 했지만, 목마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근육이 명령을 듣지 않았다. 필드가 목덜미까지 파고든 건지, 아니면 순전한 공포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누구야.'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노강호가 저렇게 흥분한 기색을 보이는 인물이 대체 누구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가 저렇게 여유롭게, 저렇게 즐겁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저 바퀴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오래된 경계심이 되살아났다. 심장 어딘가, 아주 깊숙한 곳에 봉인해뒀던 감각이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설마.' 그 한 글자가 머릿속을 온통 헤집었다. 설마, 라니. 설마 그게 가능할 리 없었다. 그 사람은··· 노강호는 그 반응을 즐기듯 나를 내려다봤다. 그의 입꼬리가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궁금하지?" 그가 물었다. 목소리에 웃음기가 스며 있었다. 마치 아이에게 선물 상자를 흔들어 보이며 재촉하는 어른 같았다. 대답할 힘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눈빛만은 그를 향해 흔들리지 않고 고정되어 있었다. 그 정도 자존심은 남아 있었다. 몸이 묶여도 시선은 묶이지 않는다는 걸,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곧 알게 될 거야." 그가 창고 저편을 가리켰다. 손끝이 정확히 어둠의 한 지점을 향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린 사람인지." 그의 목소리에는 처음으로 진짜 즐거움이 섞여 있었다. 마치 오래 준비한 무대의 막을 올리는 연출가처럼, 그는 두 손을 살짝 벌리며 그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무대라니.' 속으로 조소했지만, 그 조소마저 오래가지 못했다. 바퀴 소리가 이제 몇 걸음 거리까지 다가왔다. 끼릭··· 끼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창고 안의 온도가 실제로 낮아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결속구에 눌린 손목마저 그 냉기를 느끼는 듯했다. 어둠의 경계 바로 앞, 빛이 닿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희미한 실루엣이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어둠보다 조금 더 짙은 얼룩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얼룩은 윤곽을 갖추기 시작했다. 휠체어의 윤곽, 그리고 그 위에 앉은 누군가의 어깨선. 좁은 바퀴 두 개, 낮게 처진 팔걸이, 그리고 그 위에 얹힌 가느다란 손. '저건···'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목구멍 어딘가가 순간적으로 완전히 막혀버린 느낌이었다. 결박된 몸으로도 나는 반사적으로 그쪽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눈꺼풀이 무겁다는 감각조차 잊어버렸다. 실루엣의 얼굴이 마지막 어둠을 벗어나 빛 속으로 들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마치 누군가 안에서 문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설마 그일 리 없어.'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럴 리 없다고, 그건 불가능하다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고. 그러나 확신은 이미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논리보다 감각이 먼저 반응했다. 손끝이 떨리고,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다. 죽었다고 들었던, 두 번 다시 볼 일 없을 거라 믿었던 그 얼굴이, 지금 어둠을 벗어나 나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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