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의자에 앉혀지자마자 양팔이 쇠사슬에 묶였다.
차가운 금속이 손목을 파고들었다.
살갗이 쓸리는 소리가 났다. 철컹, 철컹. 쇠사슬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 방에 정적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방 안은 좁고 어두웠고, 벽에 걸린 등불 몇 개가 흔들리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등불에서 나는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딘가 곰팡이 냄새도 섞여 있었다. 학교 화장실 청소도구함 같은 냄새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게 좀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도 배는 고픈 법이니까.
조광일이 내 앞에 의자를 하나 놓고 앉았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절제되어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이런 자리에 앉아본 사람 같았다. 익숙했다. 그게 더 무서웠다.
강목현과 다른 갑옷 입은 남자 하나가 문 앞을 지켰다.
하도윤이었다.
흰 검이 그의 허리에 걸려 있었다. 칼집에 새겨진 문양이 등불 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저 칼로 사람 몇 명이나 벴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곧바로 지웠다. 지금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묻겠다."
조광일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아서 더 서늘했다.
"너는 다른 세계에서 마신군의 지시를 받고 이 소환에 섞여 들어온 것이 맞나."
"아니요."
즉답이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마신군이 누군지도 몰랐으니까.
"신께서 너를 부르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여기 있는가."
"저도 몰라요. 저희는 그냥 학교 끝나고 집 가다가 끌려온 거예요."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느꼈다. 담담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거짓을 말하면 고통이 따른다."
"진짜예요, 진짜라니까요."
진짜라니까요, 라고 세 번쯤 더 말하고 싶었다. 근데 그 말을 반복한다고 믿어줄 사람 같지 않았다. 조광일의 눈은 이미 뭔가를 확신하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
조광일이 손을 들자 하도윤이 걸어왔다.
발소리가 무거웠다. 갑옷이 부딪히는 금속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저벅, 저벅. 그 소리만으로도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허리에서 단검을 꺼냈다.
짧고 얇은, 그저 위협용은 아닌 진짜 칼이었다. 칼날에 등불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나는 눈을 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더 무서울 것 같았다.
"셋째 질문. 너와 함께 온 여자, 윤서아는 너와 무슨 관계인가."
"친구예요. 그냥 오래된 친구."
"그것뿐인가?"
"네, 그것뿐이에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내가 아는 한에서는. 서아와 나는 유치원 때부터 알던 사이였고, 그 이상의 무언가로 발전한 적은 없었다. 근데 이 상황에서 그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하도윤의 칼끝이 내 가슴을 살짝 찔렀다.
뜨거운 통증이 확 퍼졌다.
"윽!"
숨이 턱 막히면서 눈앞이 하얘졌다. 이런 게 진짜 통증이구나. 게임에서 캐릭터 죽을 때 나오는 이펙트 같은 게 아니라, 진짜 몸이 찢기는 느낌.
"그것뿐이라는 대답이, 그것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조광일이 말했다. 그 말투가 너무 논리적이라서 오히려 더 화가 났다. 이 새끼가 지금 나한테 철학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둘 다 축복이 없다는 사실이, 우연이라고 믿기엔 지나치게 특이하다."
"우연이 아니면 뭔데요. 저희가 뭘 어쨌다는 건데요!"
목소리가 커졌다. 억울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이 사람들은 대체 무슨 근거로 우리를 의심하는 걸까. 축복이 없다는 게 죄가 되는 세상이라니.
칼이 다시 갈비뼈 사이를 찔렀다.
숨이 턱 막혔다.
"으윽…!"
피가 옷을 적셨다. 옷감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느낌이 선명했다. 살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도 함께 올라왔다. 이거 진짜 죽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상한 건, 통증이 예상보다 빨리 잦아든다는 거였다.
찔린 자리가 뜨거웠다가, 곧 서늘해졌다.
마치 상처 위로 얼음이 덮이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착각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진짜로 그런 감각이 느껴졌다. 뜨거움에서 서늘함으로, 그리고 그 서늘함이 다시 무감각으로.
"···이상하군."
조광일이 눈을 가늘게 떴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 확신 아닌 다른 감정이 스쳤다.
하도윤도 내 상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출혈이 멈췄다."
하도윤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도 당혹감이 섞여 있었다.
나도 내 가슴을 내려다봤다.
칼에 찔린 자리에서 피가 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 가장자리가 서서히 붙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슬로모션으로 찍은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벌어졌던 살이 조금씩, 정말 조금씩 맞물리고 있었다.
···이게 뭐지.
【알림. 신체 이상 반응이 감지됩니다.】
귀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그 목소리가 들렸다. 건조하고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이런 상황에도 저런 목소리는 참 한결같구나, 싶은 생각이 스쳤다.
놀라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나만 들은 소리였다.
【생명 활력이 재분배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린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생명 활력이 뭔데. 재분배는 또 뭐고. 이런 걸 설명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제일 답답했다.
하지만 손끝이 이상하게 차가워지는 감각은 분명했다. 마치 몸속의 뭔가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는 느낌. 피가 역류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가 빠져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조광일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마저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축복이 없는데 상처가 낫는다."
그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확신에서 의심으로, 의심에서 다시 뭔가 다른 감정으로.
"이것이 신의 축복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인가."
방 안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숨쉬기가 힘들어질 정도였다.
강목현과 하도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뭔가 판단을 내리려는 눈치였다. 둘 사이에 말없는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나는 그 대화의 내용을 알 수 없어서 더 불안했다.
"···데려와라."
조광일이 짧게 명령했다.
"누구를요?"
내가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하도윤이 문밖으로 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졌다가, 곧 다시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 끌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을 끄는 소리, 쇠사슬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낮은 신음.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서아였다.
손목에 쇠사슬이 감겨 있고, 옷 여기저기 흙과 핏자국이 있었다. 얼굴도 창백했다. 원래도 하얀 피부였는데, 지금은 거의 회색빛에 가까웠다.
"서아야!"
목이 터질 것처럼 소리쳤다. 쇠사슬 때문에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준서야…"
서아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겨우 내 이름 한 마디 부르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조광일이 서아를 내 옆에 세우게 했다.
하도윤이 서아의 팔을 잡고 억지로 세웠다. 서아가 다리를 휘청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이 힘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으면."
조광일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입꼬리가 서늘하게 올라갔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방금까지의 의심스러운 눈빛과는 또 다른,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
"저 아이가 먼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쇠사슬이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도윤이 서아의 팔을 붙잡아 조광일 앞으로 끌고 갔다.
서아의 발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서아의 눈이 나를 향했다.
두려움보다는 이상하게 담담한 눈빛이었다. 마치 이미 각오한 사람 같은 눈빛. 그 눈빛이 오히려 나를 더 무너지게 만들었다.
'서아야,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속으로 외쳤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조광일이 소매 안에서 새로운 단검 하나를 꺼냈다.
이번 칼은 아까 것보다 좀 더 길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끝이 등불 빛을 받아 유난히 예리하게 보였다.
칼날이 등불 빛에 번뜩였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그 힘의 정체가 무엇인가."
나는 쇠사슬을 당기며 소리쳤다.
쇠사슬이 손목을 파고드는 게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몰라요! 진짜로 모른다고요!"
목이 다 쉬어버릴 것 같았다. 이 말을 몇 번째 반복하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모른다는 게 사실인데, 어떻게 더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조광일의 손이 서아의 가슴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칼끝이 서아의 옷깃에 닿았다. 서아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숨소리마저 크게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등불 심지가 타는 소리, 쇠사슬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소리, 내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뒤섞여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칼끝이 서아의 살갗을 향해 조금 더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