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다음 날 병원 문을 열자마자 로비가 시끄러웠다.
"원장님, 얘 좀 봐주세요! 밤새 안 먹고 계속 헐떡거려요!"
중년 여자분이 노란 고양이를 담요에 싸안고 뛰어들어왔다. 담요 밖으로 삐죽 나온 고양이 얼굴이 이미 파랗게 질려 있었다.
조민석은 없었다. 어제 퇴근하라고 한 뒤로 오늘은 휴무를 낸 모양이었다.
잘 됐다. 저 인간 얼굴 보면서 진료할 자신이 없었다. 어제 있었던 일들, 그 눈빛 교환, 그 애매한 침묵. 오늘 아침에 마주쳤으면 나는 분명 어색하게 웃다가 서류철을 떨어뜨렸을 거다.
"원장님, 빨리요!"
보호자의 목소리가 다시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나는 서둘러 진료복 소매를 걷어붙였다.
고양이를 진료대에 올리자마자 이하준의 지식이 쏟아졌다.
입안 점막 색, 호흡 패턴, 복부를 만졌을 때의 반응까지, 마치 누가 옆에서 답안지를 불러주는 느낌이었다.
손가락이 저절로 고양이의 잇몸을 벌리고, 눈꺼풀을 살짝 뒤집고, 배 아래쪽을 지그시 눌러본다. 마치 몸이 나를 리모컨 삼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방관자, 조종당하는 인형에 가까웠다.
"신부전 초기 증상이네요. 혈액검사 해봐야 확실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수액 처치가 우선이에요."
"신부전이요? 얘가 겨우 세 살인데요?"
"나이는 상관없어요. 사료 성분이나 물 섭취량 문제일 수도 있고요. 최근에 사료 바꾸신 적 있으세요?"
"아... 한 달 전쯤에 좀 싼 걸로 바꿨는데."
"그거네요. 일단 오늘은 급한 것부터 처리하고, 나중에 사료 상담도 다시 해드릴게요."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놀랐다. 나는 수의대 였다. 신부전이 뭔지도 몰랐던 놈이 지금 자연스럽게 이런 소리를 하고 있다니. 이 정도면 거의 사기 아닌가. 자격증도 없이 남의 자격증으로 영업하는 그런 느낌.
[전도서 1:9,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아니, 나한테는 완전 새 것인데요. 며칠 전까진 고양이 신부전이 뭔지도 몰랐다니까요. 성경님, 그쪽 세계에서는 다 아는 상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인간계 출신이라고요.
혈액검사 결과가 나오자 크레아티닌 수치가 확실히 높았다.
예측이 맞았다는 사실에 잠깐 손끝이 저릴 정도로 짜릿했다.
이게 내 실력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뭔가 해냈다는 기분은 진짜였다. 마치 로또 자동번호가 1등에 당첨된 느낌이랄까. 내가 고른 건 아니지만 결국 내 손에 들어온 돈이니까.
수액 라인을 잡고 처방을 내리는 사이, 로비 쪽에서 또 소란이 들렸다.
"저기요, 얘 다리를 못 움직여요!"
이번엔 강아지였다. 아까 그 노란 고양이 보호자가 데려온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손님이었다. 하얀 털에 까만 얼룩이 있는 시고르자브종, 젊은 남자가 안고 뛰어들어온 참이었다.
오늘 병원이 왜 이렇게 바쁜 거지. 개업 첫날부터 이런 러시가 있다는 게, 손님이 그리웠던 나로서는 반갑기도 하면서 동시에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욥기 5:7,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야, 나는 개고생을 위해서 이 세계에 온 것 같은데. 성경도 이럴 때만 골라서 등장하는 거 좀 얄밉지 않나. 힘든 순간에 딱 나타나서 위로는 안 해주고 확인사살만 하고 사라지는 스타일.
강아지를 살피니 척추 쪽에 문제가 있었다. 계단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손끝으로 등뼈를 하나씩 짚어가며 반응을 확인하는데, 특정 부위에서 강아지가 낑낑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디스크 탈출 초기 증상. 안정과 소염제로 지켜봐야 하는 케이스였다.
"수술까지 갈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다만 며칠간은 케이지에서 절대 안정시켜야 하고, 계단이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게 하시면 안 됩니다."
"아... 얘가 원래 소파에서 막 뛰어내리는 걸 좋아해서."
"그게 문제였을 수도 있어요. 당분간은 낮은 발판이라도 놔주세요."
보호자는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까지 했다. 나는 그 진지한 얼굴을 보며 묘한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 신뢰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사실은 껍데기만 원장이고 속은 얼떨결에 들어온 세입자인데.
한 시간 만에 세 건의 진료를 연속으로 처리했다. 고양이, 강아지, 그리고 중간에 잠깐 왔다 간 앵무새 발톱 손질까지.
간호 데스크의 직원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원장님 오늘 컨디션 좋으신가 봐요. 진단 속도가 평소보다 훨씬 빠른데요. 예전엔 좀 신중하게 이것저것 재보시는 스타일이셨는데, 오늘은 딱딱 나오시네요."
"...그런가요."
애매하게 웃으며 넘겼다. 등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흘렀다.
사실은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 이하준의 지식이 잘하는 거지만, 그걸 어떻게 설명해.
"저 몸속에 다른 사람 영혼이 들어와서 원래 실력이 자동으로 나오는 거예요" 하면 바로 정신병동 직행이다. 아니, 요즘은 정신병동도 예약이 밀려서 대기해야 한다던데, 그럼 그냥 인터넷 밈으로 소비되고 끝날지도 모르겠다. "수의사 빙의설" 뭐 이런 제목으로.
*
강태현이 그날 오후에 다시 찾아왔다.
복실이 상태를 보러 왔다는 명분이었지만, 눈은 계속 나를 좇고 있었다. 마치 카메라 렌즈가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사람, 배우 아니었나. 시선 처리가 프로급이라 더 부담스러웠다.
"원장님, 아까 로비에서 봤는데 진짜 신기하더라고요."
"뭐가요."
"고양이 아주머니가 증상 말하기도 전에 딱 진단 내리시던 거요. 무슨 초능력자 같았어요."
초능력자,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초능력의 정체가 남의 몸에 빙의해서 얻은 남의 지식이라는 게 좀 씁쓸할 뿐. 초능력이라기보단 불법 다운로드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정품 구매자는 따로 있는데 내가 무단으로 스트리밍하고 있는 그런 죄책감.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운이라기엔 세 건 연속으로 다 맞추신 거잖아요."
강태현이 소파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나는 서류철을 뒤적이는 척했다. 딱히 볼 것도 없는 서류를 뒤적거리며 손가락으로 종이 귀퉁이만 만지작거렸다. 이럴 때 종이라도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강태현의 관점]
이하준이라는 이 사람, 처음 만났을 때는 그냥 냉정한 수의사인 줄 알았다. 목소리에 온기가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게 신기하다고 여겼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실력이 아니었다. 진료실 문을 넘어설 때마다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색이 다르게 보였다. 왼쪽은 파랗고, 오른쪽은 마치 금빛이 스며든 듯했다. 조명 때문인 줄 알았지만, 어제도 오늘도 같은 각도에서 같은 색이 보였다. 심지어 오늘은 형광등 아래서도, 창가의 자연광 아래서도 똑같은 이질감이 남아 있었다. 렌즈라면 이렇게까지 일관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동물을 다루는 손짓 하나하나에는 이 세계 어느 수의사에게서도 본 적 없는 확신이 있었다. 마치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강태현은 그 확신이 궁금해졌다. 대중 앞에서 웃음을 파는 삶을 살아온 그에게, 이하준의 무심함과 실력은 낯설고도 매혹적인 조합이었다.
생각해보면 처음 병원에 왔을 때부터 뭔가 어긋나 있었다. 복실이의 증상을 설명하는 그의 태도, 단어를 고르는 방식, 그리고 가끔 스스로도 놀라는 듯한 그 표정. 마치 자기 입에서 나온 말에 자기가 더 놀라는 사람처럼. 강태현은 연예계에서 온갖 거짓과 연출을 봐온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이하준의 그 위화감은 오히려 진짜처럼 보였다. 연출된 완벽함이 아니라, 뭔가 어긋난 완벽함.
"저기, 원장님. 실례가 안 된다면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강태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깔렸다.
"눈이... 원래 그런 색이셨어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렌즈 핑계는 이미 한 번 썼는데, 이 사람 앞에서 또 같은 소리를 하면 의심만 더 짙어질 것 같았다. 렌즈 두 번 우려먹으면 그거야말로 국물도 안 남는 라면 스프 같은 거였다.
"...그건 왜 물어보세요."
내 대답이 살짝 늦었다.
강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냥, 궁금해서요. 아주 특이하시길래."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렀다.
이거 지금 취조야, 관심이야.
구분이 안 됐다. 형사와 소개팅 상대의 눈빛이 이렇게 비슷할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둘 다 상대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정보를 캐내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가.
"조명 때문일 거예요. 여기 형광등이 좀 특이해서."
"어제도 그랬는데요."
"...형광등이 어제부터 계속 특이했나 보죠."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강태현은 그 말을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믿지 않는다는 게 얼굴에 그대로 쓰여 있었다.
"복실이 회복 잘 되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나는 화제를 억지로 돌렸다. 조민석 흉내라도 내야 할 판이었다. 능글맞게 넘기는 기술 하나 배워둘 걸 그랬다.
강태현은 순순히 넘어가는 척했지만, 병원을 나가면서 흘린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
"원장님, 저 한번 더 놀랄 만한 일 있으면 꼭 저한테 먼저 알려주세요."
그러고는 씩 웃으며 문을 열고 나갔다. 그 웃음이 카메라 앞에서 짓는 미소랑 똑같아서, 진짜 감정인지 연기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 됐다.
그게 무슨 뜻이야.
뭘 알려달란 거야.
설마 이 사람, 뭔가 낌새를 챈 건 아니겠지. 나 지금 완전 관찰당하고 있는 거 아니야? 리얼리티 프로그램 몰카 아니고?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였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나는 진료실 벽에 등을 기대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오늘 하루만 두 번째로 오는 이 느낌, 뭔가 거대한 게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불안. 강태현의 눈빛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 사람, 배우라서 그런지 사람 보는 눈이 남다른 것 같은데, 하필 그 눈이 지금 나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내일 또 오겠지.
그리고 또 뭔가를 물어보겠지.
나는 그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