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각성 안 하면 죽습니다

1화

새벽 다섯 시 반,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는 사실부터가 이상했는데, 그 이유는 침대 머리맡에 걸어둔 목걸이가 미열처럼 손끝을 데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꿈인가 싶어서 눈을 몇 번 깜빡였는데, 눈을 뜰 때마다 그 열감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손바닥까지 슬금슬금 퍼지는 걸 느끼고서야 이게 현실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청색 사파이어.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자, 오늘 오전 열한 시 삼십 분까지 내 피 한 방울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걸린, 말 그대로 시한부짜리 보석이었다. '강도현. 강도 높게 살라고 지어준 이름인데, 정작 강도한테 목숨을 저당 잡히게 생겼네'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상황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여덟 살 때 세상을 떠났고, 그 후로 나는 청명학원 인근의 보육시설을 나와 혼자 자취방에서 지내온 지 벌써 몇 년째였는데, 유품이라고 남긴 게 이 사파이어 하나와 손에 익지도 않는 쪽지 한 장이 전부였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 열한 시 삼십 분. 피를 흘려라. 늦으면 폭주한다.' 그것뿐이었다. 날짜도, 배경 설명도, 다정한 한마디도 없이 그저 명령문 하나가 전부였으니, 나는 매일 아침 이 쪽지를 다시 읽으며 오늘이 바로 그날인지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종이는 이미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했고, 접힌 자리마다 색이 하얗게 바래 있었는데, 그게 몇 년째 같은 자리를 접었다 폈다 한 흔적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사실 처음 몇 달은 매일 밤마다 심장이 두근거려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오늘일까, 내일일까, 아니면 벌써 지나가버린 날일까 하고.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긴장이 무뎌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아침에 눈뜨면 쪽지를 확인하는 게 세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의 한 조각이 되어버렸는데, 정작 그 '오늘'이 실제로 닥치니 무뎌졌던 감각이 도로 날카로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 사파이어가 스스로 열을 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이 '그날'이었으니까. [알림: 각성 매개체 '어머니의 사파이어'가 활성화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제한 시간: 06시 12분 기준, 05시간 18분 남았습니다.] 허공에 반투명한 글자가 떠오르는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늘 상상만 하던 일이었는데, 실제로 벌어지니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아서, 나는 한동안 그 문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등으로 눈을 몇 번 비볐다. 헛것이 아니었다. 글자는 여전히 거기 떠 있었고,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벽을 짚어봤는데, 벽은 여전히 차갑고 단단했다. 꿈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다섯 시간 십팔 분이라니, 넉넉해 보이지만 사실 하나도 넉넉하지 않다' 하는 계산이 곧바로 뒤따랐다. 왜냐하면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오전 수업이 있었고, 청명학원까지 걸어서 사십 분이 걸렸으며, 무엇보다 나는 매일 새벽마다 흑암숲에 들어가 혼자 훈련을 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등교 준비에 한 시간, 이동에 사십 분, 훈련에 두 시간, 거기다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더하면, 다섯 시간이라는 숫자는 순식간에 반토막이 나버릴 계산이었다. 사파이어에 피를 흘리는 일이야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끝날 일이었지만, 나는 그걸 지금 당장 해치우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스스로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어쩐지 이 각성이라는 게 준비 안 된 몸으로 받아들이면 무언가 잘못될 것 같다는 불길한 감이 있었다. 마치 배부르게 밥을 먹기 전엔 뛰지 말라는 어릴 적 잔소리 같은, 근거는 없지만 무시하기엔 꺼림칙한 그런 감이었다. 그래서 나는 훈련을 마친 뒤, 시간에 맞춰 마지막에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자취방은 두 평 남짓한 원룸이었고, 냉장고 안에는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우유 한 팩과 계란 두 알이 전부였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훅 끼치는 냉기 속에서 그 두 물건이 나란히 놓여 있는 걸 보고, 나는 잠깐 웃음이 나왔다. 목숨이 걸린 날 아침 식사가 이 지경이라니, 누가 들으면 코미디라고 할 것 같았다. 나는 계란을 삶아 먹을 시간도 없이 그냥 우유만 들이켠 채로 운동복을 걸쳐 입었는데, 그 와중에도 사파이어 목걸이는 꼬박꼬박 챙겨서 목에 걸었다. 이게 없으면 오늘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웃기게도 지갑보다 이 돌덩이가 더 중요한 물건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지갑을 안 챙기고 나가면 하루가 불편할 뿐이지만, 이걸 안 챙기고 나가면 하루가 아예 없을 수도 있었으니까. 현관을 나서기 전, 나는 거울 앞에 잠깐 멈춰 서서 목에 걸린 사파이어를 손으로 감쌌다. 여전히 미열이 느껴졌다. 어머니의 얼굴은 이제 사진 몇 장으로만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유독 이 돌만은 손에 쥘 때마다 그날의 온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 나는 늘 이걸 만질 때마다 조금 이상한 기분에 잠기곤 했다. 그리움이라기보다는, 뭔가 빚을 지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청명학원 학생이라면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흑암숲은 학원에서 공식적으로 출입을 금지한 구역이었다. 마나 몬스터가 서식하고, 매년 몇 명씩 실종자가 나온다는 소문이 도는 곳이었으니까. 학원 게시판에는 매 학기마다 '흑암숲 출입 금지'라는 공고문이 붙었고, 선생들도 입만 열면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도 나는 거의 매일 새벽마다 그 숲의 초입에서 나뭇가지를 검처럼 휘두르며 몸을 풀었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 정식으로 등록된 훈련장은 이용료가 비쌌고, 나 같은 무일푼 고아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으니까. 한 시간에 이만 오천 원이라는, 내 한 끼 식비의 열 배쯤 되는 그 이용료를 낼 형편이 안 되니, 나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공짜 훈련장을 찾아야 했다. 숲 초입은 몬스터가 나온다는 심부보다는 훨씬 안전했고, 나는 그 경계선을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몸을 풀어왔다. 숲으로 가는 골목길은 아직 어두웠고, 가로등 몇 개는 고장 나서 깜빡거리고 있었다. 발밑에서 자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는데, 그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느껴지는 건 순전히 내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였을 거다. 아무리 매일 오는 길이라도, 목숨에 시한이 걸린 날의 아침 공기는 확실히 다르게 느껴졌다. 숲 초입에 도착했을 때, 나는 습관처럼 사파이어를 손에 쥐고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제한 시간: 04시간 46분 남았습니다.] '좋아, 아직 넉넉하다' 하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사실 넉넉하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표현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이 각성이라는 게 정확히 뭘 하는 건지, 실패하면 정말로 '오라 폭주'라는 게 벌어져서 죽는 건지, 아니면 그저 은유적인 경고 문구에 불과한 건지조차 알지 못했으니까. 인터넷을 뒤져봐도, 학원 도서관을 뒤져봐도 '오라 폭주'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위협처럼, 그 단어는 오로지 이 쪽지 안에서만 존재했다. 다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고, 나는 그걸 지킬 생각이었다. 근거도 없고, 설명도 없는 명령이었지만, 그게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말이라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걸 어길 자신이 없었다.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들고 무게를 가늠해봤다. 어제 쓰던 것보다 조금 더 굵고 단단한 놈이었다. 손아귀에 쥐고 두어 번 휘둘러보니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제법 매끄럽게 났고, 나는 그 감각에 만족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팔을 돌리고, 발목을 몇 번 흔들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루틴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그 루틴 하나하나가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 순간, 목에 걸린 사파이어가 다시 한번 미열을 내뿜었다. 그리고 그 열기는 어쩐지, 조금 전보다 훨씬 뜨거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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