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마부를 침소로 불렀다

5화

그날 밤 서연의 처소에서 새어 나오던 낮은 숨소리를, 우연히 그 근처를 지나던 법현이 듣고 말았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은 전혀 알지 못했다. 법현은 저녁 예불을 마치고 저택을 나서던 길이었다. 원래는 채경의 처소로 곧장 향할 생각이었으나, 회랑을 절반쯤 지났을 무렵 그의 발걸음이 저절로 멈추어 섰는데, 그것은 서연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미묘한 소리에 이끌린 발걸음이었다. 낮게 젖은 숨소리와, 그 사이사이 끼어드는 옷깃 스치는 마찰음. 법현은 처음에는 그것이 단순한 뒤척임이거나, 잠결의 헛소리쯤으로 여기며 지나치려 했으나, 그 소리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순간부터는 도무지 발을 뗄 수 없었다. '이 시간에…… 저 방에서 무슨 일이.' 승려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은 호기심이 그의 발을 이끌었고, 그는 조심스레 처마 아래로 몸을 숨긴 채 창문 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응시했다. 창호지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의 윤곽만으로도 그 안쪽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숨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벽에 등을 붙였다. 승복 속으로 파고드는 밤바람이 서늘했음에도 그의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배어 있었고, 그 땀방울이 관자놀이를 따라 천천히 흘러내리는 감각조차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그는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물었으나, 창틀 너머에서 이어지는 소리는 그의 의심을 점점 확신으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 달칵. 창틀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소리에 법현은 순간 몸을 굳혔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듯한 감각과 함께, 그는 그대로 숨을 멈춘 채 벽에 몸을 밀착시켰는데, 안쪽에서는 그 소리를 눈치챈 이가 없는 듯 다시 정적이 흘렀고, 그는 그제야 자신이 지금 얼마나 위태로운 짓을 하고 있는지를 깨달으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는 종교인으로서의 표정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러온 관음의 욕망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으며, 그것은 그가 채경과 밀회를 나눌 때조차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던 은밀한 갈증이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이곳에 이렇게 오래 서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다. 채경의 처소를 향하던 걸음이 어째서 이 앞에서 멈추었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기에, 그는 자꾸만 이것이 우연이라고, 그저 지나가던 길에 벌어진 일일 뿐이라고 되뇌었으나, 그런 자기변명조차 그의 발을 그 자리에서 떼어놓지는 못했다.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던 법현은 결국 발소리를 죽여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그의 걸음은 원래 향하던 채경의 처소가 아니라 반대편 회랑으로 흘러가고 있었는데, 이는 자신이 목격한 것을 곱씹으며 조금 더 시간을 벌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발걸음이었다. '지금 저 얼굴을 하고 채경을 볼 수는 없다……' 그는 옷매를 다시 여미며 걸었으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을 감추기 위해 애써 두 손을 소매 속으로 밀어 넣었는데, 그럴수록 심장은 오히려 더 크게 뛰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시각, 채경은 이미 그를 기다리다 못해 처소를 나서 저택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라면 그가 예불을 마치는 시각을 정확히 헤아려 처소 안에서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었으나, 오늘은 어쩐지 마음이 초조하여 문밖으로 나서고 말았고, 그 초조함이 결국 그녀를 회랑까지 이끌고 온 것이었다. 회랑 저편, 어스름한 등불 아래로 낯익은 승복 자락이 언뜻 지나갔다. 채경은 처음에는 반가움에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으나, 그 승복 자락이 향하는 방향을 눈으로 좇던 순간 걸음을 멈추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서연의 처소 근처에서 멀어지는 뒷모습이었다. '저 사람이 어째서 저쪽에서……' 채경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것은 단순한 의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녀 안에 잠재되어 있던 소유욕과 의심이 한꺼번에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지금껏 법현이라는 사람을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세상의 눈을 피해 나누던 밀회가 얼마나 위태로운 관계인지 잘 알면서도, 그녀는 그 위태로움조차 자신과 그를 묶어주는 은밀한 끈이라 믿었기에, 그가 자신 몰래 다른 곳을, 그것도 딸의 처소 근처를 서성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자존심은 이미 크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설마 저 사람이 서연이를…….' 떠오르는 생각을 스스로 지우려 했지만, 한번 피어오른 의심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채경은 발걸음을 서둘러 회랑을 따라 걸었으나, 이미 법현의 뒷모습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였고,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딸의 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방 안에서는 여전히 낮은 숨소리와 옷깃 스치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채경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인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자신이 지금 듣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으나, 귀는 이미 그 소리를 낱낱이 붙잡아 그녀의 머릿속에 새기고 있었고, 그 소리가 하나씩 쌓일수록 그녀의 다리는 점점 무겁게 굳어갔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채경은 애써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딸의 방에서 저런 소리가 흘러나올 이유가 있을 리 없다고,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고, 혹은 그저 잠결의 뒤척임일 뿐이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으나, 가슴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은 결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녀는 문 앞으로 몇 걸음 다가섰다가, 다시 그 걸음을 되돌리기를 반복했다. 문고리를 향해 뻗었던 손은 끝내 문을 열지 못한 채 허공에서 머뭇거리다 힘없이 떨어졌고, 그녀는 그 자신이 왜 이토록 확인을 두려워하는지조차 스스로 알 수 없었다. 결국 채경은 발걸음을 돌려 자신의 처소로 향하면서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서연의 처소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담겨 있었고, 그 불빛이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내일 아침에는……' 그녀는 채 끝맺지 못한 다짐을 가슴속에 삼키며 처소 문을 닫았다. 그러나 문이 닫힌 뒤에도 그녀의 귓가에는 그 낮은 숨소리가 계속해서 맴돌았고, 그것은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을 예고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날 밤, 저택의 세 사람은 각기 다른 방에서 각기 다른 욕망과 의심에 잠식되어 있었다. 법현은 자신이 목격한 것을 곱씹으며 채경 앞에 어떤 얼굴로 서야 할지 고민했고, 채경은 딸의 방에서 흘러나온 소리와 법현의 뒷모습 사이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의심을 붙잡고 있었으며, 서연은 그 두 사람이 저택 어딘가에서 각기 자신을 향한 시선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그 밤을 지나보내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서로 얼마나 위태롭게 얽혀 있는지는 아직 누구도 완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였고, 오직 어둠만이 그 비밀들을 조용히 품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은, 머지않아 저택의 아침을 완전히 다른 얼굴로 맞이하게 만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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