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일요일만 당신 겁니다

5화

일요일 오후, 소민의 집 부엌에는 오현석이 직접 끓인 파스타 냄비에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면수가 끓어오르는 소리와 마늘 볶는 냄새가 좁은 부엌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오현석은 앞치마도 없이 셔츠 소매만 대충 접어 올린 채 프라이팬을 흔들며 능숙하게 손목을 돌렸다. "이따 저녁에 그 사람이랑 만나는 거, 진짜 괜찮은 거지?" 오현석이 면을 건져 올리며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물었고, 소민은 식탁 위에 접시를 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그냥 일이니까." 소민의 대답에 오현석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살피다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난 상관없어. 서라랑 태오도 원래 그렇게 지내는 거고." 그러면서도 오현석은 파스타 위에 파르메산 치즈를 갈아 뿌리는 손을 멈추지 않았고, 그 무심한 손놀림 속에 담긴 태연함이 오히려 소민의 긴장을 조금씩 녹이고 있었다. 그 말속에는 오현석 특유의 개방성이 담겨 있었는데, 그것은 소민에게 있어 관계의 안정감을 확인시켜 주는 동시에, 묘하게 마음을 가볍게 하는 배려였다. "근데," 오현석이 포크를 소민 앞에 놓으며 덧붙였다. "그 도현이라는 사람, 서라가 걱정하던데. 태오가 컨퍼런스에서 봤다고." "컨퍼런스요?" "어. 무슨 투자 심사 자리였다나. 눈빛이 그렇게 무섭다고 하더라고, 태오가." 오현석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지만, 소민은 그 짧은 문장 속에서 미묘한 무게를 느꼈다. 식사를 마친 뒤, 소민의 휴대폰으로 오현석의 아내인 윤서라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소민 씨, 오늘 저녁 조심해요. 도현이라는 사람, 태오 씨가 예전에 컨퍼런스에서 한 번 본 적 있는데,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서라의 문자를 읽는 소민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스쳤는데, 그것은 걱정보다는 오히려 이 관계망 전체가 자신을 감싸고 있다는 안도감에서 나온 것이었다. 소민은 답장을 짧게 썼다. [고마워요, 언니. 별일 없을 거예요.] 그러고는 문자를 보내면서도, 자신이 정작 무엇을 걱정해야 하는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라와 그녀의 연인 김태오, 그리고 남편 이민호까지, 소민을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었고, 그 균형이 소민에게는 무엇보다 든든한 뿌리였다. 식탁을 정리하며 소민은 문득 생각했다. 이 느슨하면서도 단단한 관계의 그물 속에서 자신은 얼마나 오래 안전했던가. 그리고 오늘 저녁, 그 그물 바깥에 있는 사람과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게 다가왔다. 오후 다섯 시, 소민은 옷장 앞에서 옷을 고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하나씩 꺼내 몸에 대어보던 소민은, 지나치게 화려한 원피스는 도로 걸어두고, 너무 수수한 니트도 결국 옷장 깊숙이 밀어 넣었다. 단정하지만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지 않은 옷을 고르려 애쓰는 자신의 모습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는데, 그것은 상대의 신분에 압도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고, 동시에 그 다짐이 이미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결국 소민이 고른 것은 짙은 남색 블라우스와 무릎을 살짝 덮는 스커트였는데,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매만지는 손끝이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질적으로 떨렸다. '그냥 일이야.' 소민은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그 되뇜이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 같아 헛웃음이 나왔다. 머리를 정리하던 소민의 손이 잠시 멈췄다. 며칠 전, 도현과 짧게 마주쳤던 순간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의 서늘한 눈빛과, 명함을 건네던 손끝의 정확한 움직임. 그 짧은 기억이 지금 이 순간까지 소민의 신경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의아했다. 오현석이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끝나고 연락해. 몇 시든 상관없으니까." 그 말에 소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안았다. "고마워요, 오빠." "고마울 게 뭐 있어." 오현석이 소민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뜨리며 웃었다. "우린 다 그렇게 사는 거잖아." 오현석이 떠난 뒤, 소민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립스틱 색을 두 번이나 바꿔 발랐고, 귀걸이를 걸었다가 다시 뺐으며, 결국 아무것도 걸지 않은 맨귀 상태로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 모든 사소한 선택들 속에 담긴 초조함을 소민은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이미 오늘 저녁의 만남을 향해 조급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 순간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박기준이 보낸 문자였다. [오후 일곱 시, 청담동 레스토랑으로 차량을 보내겠습니다. 이사님께서 직접 픽업을 원하셔서, 별도 안내는 없을 예정입니다.] 소민의 손끝이 그 문장 위에서 잠시 멈췄다. 박기준을 통해 조율될 거라 예상했던 만남이, 도현 본인의 직접적인 등장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예상 밖의 긴장을 불러왔다. 소민은 문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직접 픽업을 원하셔서'라는 문장이 유독 눈에 밟혔는데, 그것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도현이라는 인물이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창밖으로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소민은 그 어스름 속에서 자신을 데리러 올 검은 세단의 실루엣을 떠올리며, 이 거래가 처음의 계산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소민은, 핸드백을 챙기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그냥 일이다, 계약이고,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되뇌면서도, 손끝에 남은 미세한 떨림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소민의 심장은 평소와 다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고, 그 낯선 두근거림의 정체를 그녀 자신도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현관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닫는 손끝에서 차가운 금속 손잡이의 감촉이 스쳤고, 그 차가움이 오히려 소민의 정신을 잠시 붙잡아주는 듯했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소민의 뒤로, 이미 저녁의 어둠이 조용히 내려앉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끝, 약속된 장소에서는 검은 세단 한 대가 이미 시동을 켠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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