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가주님, 저 폐물 아니었어요

1화

새벽 공기가 살을 벨 듯 차가웠다. 심가 훈련장 한복판에 나는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돌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무릎뼈를 파고들었다. 다섯 해 전부터 그랬다. 이 자세, 이 냉기, 이 시선들. 영력이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았다. 남들은 삼 단계, 사 단계를 넘어가는데 나는 여전히 이 단계에 발이 묶여 있었다. 단전 안쪽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기는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물처럼,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돌았다. "저것 좀 보십시오." 심태준의 목소리가 훈련장을 갈랐다. "오 년째 저 꼴이랍니다."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몇몇은 손가락질까지 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보름 뒤 시험에서 육 단계를 넘지 못하면." 장로 한 명이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심호진, 너는 심가에서 제명된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이가 갈렸지만 겉으로는 태연했다. "제명되면 밥은 누가 줍니까." 장로의 얼굴이 굳었다. "..." 주변이 순간 조용해졌다. 누군가는 헛기침을 했고, 누군가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가 황급히 입을 가렸다. 심태준이 다시 나섰다. "저놈은 부모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면서 밥 걱정을 하는군요." 그 말에 가슴 한쪽이 뻐근하게 저려왔다. 부모님. 오 년 전,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두 사람. 심가는 그저 실종이라 했다. 더는 캐묻지 말라 했다. 캐물으면 캐묻는 대로 눈총을 받았고, 묻지 않으면 묻지 않는 대로 폐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걱정 마십시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릎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제 밥그릇은 제가 챙길 겁니다." 웃음소리가 다시 터졌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저들의 웃음은 오 년 동안 들어온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제는 그저 바람 소리처럼 스쳐 지나갔다. 훈련장을 나서는 내 등 뒤로 심태준의 비웃음이 따라붙었다. "폐물 주제에 자존심은."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뒤뜰에 있는 설희 아주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을 지나는 동안 발끝에 밟히는 자갈 소리만이 유일한 동행이었다. 그녀는 부모님이 사라진 뒤로 나를 거둬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오늘도 그 꼴이니." 부엌에서 나온 그녀가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손에는 아직 물기가 묻은 채였다. "보름 남았습니다." "..." "보름 안에 육 단계를 못 넘으면 쫓겨납니다." 설희 아주머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앞치마 끝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방법이 있을 거다." "방법이 있었으면 오 년 전에 썼을 겁니다." 나는 헛웃음을 흘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는 순간, 밖에서 설희 아주머니가 뭐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굳이 다시 나가 물을 마음도 없었다. 창밖으로 별빛이 흐릿하게 비쳐 들었다. 보름. 남은 시간은 정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면 열나흘, 또 하루가 지나면 열사흘. 셈은 늘지도 줄지도 않고 그저 정확했다. 나는 벽에 걸린 낡은 목검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물건이었다. 칼날 모양을 흉내 낸 나무 몸통에는 잔 흠집이 가득했고, 손잡이 부분만 유독 반들거렸다. 손잡이가 반들반들 닳은 그 목검을 쥐고, 나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목검의 결을 따라 손가락을 몇 번이고 문질렀다.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아버지의 손이 닿았던 자리를 짚어보는 것처럼, 그 결을 하나하나 되짚었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스쳤다. 오 년째 단전이 막혀 있다는 것. 그런데 그 시작이, 정확히 부모님이 사라진 그날 밤부터였다는 것. 우연이라고 넘겨왔다. 하지만 오늘 밤은 그 우연이 유난히 목에 걸렸다. 바깥에서 바람이 창을 흔들었다. 나는 목검을 품에 안은 채, 어둠 속에서 눈을 감았다. 보름 뒤. 그날이 오면 나는 심가를 떠나거나, 아니면 지금껏 아무도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손에 쥐게 될 것이었다. 어느 쪽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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