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다음 날 아침, 나는 뒷산으로 향했다.
동이 뜨기도 전이라 산길은 아직 어둑했다.
발끝에 채는 돌부리가 유독 많았다.
심가 사람들이 버려둔 폐기물 더미가 쌓인 곳이었다.
깨진 도자기 조각, 녹슨 검신, 못 쓰게 된 영석 부스러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썩어가고 있었다.
냄새부터 고약했다.
하지만 코를 막을 여유는 없었다.
남들이 쓰다 버린 영석 부스러기라도 주워야 했다.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야 했다.
보름.
내게 남은 시간은 딱 그만큼이었다.
돌무더기 사이를 손으로 헤집었다.
날카로운 사금파리에 손등이 몇 번이나 긁혔다.
그래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 상처로 앓는 소리를 낼 처지가 아니었다.
한참을 뒤지던 내 손끝에 무언가 걸렸다.
둥글고 매끈한 구슬이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검은빛이 도는 그것에서 희미한 열기가 느껴졌다.
화로 속 잉걸불 같은 온도였다.
만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미 손끝은 구슬을 감싸고 있었다.
"이건 뭐지."
나는 구슬을 들어 올렸다.
빛에 비춰보니 표면 안쪽으로 실처럼 얇은 무늬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순간, 구슬 안쪽에서 무언가 요동쳤다.
우웅.
낮게 울리는 소리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놀라 손을 놓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구슬이 손바닥에 붙어버린 듯 떨어지지 않았다.
떼어내려 할수록 살가죽이 함께 당겨지는 느낌이었다.
눈앞이 새하얗게 번쩍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낯선 공간에 서 있었다.
불도 없는데 화로의 열기가 사방에서 느껴지는 곳이었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바닥조차 보이지 않고, 그저 검붉은 안개 같은 것이 발목을 휘감고 있었다.
"오랜만에 사람 손이 닿는군."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만으로도 공기가 무겁게 짓눌리는 듯했다.
앞을 보니,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깨는 마치 도끼로 깎아 만든 것처럼 각이 져 있었고, 눈빛은 화로 속 잉걸불처럼 붉었다.
"누구십니까."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애를 썼다.
"강염이라 한다."
사내가 짧게 대답했다.
"봉령주에 갇힌 지 백 년쯤 됐군."
"봉령주요."
"네가 들고 있는 그 구슬 말이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손바닥을 내려다보니 구슬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럼 저는 무슨 함정에라도 빠진 겁니까."
강염이 피식 웃었다.
웃음소리마저 낮게 울려 공간을 흔들었다.
"함정이 아니라 기연이다, 꼬맹아."
"기연이면 대가가 있을 텐데요."
"..."
그가 잠시 말이 없었다.
붉은 눈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눈치는 빠르군."
"대가가 뭡니까."
"혼돈신체를 물려받는 것. 그게 대가다."
낯선 단어였다.
귀동냥으로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혼돈신체가 뭡니까."
"영력을 도끼로 쪼개듯 정직하게 부수는 몸이다."
강염이 손을 들어 올렸다.
허공에 불꽃 같은 기운이 뭉쳐들었다.
콰아앙.
작은 폭음이 터지며 검붉은 안개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단계 따위 없다. 그냥 위에서 아래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뿐이지."
나는 침을 삼켰다.
말은 간단했지만, 뿜어져 나온 기운의 무게만으로도 뼈가 짓눌리는 듯했다.
"위험하지 않습니까."
"위험하지."
강염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심가 놈들이 이 몸을 금기라 부르는 이유가 그거다."
금기라는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 자리에서 뼈도 못 추릴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물러설 곳은 없었다.
보름 뒤면 나는 쫓겨난다.
밥그릇도, 잠자리도, 심가라는 이름 아래 부여받은 자리도 전부 사라진다.
"하겠습니다."
"...결정은 빠르군."
"밥그릇 지키려면 이것저것 잴 시간이 없습니다."
강염이 큰 소리로 웃었다.
웃음소리가 화로처럼 뜨겁게 공간을 채웠다.
그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가 말했다.
"좋다. 그럼 지금부터 몸에 불을 지펴보자."
그의 손이 내 이마를 향해 뻗어왔다.
거대한 손바닥이 시야를 가릴 만큼 가까워졌다.
손끝이 닿는 순간, 온몸이 불덩이에 던져진 듯 뜨거워졌다.
살갗이 익어가는 것 같은 열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