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양호실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침대에 누운 강태오의 팔에는 붕대가 세 겹으로 감겨 있었다.
어깨는 탈골 직전이었고 목에는 손가락 모양의 자국이 선명했다.
간호 선생님은 아까부터 혈압을 재다 말고 한숨만 세 번째 내쉬었다.
"강태오 학생, 이번 달에만 네 번째예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을 왜 매번 해요."
태오는 대답 없이 눈만 굴렸다.
간호 선생님이 서류철을 챙겨 나가자 그제야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서준은 그 옆에 서서 팔짱을 낀 채 내려다보았다.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익숙한 풍경을 보는 눈이었다.
"이번엔 뭐야."
"한서은."
"또?"
"고백 안 받아준다고 목을 졸랐다."
서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딱히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목을 졸랐는데 살아있네."
"내가 반사적으로 팔을 걸었거든. 안 그랬으면 진짜 갔어."
"영웅이네."
"영웅이 아니라 생존자야."
태오는 천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금발 머리카락이 이마에 눌려 삐죽 솟아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잘생겼는데, 그게 문제였다.
타고난 얼굴 하나로 매주 병원 신세를 지는 남자.
"오유리는 어제 수영장에서 나 물속에 처박았어."
"죽으려고?"
"익사할 뻔했지."
"살았네."
"살긴 살았는데 폐에 물이 반 리터는 들어간 느낌이었어."
"반 리터면 죽어."
"안 죽었으니까 이렇게 떠들잖아."
서준은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
동정도 아니고 재미도 아닌, 딱 그 중간의 표정이었다.
"근데 왜 물속에 처박은 거야."
"내가 자기 말고 다른 애랑 눈 마주쳤다고."
"그것만으로?"
"그것만으로. 걔 눈에는 그게 배신이래."
"넌 참 힘들게 산다."
"얼굴이 죄지."
창밖에서 여학생 몇이 창틀에 매달려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간호 선생님이 커튼을 확 닫았다.
그 소리에도 여학생들은 흩어지지 않고 창틀 언저리를 서성였다.
"저것 봐. 벌써 소문났어."
"뭔 소문."
"내가 여기 있다는 소문."
"그건 학교 전체가 원래 알아."
"그럼 내가 이번엔 누구한테 당했는지 궁금해서 온 거네."
"그게 더 무섭다."
태오가 몸을 일으키려다 어깨를 부여잡고 다시 눌러 앉았다.
통증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서준은 별다른 반응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안 도와줘?"
"네가 자초한 거잖아."
"의리 없는 놈."
"의리는 내가 매번 여기 와주는 걸로 다 갚았어."
태오가 삐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뭔가 결심한 듯 눈빛이 바뀌었다.
"서준아."
"뭐."
"거래 하나 하자."
서준의 시선이 처음으로 태오의 눈을 정면으로 향했다.
작은따옴표 안의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태오가 이런 눈빛으로 말을 꺼낼 때는 항상 사고였다.
지난번엔 대신 벌점을 받아달라 했고, 그 전엔 대신 매점 셔틀을 뛰어달라 했었다.
"거래?"
"그 세 명, 서은이랑 유리랑 하늘이. 나한테서 좀 떨어뜨려줘."
"어떻게."
"네가 그 애들 유혹해."
순간 정지된 것 같은 침묵이 흘렀다.
서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내가?"
"네가."
"미쳤어?"
"미쳤나 봐. 근데 이거 아니면 나 진짜 죽어."
태오가 붕대 감긴 팔을 들어 보였다.
손끝까지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 손이 살짝 떨리는 것도 연기치고는 지나치게 사실적이었다.
"내가 그 애들을 왜 유혹해."
"넌 얼굴 되잖아."
"얼굴 되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
"돼. 얼굴 되면 다 돼."
서준은 팔짱을 낀 채 창밖을 힐끗 보았다.
여학생들이 여전히 복도 창문에 매달려 있었다.
그중 몇몇은 이미 서준 쪽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저런 애들을 내가 왜.'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계산도 함께 돌아가고 있었다.
외출 제한.
엄격한 식단.
하루 사백 개의 윗몸일으키기.
숨 막히는 감시.
그 모든 걸 뚫고 나갈 명분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누나들 몰래 나가려면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했고, '친구 도와주기'는 나쁘지 않은 명분이었다.
"조건이 있어."
"뭐든."
"튀김."
"뭐?"
"매번 한 번씩 유혹할 때마다 튀김 한 접시."
"그거뿐이야?"
"그거뿐이야. 대신 매번이야. 미루지 마."
태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픽 웃었다.
"그게 다야?"
"그거면 돼."
"싼데."
"싼 게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값이야."
태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서준의 목소리에 미묘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더 캐묻기엔 지금은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콜."
두 손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짝, 하는 소리가 조용한 양호실에 울렸다.
서준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튀김. 오랜만에 튀김이다.'
누나들이 알면 뭐라고 할지 상상만 해도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수아 누나의 덤벨이, 리안 누나의 가위가, 미래 누나의 눈물이 차례로 떠올랐다.
그중 어느 것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튀김 앞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지는 게 문제였다.
"근데 누구부터야."
"음."
태오가 손가락을 접으며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서준은 그 여유로운 태도가 얄미웠다.
자기가 시작한 거래인데, 마치 남 일처럼 여유를 부리는 게 특히 그랬다.
"한서은."
"제일 위험한 애 아니야?"
"제일 위험하니까 제일 먼저 끝내야지."
"논리가 이상한데."
"논리 따질 시간에 튀김이나 챙겨."
서준의 입가가 살짝 굳었다.
창밖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그 맑음이 지금 그의 처지와 어울리지 않아 오히려 불길했다.
맑은 날일수록 이상한 일이 생긴다는 게 그의 오랜 경험이었다.
"진짜 할 거야?"
"이미 손 잡았잖아."
"손만 잡았지, 아직 시작 안 했어."
"그럼 지금 시작하자."
태오가 씩 웃었다.
골절된 팔로도 그 웃음만큼은 여유로웠다.
아픈 사람이 저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것도 새삼 놀라웠다.
서준은 한숨을 내쉬며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복도 창문에 매달려 있던 여학생 중 하나, 긴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가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서준의 등줄기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그 눈빛은 호기심도, 호감도 아니었다.
마치 상대의 무게를 재는 눈빛이었다.
한서은이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웃는데, 왜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입꼬리는 분명 올라가 있었는데,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서준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저게 첫 번째 상대라고?'
옆에 있던 다른 여학생이 한서은의 팔을 툭 치며 뭔가 소곤거렸다.
한서은은 대답 없이 서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시선이 마치 유리창을 뚫고 들어올 것처럼 집요했다.
튀김을 향한 갈망과, 방금 마주친 시선이 뒤섞여 그의 속을 어지럽혔다.
태오는 그 사이에도 태연하게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치 방금까지의 거래도, 창밖의 살벌한 시선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태도였다.
"저기 봐, 벌써 눈치챈 것 같은데."
"뭘."
"네가 미끼라는 거."
서준의 어깨가 움찔했다.
"미끼라니, 말을 좀 예쁘게 해."
"그럼 뭐라고 해. 대타? 방패?"
"둘 다 싫어."
"그럼 그냥 첫 번째 튀김값이라고 하자."
태오가 눈을 감은 채로 픽 웃었다.
서준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창밖의 한서은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음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웃음 뒤로, 서준은 이 거래가 결코 튀김 몇 접시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처음으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