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이슬마을의 새벽은 언제나 염소 울음소리로 시작되었다. 다인은 눅눅한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마당으로 나섰는데, 하늘이 유난히 붉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저건 노을빛이 아니라 뭔가 타는 빛이었다. 그녀는 블루빛이 도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하늘을 살폈고, 아직 잠이 덜 깬 머릿속으로 오늘 아침엔 염소들 사료를 좀 더 넉넉히 줘야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던 그 순간, 지평선 너머에서 굉음이 터져 나오며 땅이 흔들렸다.
쿠구구궁—
마을 사람들이 놀라 뛰쳐나오고, 몽이가 놀란 듯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며 우리 안을 맴돌았다. 옆집 할머니는 대문 밖으로 고개만 내밀고는 "무슨 일이여, 무슨 일이여" 하고 되풀이했고, 개들이 일제히 짖어대는 소리가 마을을 뒤덮었다. 다인은 반사적으로 염소 떼가 있는 언덕 쪽으로 달렸는데, 슬리퍼 한쪽이 벗겨지는 줄도 몰랐다. 그곳엔 이미 불기둥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염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울부짖고 있었다. 아, 이게 무슨 일이야. 저 불 다 잡으려면 소방차가 몇 대나 와야 하는 거지. 그녀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정작 머릿속으로는 그런 뜬금없는 계산이나 하며 발을 멈추지 않았다.
연기가 걷힌 자리에, 사람이 하나 쓰러져 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사람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핑크빛으로 물든 피부와, 어깨까지 흘러내린 은발이 그림에서 막 걸어 나온 것처럼 낯설고 비현실적이었으며, 눈을 감고 있는데도 얼굴의 골격이 세필로 그려낸 조각상 같아서 다인은 한순간 숨을 잊었다. 타다 남은 풀냄새와 그의 옷자락에서 풍기는 낯선 향—쇠 냄새와 꽃 냄새가 뒤섞인 듯한 그 이상한 냄새가,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의 것이라는 사실을 소리 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다 그 존재가 눈을 번쩍 뜨는 순간, 다인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회색 눈동자가, 안개 낀 숲처럼 흐릿하면서도 서늘하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하급종."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오만함만은 분명했다. "청명국의 왕에게 손을 대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뭐, 뭐라고요?" 다인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가, 그가 온몸에 화상과 자상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손을 댄 적도 없는데 죽고 싶냐는 소리를 들으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의 상처가 예사롭지 않아 보여 함부로 지나칠 수도 없었다. 팔뚝을 따라 그어진 자상은 깊었고, 어깨에서부터 흘러내린 피가 이미 흙바닥을 검붉게 적시고 있었다.
"청명국이라니, 그게 어딘데요. 여긴 이슬마을이에요." 그녀가 조심스레 되묻자, 그는 미간을 좁히며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그제야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의 시선이 낡은 슬레이트 지붕과 비닐하우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전봇대를 훑고 지나가는 동안, 다인은 그 눈빛에서 낯선 세계를 마주한 인간—아니, 인간이 아닐지도 모르는 존재—의 당혹감을 읽었다.
"……내 경호대는." 그가 중얼거렸다. 대답을 바라는 물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힘을 주었지만, 손끝이 파르르 떨릴 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손바닥에서 희미한 빛 같은 것이 일었다가 곧 사그라들었는데, 그는 그것을 보고서 마치 자신의 존재 일부가 뜯겨나간 사람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순간 그의 표정에 스친 것은 오만이 아니라, 정확히 명명할 수 없는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다인은 그 얼굴을 보고서야 이 존재가 처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폭발, 경호대 소실, 낯선 세계로의 전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그녀로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지만, 일단 이 남자를 이대로 두면 죽을 것 같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화상 자국이 목덜미까지 이어져 있었고, 숨소리도 고르지 못했다.
"저기요, 걸을 수 있어요?" 그녀가 손을 내밀며 묻자, 그는 그 손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하급종의 손을 빌릴 정도로 내가 나약하다 여기는 것이냐."
"아니, 안 빌리면 여기서 죽는다니까요. 그쪽 목숨이 그렇게 튼튼해 보이진 않는데." 다인은 답답한 마음에 목소리를 높였고, 그 말에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눈동자만 흔들릴 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저 먼 곳에서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쪽이여! 불난 데가 저쪽이여!"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점점 선명해졌다. 만약 저들이 이 낯선 존재를 발견하면 어떻게 될지, 다인은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다. 김도식에게 보고될 것이고, 그러면 자신의 생활은 또 얼마나 뒤틀릴지, 파출소니 뭐니 불려 다니느라 염소들 밥은 누가 챙길지…….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해요." 그녀가 다급하게 그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의 피부는 뜨거웠다. 화상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었지만, 손끝에 닿은 순간 다인은 이상하게도 마치 불씨에 손을 댄 것처럼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건 뭐지. 감전된 것도 아닌데 왜 팔뚝에 소름이 돋는지, 그녀는 그 감각을 이해할 새도 없이, 그를 부축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놓아라." 그가 낮게 경고했지만, 몸은 이미 그녀에게 반쯤 기울어 있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몇 번이나 휘청거렸으면서도 입으로는 여전히 오만한 소리를 뱉는 것이, 자존심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그 모습이 어쩐지 우스우면서도 안쓰럽게 느껴져서 다인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올 뻔했다.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쪽으로!" 그녀는 그의 팔을 어깨에 걸치며 근처 폐가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걸음마다 신음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고, 그럴 때마다 은발이 흔들려 화상 입은 목덜미 위로 흘러내렸다. 뒤에서 몽이가 걱정스레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은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하늘엔 여전히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마을 어귀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의 발소리와 웅성거림이 뒤섞여 다가오고 있었다. 그 아래로 다인은 자신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려 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며, 다 낡아 삐걱거리는 폐가의 문을 어깨로 밀어젖히고 그를 안으로 끌어당겼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낯선 왕과의 동거라는, 그녀로서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사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