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폐가의 문이 다시 닫히자, 안쪽은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다인은 인헌의 팔을 어깨에 걸친 채로 방구석까지 끌고 가면서, 이 남자가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는 사실에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정작 인헌은 고통을 참는 듯 이를 악물면서도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세상에, 자존심도 참……. 다인은 낡은 나무 바닥에 그를 눕히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팔이 떨어질 것 같아서 어깨를 몇 번이나 고쳐 잡았는지 모르는데, 그 와중에도 인헌은 미간만 살짝 찌푸릴 뿐,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 없었다.
"저, 저기, 움직이지 마세요. 상처가 더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하급종이 감히 명령을 하는가." 인헌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오만함이 배어 있었다. 다인은 미간을 좁히며 그를 내려다보았는데, 핑크빛 피부가 화상과 자상으로 얼룩진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뭐라 대꾸할 말을 고르는 데 잠시 시간이 걸렸다. 저 몸으로 무슨 왕 노릇을 한다는 건지, 다인은 한숨을 삼키며 방구석에 굴러다니던 낡은 천 조각을 주워 들었다.
"지금 몸도 못 가누면서 그런 말 할 힘은 남았나 봐요." "……" 인헌은 대답 대신 회색 눈동자로 그녀를 쏘아보았고, 다인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로 옷자락을 찢어 상처를 감쌌다. 목덜미까지 이어진 화상 자국을 보니 손끝이 떨렸는데, 이 정도 상처를 입고도 저렇게 눈빛만은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상처 주변으로 검게 그을린 피부가 갈라져 있었고, 그 틈으로 배어나는 피가 천을 붉게 물들이는 것을 보면서 다인은 저도 모르게 손끝에 힘을 더 주었다.
"아프면 말을 하세요. 참는다고 누가 상 주는 거 아니니까." "……" 인헌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지만, 천이 살갗을 스칠 때마다 턱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다인은 그 모습을 애써 못 본 척하며 매듭을 지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마을 사람들의 발소리와 웅성거림이 들려왔고,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는 것을 다인은 숨을 죽인 채로 확인했다. 몽이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폐가 담벼락 밖에서 서성이고 있었는데, 그 소리마저 지금은 조심스러웠다. 한 번은 발소리가 담벼락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다인은 인헌의 입을 손으로 막을 준비까지 했을 정도였는데, 다행히 발소리는 곧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들어봐요." 다인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당신 같은 존재를 본 적이 없어요. 만약 발견되면, 당신도 나도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당신은 여기서 조용히 숨어 있어야 해요. 적어도 상처가 나을 때까지는." 인헌은 잠시 침묵했는데, 그 침묵이 어쩐지 자존심이 무너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내가 왜 하급종의 은신처에 몸을 숨겨야 하는가." "그럼 저 밖에 나가서 마을 사람들한테 붙잡혀 구경거리가 되든가요. 아, 그전에 몸도 못 움직이니까 그냥 붙잡히겠네요." 다인은 팔짱을 끼며 쏘아붙였고, 인헌은 못마땅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 표정이 어찌나 뾰로통한지, 왕이라는 사람이 이런 얼굴도 지을 수 있구나 싶어 다인은 잠깐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애써 참았다. 화상 자국투성이 얼굴로 저렇게 새된 표정을 짓는 게 어울리지 않아서 더 우스웠다.
두 사람은 결국 몇 가지 규칙을 정하기로 했다. 낮에는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 소리를 내지 않을 것, 물과 음식은 다인이 몰래 가져다줄 것, 창문 쪽 판자는 절대 건드리지 말 것, 그리고—이 부분에서 다인은 유난히 힘을 주어 말했는데—서로에게 예의를 지킬 것.
"하급종에게 예의를 갖추라니, 참으로 우스운 말이군." "저도 왕한테 이런 말 하는 게 처음이라 웃긴데, 지금 당신 목숨을 쥐고 있는 사람이 저라는 걸 잊지 마세요." 다인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규칙을 되짚었는데, 그 손짓이 어찌나 야무진지 인헌은 잠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만약 규칙을 어기면 어찌 되는가." "그럼 저도 더는 못 도와줘요. 물도 없고, 음식도 없고, 상처도 그냥 알아서 아무세요." 다인의 단호한 말투에 인헌은 그 말에 잠시 표정이 굳었는데, 그 얼굴에 스친 감정이 분노인지 당혹감인지 구분하기 어려웠고, 다인은 그저 담담한 척 시선을 돌리며 상처 위에 마지막 천 조각을 감쌌다. 손끝이 그의 피부에 닿을 때마다 이상하게도 저릿한 감각이 스쳤는데, 그게 상처 때문인지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 다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됐어요. 이 정도면 일단 지혈은 될 거예요." 다인은 손을 털며 뒤로 물러났고, 인헌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낡은 지붕 틈으로 새어드는 희미한 빛이 그의 은빛 머리카락 위로 얇게 부서졌는데, 그 광경이 어쩐지 그림 같아서 다인은 잠깐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 자식이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그림 같을 일인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이름이 무엇인가." 인헌이 불쑥 물었다. "다인이요." "다인." 그는 이름을 발음하듯 한 번 되뇌었을 뿐인데, 그 목소리가 낮게 울려서 다인은 괜히 귀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저, 이게 뭐라고 이렇게 부끄럽지. 다인은 애써 그 감각을 무시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쪽 이름은 안 물어봤는데,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어요." "……인헌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이름을 밝히는 게 어쩐지 뜻밖이라, 다인은 잠깐 그를 내려다보았다. 인헌은 여전히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있었는데, 그 옆얼굴이 세필로 그린 그림처럼 정갈해서, 다인은 또 한 번 헛웃음을 삼켰다. 화상 자국이 있어도 저 얼굴은 저 얼굴이구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물은 조금 있다가 가져올 테니, 그때까지 절대 소리 내지 마세요." 인헌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회색 눈동자가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좇고 있었다는 것을, 문을 닫고 나서는 다인은 알지 못했다.
밖으로 나온 다인은 몽이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깊게 숨을 내쉬었는데, 하늘에는 여전히 검은 연기가 옅게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아래로 흩어진 염소들의 울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저것들 다 어디로 갔을까. 다인은 그 걱정을 잠시 미뤄둔 채, 자신이 방금 무슨 짓을 벌인 건지 실감하기 시작했다. 헛간 문짝은 부서졌고, 상처 치료에 쓴 옷가지도 아까워 죽겠는데, 무엇보다 지금 저 폐가 안에 누워 있는 존재가 그냥 다친 나그네가 아니라는 사실이 뒤늦게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청명국의 왕을, 자기 집 옆 폐가에 숨겨두었다는 것을.
몽이가 낑낑거리며 다인의 손등을 핥았지만, 다인은 그 온기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폐가의 낡은 문짝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저 안에서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처는 정말 괜찮을지, 걱정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 가슴 한복판에 얹혀서, 다인은 오늘 밤이 유난히 길어질 것 같다는 예감에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