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미천한 미스트리스

1화

전임 수석 메이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내가 그 자리를 노리고 서류를 위조하던 바로 그 주였다.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처음엔 의심스러웠다. 누가 나를 위해 자리를 비워준 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알아보니 별다른 배후는 없었다. 심장마비. 그것도 저택 뒤뜰 창고에서 홀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고 했다. 향년 마흔셋. 백가에서 십오 년을 일한 여자였다. 십오 년이라니. 한 사람이 한 집안에 그렇게 오래 붙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낯설게 느껴졌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정리했다. 죄책감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그 여자와는 얼굴을 마주한 적조차 없었으니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죽음에 슬퍼하는 척을 하는 것도 일종의 위선일 텐데, 나는 위선을 부릴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그저 빈자리가 생겼고, 나는 그 빈자리에 들어갈 자격을 만들어야 했다. 서류 위조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필체를 흉내 내는 것도, 도장을 구하는 것도.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 이름은 문아리다. 물론 진짜 이름은 아니다. 진짜 이름이 뭐였는지는, 지금 이 순간부터 중요하지 않게 만들 생각이었다. 이름이라는 건 어차피 살아가는 동안 몇 번이고 갈아입을 수 있는 옷 같은 것이었다. 백가의 저택은 크고, 오래되었고, 소문이 많았다. 세어스 가문이니 후작이니 하는 화려한 족보는 없었지만, 이 도시에서는 백가만큼 알아주는 이름도 드물었다. 무역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사람을 사는 집안. 나는 그 집안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대문 앞에서 나를 맞은 건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남자였다. 등이 곧고, 시선이 차가웠다. 서 있는 자세만 봐도 이 집에서 몇 십 년을 버틴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수석 메이드로 오셨다고요." "네." "경력이 화려하시더군요. 추천서도 셋이나 있고." 그가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손끝이 종이 모서리를 정확하게 짚었다. 꼼꼼한 성격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속으로 경계 수치를 하나 올렸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라." 그가 짧게 웃었다. 웃음에 온도가 없었다. "이 일에서 운이 좋았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은 흔치 않은데요." 그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 시선에는 노골적인 의심이 담겨 있었다. 옷차림, 자세, 손. 아마 손을 가장 오래 봤을 거다. 메이드의 손이 지나치게 깨끗하면 의심받기 마련이니까. "솔직히 말하죠. 여기 온 메이드들, 셋 중 둘은 한 달을 못 버텼습니다. 아가씨가 워낙 남달라서." "남다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여쭤도 될까요." "보시면 압니다." 그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필요를 못 느끼는 얼굴이었다. 이름은 한서준. 백가의 집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목소리에는 이미 나에 대한 결론이 내려져 있었다. 어차피 못 버틸 거라는, 그런 결론. '그렇겠지.' 나는 속으로 그의 예측에 동의했다. 다만 그 이유는 그가 상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를 뿐이었다. 나는 이 저택의 딸이 무서워서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도망쳐야 할 상황이 온다면, 그건 다른 이유에서일 터였다. 짐이라고 할 것도 없는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나는 저택 뒤편, 사용인들의 구역으로 안내받았다. 좁고 어두운 복도, 낮은 천장, 나무 바닥이 밟을 때마다 낮게 울었다. 벽에는 오래된 얼룩이 지도처럼 번져 있었고, 창문 하나는 아예 판자로 막혀 있었다. 이곳이 앞으로 내가 서 있을 자리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방은 작았다. 침대 하나, 옷장 하나, 그리고 손바닥만 한 창문 하나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넓은 방이 아니라,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얼굴이었으니까. 방에 짐을 내려놓고, 나는 창문을 열었다. 저택 안뜰이 내려다보였다. 정원사가 장미 넝쿨을 손질하고 있었고, 가위질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저 멀리 본관 이층 창문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마치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던 것처럼. '저게 백서연인가.' 서류에서 본 이름이었다. 백가의 외동딸. 열일곱, 열여덟쯤. 평판은 좋지 않았다. 메이드 셋을 쫓아낸 아이. 서류에는 구체적인 이유까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기질이 예민하다'는 문장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기질이 예민하다는 표현은, 대개 뭔가를 숨기기 위한 완곡어법이었다. 나는 그 그림자를 잠시 올려다보다가, 커튼을 닫았다. 아직은 관찰할 때가 아니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목덜미를 짚었다. 아직은 아무 감각도 없었다. 향각. 그건 아직 이곳에서 완전히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익숙한 장소에 완전히 스며들기 전까지는, 향각도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괜찮다. 시간은 있었다. 나는 가방 안쪽에 숨겨둔 것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위조한 서류 사본, 여분의 도장, 그리고 아무도 몰라야 할 몇 가지 물건들. 전부 제자리에 있었다. 나는 가방을 옷장 깊숙이 밀어 넣고, 문을 잠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정식으로 백가의 수석 메이드가 되었다.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서류에 서명을 하고, 한서준의 서명이 옆에 나란히 찍혔다. 서명은 백채린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안주인. 서연의 어머니. 나는 그 서명의 필체를 오래 들여다봤다. 흔들림이 있었다. 술을 마신 손으로 쓴 서명 같았다. 글자 끝이 자꾸 아래로 처졌고, 획순도 매번 조금씩 달랐다. "안주인마님은 서명만 하시고 다른 일에는 관여하지 않으십니다." 한서준이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먼저 설명했다. "몸이 좋지 않으셔서요." "어디가 안 좋으신가요?" "그건 알 필요 없으실 겁니다." 단호한 대답이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어차피 궁금한 건 몸이 아니라 술이었으니까. '이 집, 생각보다 재미있겠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서류를 정리해 넣었다. 안주인은 술에 취해 있고, 딸은 메이드를 세 명이나 쫓아냈고, 집사는 나를 벌써 실패자 명단에 올려놓았다. 이 정도면 볼 만한 무대였다. 하지만 그 생각이 얼마나 얕았는지는, 그날 오후 백서연과 처음 마주치고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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