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서연의 방문은 노크할 필요가 없었다. 문을 열자마자 안에서 뭔가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찻잔이었다. 다행히 비어 있었다. 벽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나는 문 앞에 선 채로 그 파편이 바닥에 흩어지는 걸 지켜봤다.
'조준이 나쁘진 않네.'
거리와 각도를 보아하니 이런 짓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감탄할 일은 아니었지만, 감탄하고 있었다.
"또 뭐야. 새로 왔어?"
방 안쪽,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쏘아보는 여자애가 있었다. 검은 머리를 대충 틀어 올렸고, 눈빛이 날카로웠다. 나이에 비해 키가 크고, 자세가 흐트러져 있었다.
"백서연 아가씨죠."
"이름 아는 걸 보니 서류는 읽었나 보네. 근데 그거 읽었으면 나한테 오지 말았어야지."
"왜죠?"
"나 사람 갈아치우는 게 특기라서."
서연은 다리를 꼬고 앉아 팔짱을 꼈다. 그 자세만으로도 이 아이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메이드를 상대로 이 짓을 반복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몇 명이나 갈아치웠는데요."
"…뭐?"
"궁금해서요. 숫자가 있으면 참고가 될 것 같아서."
서연이 잠시 말을 멈췄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던 모양이다.
"여섯 명."
"적네요."
"뭐가 적어?!"
"더 많을 줄 알았습니다."
서연의 미간이 좁아졌다. 나는 그 표정을 무시하고 방 안을 눈으로 훑었다.
"뭐 하고 있을 거야. 짐 쌀 거면 지금 싸는 게 편할걸."
"왜 짐을 싸야 하죠."
"이 방 청소 못 할 거니까."
서연이 손짓으로 방 안을 가리켰다. 옷가지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깨진 도자기 조각이 며칠은 방치된 채로 굴러다녔다. 창가에는 책이 몇 권 펼쳐진 채 엎어져 있었는데, 먼지가 쌓인 걸로 봐서 읽다가 던진 게 아니라 그냥 던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창문 쪽에는 유리병이 몇 개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담겨 있었다.
'술이네.'
나는 그 병들을 눈으로 확인하며 생각했다. 열일곱, 열여덟짜리 여자애가 방에 술병을 쌓아두고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나중에 알아볼 문제였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청소는 할 겁니다."
"뭐?"
"청소하러 온 거니까요."
서연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예상한 반응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아니요. 청소하러 왔다는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뭐야 이 사람."
서연이 침대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보다 반 뼘쯤 컸다. 코앞까지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듯 노려봤다.
"나 건드리면 안 좋을 텐데."
"건드릴 생각 없습니다. 방만 치우면 됩니다."
"내가 하지 말라면?"
"그럼 안 합니다."
"그럼 지금 나가."
"싫습니다."
"방금 안 한다고 했잖아!"
"청소를 안 한다고 했지, 나가겠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서연이 순간 말을 잃었다. 나는 그 틈을 타 바닥에 떨어진 도자기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담기 시작했다. 손을 멈추지 않았다. 깨진 조각들 사이로 손끝이 스칠 뻔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건 실수로 베이지 않게 조심하면 될 일이었다.
"…야. 야, 잠깐. 방금 뭐라고 했어?"
"하지 말라면 안 한다고요."
"그럼 청소는 왜 계속해?"
"하지 말란 말 안 하셨잖습니까."
"방금 나가라고 했잖아!"
"나가라는 거랑 청소하지 말라는 건 다른 말입니다."
서연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얼굴에는 화가 아니라 당황이 서려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반응한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었다.
"…미쳤네, 진짜."
서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나를 관찰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이름이 뭐야."
"아리입니다."
"몇 살인데."
"물어보실 필요 없는 정보입니다."
"그건 또 왜 안 알려줘?"
"나이를 알아야 할 이유가 없어서요."
"…와, 진짜 이상해."
서연이 픽 웃었다. 처음으로. 그 웃음이 나쁜 쪽 웃음은 아니었다.
나는 계속 손을 놀리며 방을 정리했다. 옷가지를 종류별로 나눠 접었고, 바닥에 떨어진 종이 뭉치는 구겨진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해 따로 쌓았다. 책상 위 먼지는 손끝으로 슬쩍 훑어보고, 마른 걸레로 닦아냈다. 서연은 아무 말 없이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해할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도와줄 생각도 없어 보였다.
술병들을 발견했을 때, 서연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걸 봤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커졌다가, 곧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모른 척하고 싶은가 보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병들을 상자에 담아 옆으로 치워두었다. 버리지도, 지적하지도 않았다. 그저 방구석에 조용히 두었다.
"…안 물어봐?"
"뭘요."
"그거."
서연이 턱짓으로 상자를 가리켰다.
"물어봐야 하나요."
"보통은 물어보잖아. '아가씨, 이게 뭡니까' 하면서."
"저는 청소하러 왔습니다. 심문하러 온 게 아니라서요."
서연이 잠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에 뭔가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는데,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굳이 알아내려 하지 않고 다시 손을 움직였다.
한 시간쯤 지나자 방은 사람이 지낼 수 있는 형태로 돌아왔다. 물론 원래 상태로 돌려놓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최소한 걸어 다닐 때 뭔가를 밟을 걱정은 없어졌다는 정도였다.
"끝났습니다."
"…벌써?"
"할 만큼 했으니까요."
서연은 방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뭐라 말할 타이밍을 놓친 사람처럼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나가 봐."
"네."
나는 인사를 하고 방을 나섰다.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던져진 물건은 없었다.
그날 저녁, 한서준이 복도에서 나를 붙잡았다.
"방에서 살아 나왔군요."
"별일 없었습니다."
"…그건 처음 듣는 보고인데."
그의 눈빛에 미묘한 균열이 생겼다. 나에 대한 결론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그 방에 들어간 사람들은 어떤 보고를 합니까."
"울면서 나오거나, 물건에 맞아서 상처가 나거나, 그 자리에서 그만두겠다고 하거나. 셋 중 하나였습니다."
"그럼 저는 네 번째 경우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좋은 시작이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정리하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백서연이라는 아이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라는 사실은, 그날 밤 늦게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새벽 두 시, 그 방에서 흘러나온 술 냄새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