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장례식장 냄새는 병실 냄새와 비슷하다.
소독약 냄새 대신 국화 냄새가 코를 찌른다는 것만 다르다.
나는 성민이 영정 속에서 웃고 있는 걸 보면서 그 생각을 했다. 냄새가 비슷하네. 이상한 생각을 다 하네 나도.
이런 순간에 냄새 타령이나 하고 있다니. 성민이 알면 또 뭐라고 놀렸을까. 넌 정말 감성이 이상한 애야, 하면서 웃었을 거다. 그 웃음을 이제 다시는 못 본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실감이 안 나서 이렇게 딴생각만 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조문객은 많지 않았다. 성민의 부모님, 몇몇 친척, 한별국제학교 선생님 몇 명, 그리고 나. 성진그룹 사람들이 보낸 화환은 장례식장 입구부터 복도까지 줄지어 세워져 있었는데, 정작 그 화환을 보낸 사람은 오지 않았다.
화환 리본에는 하나같이 근조라는 글자가 금박으로 박혀 있었다. 리본만 저렇게 화려하고 사람은 하나도 안 왔다. 나는 그 화환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이게 무슨 전시회인가 싶었다. 조의를 표하는 전시회. 정작 조의를 표해야 할 당사자는 빠진.
"바쁘신 거 안다." 성민의 아버지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고개를 숙였다. 바쁘다는 말이 맞는 말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항상 바빴으니까. 아니, 바쁜 게 아니라 안 온 거겠지. 바쁘다는 건 그냥 핑계고. 근데 그 말을 여기서 할 수는 없어서 그냥 고개만 숙였다. 성민의 아버지 눈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그 앞에서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몰랐다.
박지훈은 조문객 접수대 옆에 서서 방명록을 관리하고 있었다.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 저 사람은 원래도 검은 옷을 입지만 오늘은 유독 더 검게 보였다. 나는 그 옆에 가서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방명록에 이름 쓰는 사람도 얼마 없어서 지훈도 사실 할 일이 없었을 텐데, 그래도 그는 뭔가 하는 척 서류를 만지고 있었다. 저것도 일종의 예의겠지. 가만히 있으면 안 되니까 뭐라도 하는 척.
"회장님께서 화환은 보내셨습니다." 지훈이 말했다.
"알아." 나는 대답했다. 화환 얘기를 지금 왜 하나 싶었다.
"직접 오시고 싶으셨을 겁니다."
"됐어." 나는 그 말을 자르듯 말했다. 오고 싶었을 거라는 말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포장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다. 나는 그런 포장에 익숙했다. 어릴 때부터 봐 왔으니까.
..오고 싶었을 거라는 말, 그거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인데요. 오고 싶었으면 왔겠죠. 회장님이 뭐가 없어서 못 와요. 스케줄 비서가 몇 명인데.
속으로만 그렇게 쏘아붙였다. 지훈 앞에서 그런 말을 해봤자 지훈이 대신 대답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훈도 그냥 시켜서 하는 말이라는 걸 나는 안다. 저 사람도 나름 곤란하겠지. 회장님 대변인 노릇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다.
장례식이 끝나갈 무렵 나는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었다. 물이 손끝을 스치는 순간 이상한 감각이 되살아났다. 성민의 손을 잡았을 때 느꼈던, 손끝에서 가슴으로 흘러들어오던 그 기운. 물비린내 나는 세면대 위 거울 속에서 내 얼굴은 평소보다 하얬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나서도 손끝이 계속 저릿거렸다. 이게 무슨 감각인지 나는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다. 성민이 마지막으로 내 손을 쥐었을 때, 뭔가가 훅 들어왔다. 뭔가라고 밖에 표현이 안 되는 그것. 그게 뭔지는 아직도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알아봤자 성민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얀데레 하렘이라니. 죽어가는 애가 무슨 그런 말을 남겨.
웃으려고 했는데 웃음이 안 나왔다. 웃긴 말이었는데도. 성민이 마지막 순간에 나를 웃기려고 했던 걸 알아서 더 화가 났다. 그 자식은 죽는 순간까지도 나를 웃기려고 애쓰고 있었던 거다.
거울 속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봤다. 눈이 부어 있는 것도 아닌데 얼굴이 왜 저렇게 초췌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나는 울지도 않았다. 이상하게 눈물이 안 나왔다. 성민의 부모님은 계속 우는데 나는 눈이 말라 있었다. 그게 더 이상해서 나는 손으로 얼굴을 한번 문질렀다. 뭐라도 나올까 싶어서. 안 나왔다.
장례식장을 나서자 지훈이 차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도련님, 오늘 바로 옮기셔야 합니다."
"뭘 옮겨."
"거처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회장님 지시입니다."
나는 차에 타면서 물었다. "어디로."
"성진의료재단에서 관리하는 게스트하우스입니다. 강남에 있습니다."
"내가 왜 거기로 가야 하는데."
지훈은 운전석에 앉으며 잠깐 말을 골랐다. 저 표정은 뭔가 숨기고 있을 때 나오는 표정이다. 삼 년을 옆에서 봐 왔으니 그건 안다. 눈썹이 살짝 올라가고, 입술을 한 번 축이고, 그다음에야 말을 꺼낸다. 저 패턴이 나올 때는 백 프로 뭔가 감추는 거다.
"회장님께서는 도련님이 조용히 마음을 추스르실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집에서도 추스를 수 있어."
"자택은... 지금 공사가 있어서요."
거짓말이다. 티가 너무 났다. 우리 집에 무슨 공사가 있다는 소리를 나는 들은 적이 없다. 애초에 우리 집에 뭐가 공사할 게 있나. 정원이라도 갈아엎는다는 건가.
나는 창밖을 보면서 더는 캐묻지 않았다. 캐물어도 지훈은 대답 안 해줄 게 뻔했다. 삼 년을 옆에서 봐 왔으니 그것도 안다. 저 사람 입은 회장님 허락 없이는 절대 안 열린다. 열려봤자 저렇게 뻔한 거짓말 정도나 흘리는 거고.
차가 한강을 지날 때 나는 물었다. "엄마는."
"사모님께서는 며칠 전 급하게 출국하셨습니다."
"왜."
"제가 알기로는... 도련님을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위해서라면서 나를 두고 나가는 게 무슨 논리인지 나는 이해가 안 갔다. 어른들 논리는 항상 이런 식이다. 나를 위한다는 말이 정작 나에게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를 위해서 출국을 한다. 나를 위해서 화환만 보내고 안 온다. 나를 위해서 집을 놔두고 게스트하우스로 보낸다. 이 집안 사람들이 나를 위한다고 하는 말은 죽 다 이런 식이다. 진짜 위하는 거였으면 그냥 내 앞에 있어주는 게 제일 쉬운 방법 아닌가. 나는 창문에 이마를 살짝 대고 그런 생각을 했다. 한강 물빛이 까맣게 흘러가고 있었다. 저 물이나 우리 집 어른들이나 다 겉만 번들거리고 속은 안 보인다.
게스트하우스는 강남 한복판에 있는 12층짜리 건물이었다. 유리로 마감된 외벽이 저녁 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다. 로비에는 성진의료재단 로고가 크게 박혀 있었다. 나는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성진의료재단 게스트하우스가 왜 있는지 몰랐네." 나는 로비에 들어서면서 중얼거렸다.
"중증 환자 가족들을 위한 임시 거처로 운영됩니다. 서울에 연이 없는 지역 환자 보호자들이나... 그런 분들을 위한 곳입니다."
"그럼 여기 다른 사람들도 있다는 거네."
"몇 세대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별생각을 하지 않았다. 낯선 건물, 낯선 냄새, 낯선 침대. 오늘 밤은 어디서 자든 상관없었다. 성민이 없는 세상에서 자는 첫날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했지, 잠자리가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로비 바닥은 대리석이었는데 반질반질하게 광이 나서 내 신발 밑창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직원 몇 명이 지나가면서 나한테 목례를 했다.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데 저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아는 눈치였다. 성진이라는 이름 하나로 여기서는 다 통하는구나. 그런 게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원래 그랬으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지훈은 옆에서 카드키를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설명했다. 몇 층에 뭐가 있고, 조식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고, 필요한 게 있으면 프런트에 연락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나는 듣는 척만 하고 거의 흘려들었다. 지금 그런 게 귀에 들어올 상황이 아니었다.
방은 넓었다. 호텔 스위트룸 같은 구조였는데 침구는 병원처럼 새하얀 것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벽 어딘가에서 소독약 냄새가 아주 살짝 났다. 여기도 병원과 닮은 곳이구나, 나는 또 그 생각을 했다. 오늘 하루 종일 냄새 얘기만 하고 있다.
짐을 대충 풀고 나서 지훈이 저녁을 챙기겠다고 나가버렸다. 나는 방에 혼자 남아서 창밖을 봤다. 강남 야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는데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왔다. 성민이 이 야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났다. 성민은 한별국제학교와 병원, 그 두 곳만 오가다가 죽었다.
..저 불빛들, 성민이는 한 번도 못 봤겠지. 이렇게 높은 데서 서울을 내려다본 적이 있었을까. 병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 옆 건물 옥상이랑 하늘 조금이 다였는데. 나는 창에 손바닥을 대봤다. 유리가 차가웠다. 그 차가운 감각이 손끝의 저릿거림과 비슷해서 나는 손을 얼른 뗐다.
가만히 있으니까 자꾸 그 생각만 났다. 뭔가 다른 걸 해야 할 것 같았다. 배는 안 고픈데도 뭔가 씹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허기는 아닌데 입이 심심한 그런 상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로비 편의점에 가려고 했다. 담배는 안 피우지만 뭔가 사서 씹고 싶었다. 12층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숫자가 하나씩 내려가는 걸 멍하니 보고 있었다.
11.
9.
7.
숫자가 바뀔 때마다 작은 종소리가 딩, 하고 났다. 그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복도 카펫 무늬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면서 시간을 죽였다.
5, 4, 3.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렸다.
그 안에 서 있던 사람을 보는 순간, 나는 성민의 손을 처음 잡았던 그 순간처럼 숨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