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금요일까지 사흘이 남았다.
나는 그 사흘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천장을 보고 누워 있으면 자꾸라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5년 후의 장면들이 필름처럼 돌아갔다. 병실, 흰 벽, 그리고 마지막으로 봤던 그녀의 얼굴.
똑, 똑.
시계 초침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새벽 세 시. 나는 몸을 일으켜 물을 마셨다. 손끝이 차가웠다.
기억 속의 그 오디션을 떠올렸다.
그날 설윤은 심사위원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 반주가 갑자기 끊기는 사고를 겪었다. 노래 중간, 마이크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던 게 보였다. 반주가 끊기자 강당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침묵이 그녀를 짓눌렀다. 당황한 그녀는 다시 박자를 맞추려 했지만 목소리가 갈라졌고, 결국 노래를 망쳤다. 탈락이었다.
그 후로 그녀는 몇 달간 자신감을 잃었다. 웃음이 줄었고, 노래방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나는 그때 그녀 곁에서 위로했고, 그게 우리가 가까워진 계기였다.
그 기억이 맞다면, 반주 사고는 반주 담당 기기의 문제였다. 오래된 앰프가 과열로 꺼졌던 거였다.
이번엔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
다음 날, 나는 시청각실을 찾아갔다.
문을 열자 먼지 냄새와 기계 열기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낡은 스피커들이 벽을 따라 쌓여 있었고, 그 사이에서 기술부 선생님이 케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뭐 필요해?" 선생님이 고개도 들지 않고 물었다.
"금요일 오디션에 쓸 앰프요. 한 번 점검해봐야 할 것 같아서요."
"네가 그런 걸 왜 신경 써?"
선생님이 이번엔 고개를 들었다. 의아한 눈빛이었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냥 웃으며 넘겼다.
"그냥, 강당 음향이 좀 불안하다는 얘기를 들어서요."
선생님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훑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나는 그 틈에 앰프 뒤판을 살짝 들어 올렸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전선들이 얽혀 있었다.
확인해보니 정말로 앰프 전선 하나가 낡아 있었다. 피복이 갈라져 안쪽 구리선이 살짝 드러나 보였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맞았다. 이거였다.
"이거 좀 이상한데요." 나는 손끝으로 전선을 가리켰다. "과열되면 꺼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선생님이 다가와 살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어… 그러네. 이거 언제부터 이랬대."
"교체해주실 수 있어요?"
선생님은 귀찮은 표정으로 알겠다고 했다. 나는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느냐고 물었고, 선생님은 됐다고, 알겠다고, 자꾸 캐물으면 되레 이상하다고 했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얹지 못하고 물러났다.
시청각실을 나오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정말 이걸로 될까.
***
금요일이 왔다.
체육관 뒤편 강당에 학생들이 모였다. 조명이 밝게 켜져 있었지만 강당 안 공기는 서늘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 누군가의 헛기침 소리가 뒤섞였다.
설윤은 순서를 기다리며 무대 옆에 서 있었다. 긴장한 듯 손을 계속 맞잡고 있었다.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는 게 멀리서도 보였다.
나는 강당 뒤쪽 구석에 서서 지켜봤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다. 손바닥에 땀이 뱄다. 앰프는 교체됐을까. 정말 교체된 걸까.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금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앞서 몇 명이 순서를 마쳤다. 반주가 무난하게 흘러나왔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그날의 사고가 정확히 그녀의 순서에서 일어났으니까.
그녀의 이름이 불렸다.
"다음, 백설윤."
무대 위로 걸어가는 걸음이 유난히 곧았다. 어깨를 펴고, 턱을 살짝 든 채였다. 조명이 그녀를 비추자, 순간 숨이 막혔다.
반주가 흘러나왔다.
끊기지 않았다.
내 손이 저절로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처음엔 살짝 떨리던 음이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고음으로 올라가는 부분에서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고 곧게 뻗었다. 강당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자 심사위원 세 명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한 심사위원이 물었다.
"백설윤입니다."
그날, 그녀는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었다.
***
강당을 나서는 그녀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복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들 합격자 명단 앞에 몰려 있었다. 그 틈을 비껴 나오던 그녀가 나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어, 너." 그녀가 나를 알아봤다. "저번에 버스 정류장에서."
"이준서." 나는 이름을 밝혔다.
"이준서." 그녀가 이름을 곱씹듯 말했다. "근데 여긴 왜 있어? 관심도 없어 보이던데."
"궁금해서."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잘될 것 같아서 보러 왔어."
그 말에 그녀 눈이 살짝 커졌다.
"뭐야, 되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네."
원래의 나였다면 이 순간 어쩔 줄 몰라 얼굴이 붉어졌을 거였다. 손이라도 어디에 둘지 몰라 허둥댔을 거고, 말은 제대로 못 나왔을 거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상하게 침착했다. 5년 후의 기억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너 오디션 잘 볼 거 알고 있었어." 나는 무심하게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느낌."
그녀가 미간을 좁혔다.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너 좀 이상해." 그녀가 팔짱을 꼈다. "보통 남자애들은 나한테 이렇게 안 구는데."
"어떻게 구는데?"
"쩔쩔매거나, 아니면 관심 없는 척 세게 나가거나." 그녀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근데 너는 그냥… 편하게 말하네."
"그게 이상한 거야?"
"이상하지." 그녀가 픽 웃었다. "근데 나쁘진 않네."
그 웃음이 낯설게 다가왔다. 5년 후, 그녀의 웃음에는 늘 계산이 섞여 있었다. 상대의 반응을 재고,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조절된 웃음이었다.
지금 이 웃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순수했다. 그저 오디션에 붙었다는 기쁨과 낯선 상대에 대한 흥미가 섞인, 그 나이 또래의 웃음이었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안 돼.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번엔 다르게 가야 했다. 저 웃음에, 저 눈빛에 다시 흔들리면 안 됐다.
"어쨋든, 축하해." 나는 말을 자르듯 인사하고 몸을 돌렸다.
발걸음을 떼는 순간, 등 뒤로 발소리가 따라왔다.
"어, 저기." 그녀가 내 팔을 붙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겨울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너 진짜 이상해." 그녀가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뭔가 아는 사람처럼 말하잖아.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그 질문이 심장을 관통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뭔가를 캐내려는 눈빛이었다. 예전에도 저런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5년 후, 무언가 숨기는 게 있을 때, 그녀는 늘 저렇게 상대를 몰아붙였다.
"말해봐." 그녀가 팔을 더 세게 붙잡았다. "너 나 알아?"
붙잡힌 팔이 저릿했다. 아니, 라고 말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냥 우연이었다고 넘겨야 했다.
그런데 입이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