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짝사랑은 오해로 핀다

3화

그날 밤, 강서윤은 자신의 방 침대에 엎드린 채 휴대폰 화면을 몇 번이나 켰다가 껐다. 액정 위로 흘러가는 시간이 벌써 열한 시를 넘기고 있었는데도, 그녀는 잠들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하준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어놓고도 결국 아무것도 누르지 못했는데, 그것은 마치 자신이 진짜로 그 사람에게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몇 번이나 머뭇거리다가 결국 검색창을 지워버리는 것을, 서윤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러지.' 서윤은 베개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중얼거렸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어본 적이 있었나 싶었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그런 일은 없었다. 늘 반대였다.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고, 그녀의 SNS를 들여다보고, 그녀의 관심을 얻기 위해 애를 썼다. 그것이 강서윤이라는 이름이 살아온 방식이었다. 서윤은 태어난 이후로 늘 원하는 것을 얻어내며 살아왔다. 성적도, 외모도, 친구도, 관심도, 손을 뻗으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이 되었고,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라온 열일곱 해였다. 초등학교 때는 반장 선거에서 손 한 번 들지 않아도 아이들이 먼저 그녀의 이름을 써 냈고, 중학교 때는 좋아한다고 다가온 남자애들이 줄을 섰다가 그녀가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면 스스로 물러났다. 그런데 이하준이라는, 반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던 한 남학생이 처음으로 그녀의 손을 밀어냈고, 그것도 아주 정중하고 성실한 태도로 밀어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그녀의 자존심 어딘가에 깊은 균열을 냈다. '다시 생각해봐도 이상해.' 서윤은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를 거절해? 그것도 그렇게 태연하게?' 처음엔 분노였고, 그다음엔 자존심이었고, 마지막에는 알 수 없는 오기가 그녀의 안에서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 이대로 물러나면 평생 이하준이라는 이름이 마음 한구석에 가시처럼 남을 것 같았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특별해서, 강서윤이 다가가는데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괜찮아"라는 말로 상황을 정리해버릴 수 있었던 건지, 아무리 곱씹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좋아, 그럼 진짜로 넘어오게 만들어주지.' 서윤은 그렇게 결심하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소연과 유나에게는 알릴 필요가 없었다. 벌칙 게임의 후속편이 아니라, 이번에는 순전히 강서윤 개인의 자존심을 위한 싸움이었으니까. 그녀는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올린 채 눈을 감았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다음 날 아침의 시나리오가 몇 개나 그려지고 있었다. 어떤 표정으로 다가갈지, 어떤 말을 먼저 건넬지, 심지어 어떤 각도로 웃어야 가장 자연스러워 보일지까지도. 다음 날, 서윤은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교실에 도착했다. 평소라면 지각 직전에 슬리퍼를 끌 듯 들어오던 그녀가 알람을 두 번이나 맞춰 서둘러 나선 것을 소연이나 유나가 봤다면 분명 눈치를 챘을 텐데, 다행히 교실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이하준은 이미 창가 자리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는데, 아침 햇살이 그의 옆얼굴에 부드럽게 부서지며 낡은 책장 위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서윤은 그 광경을 잠시 멈춰서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그 옆자리, 원래 비어 있던 자리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뭐 읽어?" 서윤이 묻자, 하준은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책 표지를 보여주었다. "그냥 소설." "제목이 뭔데?" 그녀가 재차 묻자, 하준은 짧게 제목을 알려주었고, 서윤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 있는 척 웃어 보였다. 사실 서윤은 그 순간 책 제목 따위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고, 다만 하준의 목소리가 낮고 담담하게 이어지는 것을, 그리고 그가 말할 때마다 살짝 움직이는 입술 끝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는 것을 그녀 자신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재밌어 보이네. 나도 읽어봐야겠다." 서윤의 말에 하준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책이야. 관심 있으면 빌려줄게." 그 순수한 반응에 서윤은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이렇게 쉽게 넘어오나.' 싶었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가슴 한쪽이 조금 이상하게 뛰기도 했다. 뭔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승리감과, 그와는 별개로 설명할 수 없는 낯선 두근거림이 동시에 찾아온 것이었는데, 서윤은 후자를 애써 무시하며 미소를 유지했다. 곧 하나둘 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소연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서윤과 하준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지만, 서윤이 눈짓으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자기 자리로 향했다. 유나 역시 뒤늦게 들어와 상황을 보고는 입을 벙긋거렸지만, 서윤이 미리 눈으로 경고한 덕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았다. 서윤은 그것을 애써 승리감으로 해석했다.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첫걸음이 순조롭게 시작된 것이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미소를 지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하준이라는 이름 석 자에 잠을 설쳤다는 사실이 우스울 만큼, 오늘 아침의 서윤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이하준의 머릿속에서는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는 어제 자신이 정중하게 거절했던 것을, 서윤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이제는 편안한 친구로 다가와주는 것이라 믿었고, 그런 그녀의 태도가 오히려 성숙하고 대범하게 느껴져 마음 한편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원래 사람과 쉽게 가까워지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강서윤 같은 아이가 자신의 취향을 궁금해하고 먼저 말을 걸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신기하고 반가운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 서윤이 어떤 계산을 품고 있는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수업이 끝나고 짧은 쉬는 시간마다, 서윤은 의도적으로 하준의 주변을 오가며 자연스러운 접촉을 늘려나갔다. 필기구를 빌리는 척 손을 뻗기도 하고, 지나가다 어깨를 살짝 부딪치며 사과를 건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하준은 담담하게 반응했지만, 서윤은 그 담담함 속에서도 조금씩 허물어지는 틈을 찾고 있었다. 그날 오후, 서윤은 하준의 책상 위에 작은 캔커피 하나를 슬쩍 올려놓고 지나갔다. "그냥, 지나가다가."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자리로 돌아가자, 하준은 캔커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작게 웃음을 지었다. 캔의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손끝에 닿는 감촉을 느끼며, 그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고, 서윤은 그런 하준의 옆모습을 뒤에서 몰래 곁눈질하며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 두 사람 사이의 온도차는, 아직 서로에게 드러나지 않은 채 그렇게 첫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한쪽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계산으로, 다른 한쪽은 순수한 호의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그 어긋난 시선이 앞으로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는 그날의 두 사람 중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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