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짝사랑은 오해로 핀다

5화

다음 날 아침,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부터 3반 전체가 이상하게 부산스러웠다. 담임교사가 조회 시간에 게시판에 붙인 새 조 편성표 앞으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칠판 옆에 붙은 A4용지 한 장을 두고 저마다 자기 이름을 찾느라 목을 길게 빼는 통에 교실 앞쪽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음 학기 학급 프로젝트를 위해 조를 무작위로 정한다는 담임의 짧은 설명이 이어졌지만, 아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이 누구와 묶였는지에만 쏠려 있었다. 서윤도 처음엔 그저 무심하게 명단을 훑어 내려갔을 뿐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 옆, 나란히 적힌 '이하준'이라는 세 글자를 발견한 순간, 목 안쪽에서부터 뭔가가 훅 치솟는 느낌과 함께 순간 숨이 멎는 감각이 온몸을 스쳤다. 잘못 봤나 싶어 다시 확인해도 글자는 그대로였다. 이름 두 개가 나란히,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붙어 있었다. "어, 너 이하준이랑 같은 조네." 유나가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윤의 팔을 툭 쳤다. "야, 이거 실화냐? 담임 선생님이 몰래 짜준 거 아니야?" 소연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명단을 들여다보더니 낮게 웃음을 흘렸다. "이게 무슨 우연이냐, 진짜. 하늘이 도왔나 보네." 두 사람이 번갈아 놀리듯 말을 얹었지만, 서윤은 애써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지는 기분이었다. 이걸 반가워해야 하는지, 도망치고 싶어야 하는지조차 스스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필 왜.' 서윤은 명단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속으로 되물었다. '이 많은 애들 중에, 하필.' 프로젝트의 내용은 도서 소개 발표였다. 조별로 책 한 권을 골라 감상문과 발표 자료를 준비해야 했는데, 하준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를 자연스럽게 툭 던지듯 제안했다. 서윤은 특별히 반대할 이유도 없었고, 굳이 이견을 내세우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아 그의 선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방과 후, 두 사람은 도서관 구석 자리에 마주 앉았다. 창밖으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스며들어 책장 사이사이를 얇게 물들이고 있었고, 사서 데스크 쪽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도장 찍는 소리와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노트북을 펼친 두 사람 사이에는,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종류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그저 반가운 후배와 마주 앉은 기분이었을 텐데, 지금은 손끝 하나 움직일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이 부분, 여기 주인공 심리 설명이 좀 부족한 것 같아." 하준이 화면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서윤은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함께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하준은 서윤이 생각보다 훨씬 꼼꼼하고 성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윤이 밑줄 친 문장 하나하나에 짧은 메모를 남기고, 문단 하나를 두고도 몇 번씩 다시 읽으며 표현을 다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담담한 태도 뒤에 숨은 진지함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끌었다. 서윤 역시 하준의 말투 속에서 조금씩 다른 결을 발견하고 있었다. 짧고 건조하게 던지는 문장들 사이에, 은근히 서윤의 속도를 맞춰주는 배려가 섞여 있다는 걸,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정할 수 없게 되어갔다. 그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 차라리 냉정하기만 하면 마음 놓고 미워할 수 있을 텐데. "너 근데." 발표 자료를 정리하던 중, 하준이 문득 고개를 들며 물었다. 노트북 화면의 빛이 그의 옆얼굴을 얇게 비추고 있었다. "진짜로 안 궁금해? 내가 왜 그날 그렇게 대답했는지." 서윤은 마우스를 매만지던 손끝을 멈췄다. 도서관 안의 소음이 순식간에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 궁금한 게 아니라." 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며 시선을 화면에 고정한 채 대답했다. "이미 대답 들었잖아.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거 말고." 하준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게 가라앉았다. 서윤을 응시하는 눈빛에는 장난기가 걷혀 있었다. "네가 왜 그런 고백을 했는지, 그게 궁금해서." 서윤의 심장이 순간 바닥으로 떨어지는 감각과 함께 조여들었다. 지금 여기서 말해버리면, 그날의 모든 것이 벌칙 게임이었다는 사실이,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마주 앉아 나누고 있는 이 다정함마저 처음부터 계획된 접근에서 시작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한꺼번에 드러나 버릴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 담담한 시간도, 조심스레 쌓아가던 무언가도 전부 무너질 것이 분명했다. '말할 수 없어.' 서윤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아직은.' "그건." 서윤이 겨우 입을 열려던 순간, 도서관 안내 방송이 갑작스레 흘러나오며 폐관 시간을 알렸다. 뒤이어 사서 선생님이 다가와 서둘러 자리를 정리해달라는 말을 건넸다. 서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노트북을 서둘러 덮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여전히 제멋대로 뛰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먼저였다. "다음에 얘기해줄게." 그녀는 애써 웃는 낯을 만들어 보이며 그렇게 말했지만, 도서관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고 조급했다. 가방끈을 움켜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준은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서윤이 서둘러 사라진 자리에는 아직 온기가 남은 의자와, 반쯤 접힌 노트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챙겨 가방에 넣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다음에는, 진짜로 대답해줄 거지." 그 말은 텅 빈 도서관 안에 조용히 흩어졌을 뿐, 누구의 대답도 듣지 못한 채 허공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정작 서윤은 이미 그 말을 듣지 못한 채, 복도 끝 계단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서 있었다. 등 뒤에서 도서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온 뒤에도, 그녀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자신이 방금 삼켜버린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안도인지 두려움인지조차 알 수 없는 얼굴로, 계단 손잡이를 꽉 움켜쥔 채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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