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영지의 약초밭 말씀입니다."
오봉수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집사복의 옷깃이 유난히 단정하게 여며져 있었다.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몇 해째 방치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곧바로 되물었다.
"방치라니, 무슨 뜻이죠?"
그가 서류 몇 장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오래되어 색이 바랜 장부였다.
종이 귀퉁이가 눅눅한 습기에 눌려 살짝 말려 있었다.
누군가 오랫동안 펼쳐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숫자를 훑어보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수확량이 매년 줄고 있다.'
지난 오 년간의 기록이었다.
첫해에는 그럭저럭 유지되던 수확이 매년 조금씩, 그러다 급격히 곤두박질쳤다.
특히 삼 년째 이후로는 거의 반토막에 가까웠다.
"관리인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오봉수가 조심스럽게 설명을 덧붙였다.
"원래는 나이 든 약초꾼이 관리를 맡았습니다만, 사 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로는요?"
"후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 원망 비슷한 것이 섞여 있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남작님께서는 다른 곳에 비용을 우선하셨습니다."
다른 곳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왕도로 보낸 두 아이의 학비와 사교 비용.
그것이 이 가문의 우선순위였다.
마차 한 대, 옷 한 벌, 무도회 초대장 한 장.
그 모든 것이 이 약초밭보다 값진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면서 나를 짐이라 불렀다.'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다.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었다.
감정은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판단력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는 장부를 다시 넘겨보았다.
약초의 종류, 재배 면적, 손실률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글씨체가 중간부터 바뀌었다.
전임 약초꾼의 필체가 끝나고, 서투른 손으로 대충 적어 내려간 부분이 이어졌다.
'기록조차 성실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관리가 아예 없었던 게 아니라, 있는 시늉만 했던 것이다.
그게 더 나빴다.
청하 영지는 원래 약초 재배로 어느 정도 명성이 있던 곳이었다고 오봉수가 설명했다.
토양이 특이하게 비옥해서 다른 지역보다 약효가 좋은 풀이 자란다는 것이었다.
"한때는 왕도의 약방들이 청하산 약초를 따로 구했다고 합니다."
오봉수의 목소리에 옛날을 그리는 듯한 기색이 스쳤다.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습니다만."
'그런데 왜 이렇게 방치되었지.'
답은 이미 명확했다.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침묵한 채 그 서류들을 노려보았다.
촛불이 흔들리며 종이 위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지웠다 반복했다.
'이게, 내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들자 등줄기를 타고 이상한 열기가 올라왔다.
분노와는 다른, 결심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나는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 이 재능을 키우려는 게 아니었다.
그런 감정은 이미 오래전에 마모되었다.
대신 나는 이 가문의 붕괴 속에서, 나 자신이 도태되지 않을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그 문장이 마음속에 또렷하게 새겨졌다.
몇 번을 곱씹어도 흔들리지 않는 문장이었다.
"오봉수 집사님."
내가 부르자 그가 즉시 고개를 들었다.
"이 약초밭에 대한 자료가 더 있나요?"
그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눈매가 잠시 커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자료라면, 재배 기록 말고도 토양 검사 결과나 지형도 같은 것도 있습니까?"
"지형도는 창고에 있을 겁니다."
"토양 검사 결과는요?"
"그건... 아마 없을 겁니다. 애초에 검사를 한 적이 없을 테니까요."
역시 예상대로였다.
기초적인 자료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건, 처음부터 제대로 된 계획 없이 밭을 굴려왔다는 뜻이었다.
"찾아드리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나는 미묘한 기대감을 느꼈다.
'이 사람은 내 편이 될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다시 장부를 뒤적이며 손실률이 유독 높은 구역을 표시했다.
무언가 익숙한 패턴이 눈에 들어왔다.
특정 구획들이 매년 같은 시기에 손실이 몰려 있었다.
장마철 직후였다.
'이건 배수 문제일 수도 있다.'
확신은 아니었지만 가능성은 있었다.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지형이라면, 뿌리가 약한 약초일수록 먼저 썩어나갈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손실이 매년 누적되면서 밭 전체의 생산력이 조금씩 죽어갔을 것이다.
나는 그 생각을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봉수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가씨."
그가 낮게 나를 불렀다.
나는 펜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가씨께서 이렇게까지 직접 살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에는 놀라움과 함께, 무언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얹혀 있는 듯했다.
"할 말이 더 있으신가요?"
그가 잠시 머뭇거렸다.
"아닙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지금은 아니라는 건, 나중엔 해야 할 말이 있다는 뜻이다.'
캐물으려 했지만, 그의 표정이 이미 문을 닫고 있었다.
더 밀어붙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았다.
창밖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촛불을 켜고 계속 장부를 살폈다.
밤이 깊어질수록 방 안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그럼에도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작은 시작이 어디로 이어질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오봉수가 삼키고 내려놓은 그 말이, 어쩌면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