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오늘은 정식 감별 시험을 보겠습니다."
윤도현 선생의 목소리에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평소라면 여기저기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숨소리조차 죄스러운 분위기였다.
책상마다 다섯 가지의 마른 약초가 놓였다.
색과 형태가 비슷해 보였지만 분명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옆자리 아이는 벌써부터 입술을 깨물고 있었고, 뒷자리에서는 누군가 낮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각각의 상태와 용도를 적어보세요."
윤도현 선생의 말이 끝나자마자 교실 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아이들이 긴장한 얼굴로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하나도 옆에서 살짝 떨리는 손으로 펜을 쥐고 있었다.
그 작은 손끝이 종이 위에서 몇 번이나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나는 첫 번째 뿌리를 집어 들었다.
손끝에 닿는 순간 익숙한 감각이 스쳤다.
'이건 신선하다. 채취한 지 얼마 안 됐다.'
색깔이 진하고 향이 강했다.
코끝을 스치는 냄새는 흙냄새와 뒤섞인 알싹한 향이었고, 표면을 눌러보니 탄력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손상 없이 채취된 상태라고 적었다.
두 번째 뿌리는 조금 달랐다.
표면이 미세하게 갈라져 있었다.
손끝으로 문질러보니 가루가 조금씩 떨어져 나왔고, 향은 첫 번째 것보다 훨씬 옅었다.
'과도한 건조로 인한 손상.'
나는 그렇게 적었다.
세 번째는 냄새가 조금 이상했다.
곰팡이가 살짝 핀 흔적이 있었다.
코를 가까이 대자 시큼한 냄새가 훅 끼쳐왔고, 뿌리 끝부분은 색이 거무스름하게 변색되어 있었다.
'보관 상태가 나빴다. 폐기해야 한다.'
이런 것을 약재로 썼다가는 오히려 병을 키울 뿐이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도 차례로 살펴보았다.
손끝의 촉감, 색의 미묘한 변화, 냄새의 차이까지 하나하나 짚어가며 판단을 내렸다.
네 번째는 절단면이 유난히 매끄러웠는데, 그것만으로도 채취 시기와 도구의 상태까지 유추할 수 있었다.
다섯 번째는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속을 살짝 갈라보니 심 부분이 이미 상해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과정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반복해온 일처럼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머릿속에서 정보가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손끝이 먼저 알고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이 감각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답할 수 없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일단은 이 시험을 무사히 넘기는 것이 먼저였다.
시간이 다 되자 윤도현 선생이 종이를 걷었다.
그의 손끝이 내 종이를 스치고 지나갈 때, 나는 괜히 심장이 한 번 덜컹했다.
"채점은 내일 발표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아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저기서 어깨가 축 늘어지는 게 보였다.
하나가 내 옆으로 다가와 소곤거렸다.
"너는 다 확실하게 적은 것 같더라?"
그 말에 나는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애매하게 웃었다.
"글쨌써, 나도 잘 모르갰써."
하나가 살짝 뭉그러진 발음으로 웅얼거렸다.
어린아이처럼 말하는 그 모습에 나는 살짝 웃음이 났다.
이 아이는 시험이 끝난 지금도 여전히 잔뜩 졸아 있는 얼굴이었는데, 그게 또 묘하게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주고 싶어졌다.
물론 그런 짓을 하면 또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뜰 게 뻔했으므로,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했다.
다음 날, 학당 게시판에 결과가 붙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 자기 이름을 찾았다.
밀치고 밀리는 소리, 자기 이름을 찾고 실망하거나 기뻐하는 소리가 뒤섞여 게시판 앞은 순식간에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그 뒤에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굳이 앞으로 나서서 자리를 다툴 필요는 없었으니까.
내 이름 옆에 적힌 점수가 눈에 들어왔다.
'다섯 문제 중 다섯 문제 모두 정답.'
그것은 이번 시험에서 유일한 만점이었다.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나에게 쏠렸다.
"저 사람이 그 만점?"
"진짜야?"
수군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몇몇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나를 힐끔거렸고, 몇몇은 뭔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시선들 속에서 나는 애써 태연한 얼굴을 유지했다.
'설마 다들 부정행위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오해를 사도 딱히 해명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윤도현 선생이 다가와 내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대단합니다, 강서윤."
그의 목소리에 담긴 진심이 느껴졌다.
"이 정도 실력이면 정식 약사(藥師) 과정에 들어가도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그 말에 주변에서 다시 한 번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됐다.'
그 생각이 들자 묘한 긴장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이 손끝의 감각이 어디서 왔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는데, 사람들의 기대는 자꾸만 커져가고 있었다.
언젠가는 누군가 이 능력의 출처를 캐물을 것이다.
그때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지금은 그저 이 순간을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오봉수가 학당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표정이 평소보다 심각했다.
늘 사람 좋게 웃던 얼굴에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걸 보는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아가씨,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변을 한 번 살피고서야 입을 여는 그 모습에서 이미 불길함이 배어 나왔다.
"영지 약초밭에, 이상한 병해가 퍼지고 있습니다."
순간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단순한 배수 문제가 아니었던 건가.'
며칠 전 보고받았던 배수 불량 문제가 사실은 더 큰 문제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뜻이었다.
오봉수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 보였다.
"잎이 누렇게 마르고, 뿌리부터 검게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손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내일까지 확산되면, 올해 수확은 전부 망칠 겁니다."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몇 가지 가능성이 스쳐 지나갔지만, 확신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만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서늘한 예감만이, 이제 막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