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배, 내일도 올게요

3화

그날부터 서은채는 정말로 매일 왔다. 어떤 날은 여덟 시, 어떤 날은 아홉 시 넘어서. 노크 소리만 들으면 그게 그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똑, 똑. 가볍고 규칙적인 두 번.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재료를 확인하고 있었다. 계란이 몇 개 남았는지, 김치가 얼마나 있는지, 밥은 넉넉한지. 그런 걸 하나씩 세어보는 게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있었다. 오므라이스, 김치볶음밥, 계란말이. 메뉴는 매번 조금씩 바뀌었지만, 그녀의 반응은 항상 같았다. 한 숟갈 뜨고, 눈이 커지고,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 숟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의 그 짧은 정지. 그리고 이어지는 감탄사. "이거 진짜 맛있어요." 매번 똑같은 말인데도, 매번 처음 듣는 것처럼 들렸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마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오는 시간에 맞춰 재료를 준비하고, 그녀가 가고 난 뒤 설거지를 하면서, 오늘은 또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곱씹는 게 하루의 마지막 일정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의동 앞 잔디밭을 지나가다가 낯선 장면을 목격했다. 서은채가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키가 크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남자. 경영학과 3학년, 차현수. 캠퍼스 커뮤니티에 얼굴이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이었다. 동아리 회장이라던가, 장학금을 받았다던가, 그런 게시글 아래에 늘 따라붙던 얼굴. 그가 은채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웃고 있었다. "서은채 씨, 저번에 말한 스터디 모임 이번 주 어때요?" "아, 그거···." 은채가 손끝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대답을 흐렸다. 바람이 불었는지, 그녀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뺨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나는 걸음을 멈춘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으니까. 그런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방끈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현수가 웃으며 은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손끝이 닿는 그 짧은 순간, 나는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 숨을 쉬는 법을 잠깐 잊은 것 같았다. 그냥 무시해버릴까. 차현수고 뭐고 다 신경 안 쓰고. 발걸음을 옮기면 그만인 일이었다. 하지만 발은 여전히 그 자리에 붙어 있었다. 잔디 위로 낮게 깔린 햇살이 두 사람의 발끝에 걸려 있었고, 나는 그 그림자의 경계선을 세고 있었다. 결국 은채가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고, 현수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자리를 떴다.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가 걸음을 옮기다가 나를 발견했다. "어? 도현 씨."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걸음이 가벼웠다. "여기서 뭐 해요?" "···지나가는 길." 목소리가 생각보다 딱딱하게 나왔다. "방금 그 사람, 그냥 스터디 얘기예요."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설명하는 게 이상했다. "안 물었는데." 일부러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런데 표정이 좀···." "무슨 표정." "모르겠어요, 이상하게 굳어 있어서." 은채가 고개를 갸웃하며 내 얼굴을 살폈다. 그 눈빛이 너무 가까워서, 나는 반사적으로 반걸음 물러났다.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대신 손목시계를 괜히 만지며 시선을 내렸다. "수업 늦겠다, 가." 말을 돌리듯 던졌다. 은채는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뭔가 더 물으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네, 이따 저녁에 갈게요." 그 말만 남기고 그녀는 강의동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더 서 있었다. 그날 저녁, 은채는 여느 때처럼 내 방에 와서 밥을 먹었다. 오늘 메뉴는 계란말이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눈을 크게 뜨고, 볼을 붉히며 숟가락을 움직였다. "이거 되게 부드러워요." 계란말이 한 조각을 반으로 잘라 입에 넣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나는 그 얼굴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낮에 본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 겹쳐졌다. 현수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던 손, 그 손이 닿았던 자리, 은채가 손끝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던 모습. 전부 지워지지 않고 눈앞에 어른거렸다. "도현 씨." "···응." "오늘 좀 조용하네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은채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냥, 좀 피곤해서." 거짓말이었다. 식탁 위, 접시에 남은 계란말이 조각을 괜히 젓가락으로 뒤집었다. "진짜요? 낮에도 그렇고, 계속 이상해요." "아무것도 아니야." 말이 짧게 끊겼다. 은채는 더 캐묻지 않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식사가 끝나고 그녀가 돌아간 뒤, 빈 그릇을 씻으면서도 낮의 장면이 계속 재생됐다.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때 정우에게 전화가 왔다. "야,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차현수가 서은채한테 관심 있다더라. 스터디 핑계로 계속 연락한다고." 그 말에 손끝이 저릿하게 굳었다. 수화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없으면 왜 목소리가 그래." 정우의 웃음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흐릿하게 섞여 들렸다. "장난치지 말고 끊어." "야, 진짜야. 소개팅도 몇 번 시켜준다고 애들이···." 나는 전화를 끊었다.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 화면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가, 결국 완전히 꺼졌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창밖, 옆방 불빛이 아직 꺼지지 않은 채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불빛을 보며 나는 오래도록 서 있었다. 옆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괜히 벽 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고 있는 걸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불빛은 그날 밤, 내가 잠들 때까지도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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