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보름 후, 나는 처음으로 문파 밖 임무를 받았다.
청림문 산하의 조그만 상단이 산길에서 도적떼에게 습격당했다는 보고였다.
황 장로는 그 소식을 전하며 내내 무표정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무표정 뒤에 숨겨진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셋을 데려가라. 정찰조다."
그가 말했다.
말투는 짧았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동시에 그 짧은 말 속에는 시험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숙였다.
색공자.
문파 안에서 나를 부르는 방식이었다.
그 호칭이 붙은 뒤로 정식 전력으로 인정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임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황 장로의 시선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증명해 보라는 눈빛이었다.
산길은 험했다.
나무 그늘 사이로 습한 냄새가 진동했다.
발밑에서 젖은 흙이 신발 밑창에 눌려 소리 없이 파고들었다.
낙엽 밟는 소리, 새소리, 그리고 어딘가에서 나는 희미한 쇠 냄새.
피 냄새였다.
동행한 무인들이 걸음을 멈췄다.
셋 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나를 대하는 태도는 데면데면했다.
색공자와 함께 정찰조에 배정된 것이 불만이라는 티가 역력했다.
"저기다."
동행한 무인 하나가 낮게 속삭였다.
계곡 아래, 상단의 짐수레가 뒤집혀 있었다.
바퀴 하나가 허공에서 헛돌고 있었다.
호위 무사들의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
피가 흙바닥에 스며들어 검붉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로,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 다섯이 태연하게 짐을 뒤지고 있었다.
한 놈이 상자를 걷어차며 웃었다.
웃음소리가 계곡을 타고 울렸다.
"도적치고는 무공이 예사롭지 않다."
동행자가 낮게 내뱉었다.
목소리에 긴장이 배어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시야를 전환했다.
격자무늬 지도가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 좌표처럼 떠오르는 선들.
다섯 사내의 경맥이 흐릿하게 감지되었다.
일반 무인보다 훨씬 진기 순환이 빨랐다.
호흡의 간격도 규칙적이었다.
조직적으로 훈련된 자들.
단순한 산적 무리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싸울 준비를 해라."
내가 말했다.
동행자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색공자에게 지시받는 게 익숙하지 않은 눈치였다.
한 명은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뭘 안다고."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곧 알게 될 테니까.
검은 무복의 사내 하나가 우리를 발견했다.
"어이, 손님이 왔군."
그가 낮게 웃으며 검을 뽑았다.
칼끝이 나른하게 우리를 겨눴다.
챙!
쇠붙이 부딪는 소리가 계곡을 울렸다.
동행자 둘이 앞으로 나섰다.
검과 검이 맞물리는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나는 뒤로 물러나며 눈을 다시 감았다.
지도 위에서, 상대의 경맥 흐름이 보였다.
단전에서 폐경으로 이어지는 진기의 물줄기.
그 물줄기는 일정한 박동으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 안에 흐르는 진기를, 그 흐름과 맞부딪치는 방향으로 밀어냈다.
퍽!
상대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뭐, 뭐야, 이거!"
그가 자신의 팔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피부 위로 핏줄이 뒤틀리듯 부풀어 올랐다.
진기의 흐름이 뒤엉킨 것이다.
마치 코드를 강제로 덮어씌운 것처럼, 그의 경맥 순환이 순간적으로 역류했다.
그는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웅크렸다.
그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동행자들의 눈이 커졌다.
"저게 대체 무슨 무공이오?"
한 명이 검을 든 채로 되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상대의 경맥을 읽었다.
지도 위에서 새로운 좌표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조금 더 두꺼운 진기의 흐름이었다.
경계해야 할 자였다.
그 순간.
계곡 위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흥미롭군."
나는 고개를 들었다.
바위 위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검은 무복.
어깨까지 내려온 흑발을 단정히 묶었다.
허리에 걸린 검은 새하얀 칼집에 담겨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옷자락이 흔들렸지만, 그녀의 몸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눈빛은 맑고 차분했다.
하지만 그 차분함 속에 서늘한 살기가 배어 있었다.
인간 같지 않다.
첫눈에 그런 인상을 받았다.
그녀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소리 없이.
마치 바람이 스치는 것 같았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에도 흙먼지 하나 일지 않았다.
도적들이 그녀를 보고 안색이 변했다.
방금까지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백, 백옥검…"
한 명이 신음처럼 내뱉었다.
백옥검.
나는 그 이름에서 게임 속 데이터베이스를 떠올렸다.
속세오귀 중 한 명.
절정의 검객.
그 이름이 실제로 눈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소문이나 자료 속의 존재가 아니라, 지금 이 계곡 안에 실재하는 위협.
그녀가 검을 뽑았다.
칼날이 햇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났다.
칼집에서 검이 빠져나오는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다.
서걱.
단 한 번의 베기.
도적 셋이 동시에 쓰러졌다.
소리조차 제대로 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베였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얼굴로 무너졌다.
동행자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나조차 등골이 서늘해졌다.
게임 속 데이터베이스에 적혀 있던 숫자와 문구들이, 이제 그저 활자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 옮겨왔다.
"방금 그 진기의 흐름."
그녀가 낮게 물었다.
"네가 한 것이냐?"
나는 대답 대신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처음 보는 종류의 흥미였다.
경계라기보다는, 낯선 것을 발견한 자의 눈빛이었다.
"이름이 뭐지."
그녀가 다시 물었다.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동행자들은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었다.
나는 짧게 답했다.
"백정호."
그녀가 나를 잠시 응시했다.
시선이 얼굴에서 손끝으로, 다시 눈으로 옮겨갔다.
마치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리고 검을 거두며 담담하게 말했다.
"기억해 두겠다."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몸을 돌려 계곡 안으로 사라졌다.
발소리도, 옷자락 스치는 소리도 남기지 않은 채였다.
동행자들이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한 명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속세오귀의 실체를, 나는 방금 눈으로 직접 확인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 실체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이 있었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기억해 두겠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