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완벽 미소녀는 내 여동생

3화

동거 셋째 날 아침, 나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몸이 먼저 습관대로 반응한 거였다. 화·금·토는 편의점 알바가 있는 날이었고, 오늘이 마침 화요일이었다. 이불 속에서 잠시 눈만 뜨고 누워 있었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빛이 아직 희끄무레했다. 겨울 아침답게 방 안 공기가 서늘했고, 이불 밖으로 내민 손끝이 금세 차가워졌다. 그런데 코끝에 닿는 냄새가 있었다. 참기름 냄새, 그리고 뭔가 볶는 소리. 부엌 쪽에서 도마 소리가 들려왔다. 탕탕탕,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지는 소리였다. 커튼을 살짝 걷고 내다보니 이도현이 아침부터 뭔가를 썰고 있었다.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손목의 움직임이 흔들림 없이 정확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잠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학교에서는 늘 구석 자리에 앉아 눈에 띄지 않던 애가, 부엌에서는 손끝이 저렇게 야무지게 움직이는구나. 이도현. 같은 반이 된 지 벌써 반년째였는데도 나는 이 애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조용하다는 것, 성적이 나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늘 혼자 다닌다는 것.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부엌에 서서 도마질을 하는 저 뒷모습은 내가 알던 그 애와 조금 다른 사람 같았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 발소리를 죽여가며 다가갔다. 발끝이 차가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살짝 움츠러들었다. "일어났어?" 그가 뒤도 안 돌아보고 물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 "발소리." 짧은 대답이었지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발소리로 사람을 구분한다는 게, 보통 애들은 안 하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슬리퍼를 신었나 안 신었나 괜히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슬리퍼는 신고 있었다. 그런데도 발소리로 나를 알아본다는 거였다. 식탁에 앉아 아침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문득 오늘 알바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화요일이니까 저녁을 같이 못 먹는다는 걸, 미리 말해두는 게 맞았다. 동거인이 된 지 며칠밖에 안 됐지만, 이런 사소한 것부터 맞춰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오늘 저녁에 알바 있어. 화요일이랑 금요일, 토요일." "알아." "……어떻게 알아?" "어제 가방에 편의점 명찰 있던데." 허.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그냥 스치듯 봤다는 그 짧은 시선에, 명찰까지 기억한다는 게. 나 같으면 그런 건 흘려보내고 잊어버렸을 텐데. 가방 앞주머니에 명찰을 대충 꽂아둔 게 언제였더라. 그것도 지퍼를 반쯤 닫아놔서 살짝 삐죽 나와 있던 정도였는데. 이 애는 대체 얼마나 많은 걸 보고 지나가는 걸까. 식탁 위에 접시가 놓였다. 계란말이와 된장국, 그리고 나물 반찬 몇 가지. 평범해 보이는 아침 상이었는데, 젓가락을 대는 순간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반찬 어디에도 당근이 없었다. 계란말이 속에도, 나물에도, 된장국 건더기에도. 보통 이런 식단에는 당근이 하나쯔 들어가기 마련인데, 신기하게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색깔로 보나 향으로 보나 확실했다. 계란말이는 노란색 그대로였고, 나물에는 시금치와 콩나물만 무쳐져 있었다. "당근 안 넣었어?" "싫어하잖아." 그 말을 하는 이도현의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치 당연한 걸 말한다는 듯이. 나는 젓가락을 든 채로 잠시 굳었다. 내가 야채를 싫어한다는 걸 언제 말한 적이 있었나? 없었다. 없었는데. 토마토, 피망, 당근. 이 세 가지를 특히 못 먹는다는 건 나조차도 새삼 떠올려야 하는 사실이었는데,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 "급식 때 몇 번 봤어. 넌 늘 토마토랑 피망만 옆으로 빼놓더라." "……그런 걸 기억해?" "눈에 들어오는 걸 어떡해."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그가 국그릇을 하나 더 챙겼다. 나는 그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학교에서 이도현은 정말로 있는 듯 없는 애였다. 발표할 때도 목소리가 크지 않았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급식실에서도 늘 구석 자리에서 혼자 밥을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애는,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을 이렇게까지 관찰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무섭다기보다는,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나를 이렇게까지 봐준 사람이 있었나. 부모님도 학교 친구들도, 나를 겉모습만 보고 지나갔다. 완벽한 서하은. 성적도 좋고, 인기도 있고, 흠잡을 데 없는 아이. 그 완벽함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토마토를 못 먹는다는 것도, 알바를 뛴다는 것도, 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 날이 더 많다는 것도.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이 조용한 애는, 내가 야채 하나를 골라내는 순간까지 눈에 담아두고 있었던 거다. "고마워."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별거 아니야." 그는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국그릇을 내 앞에 놓았다. 뜨거운 김이 얼굴 쪽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그 무심한 손짓 속에서, 나는 왜인지 마음 한쪽이 조금씩 데워지는 걸 느꼈다. 된장국 냄새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밥을 먹는 내내 그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저 가끔 내가 젓가락질을 멈추면 반찬 그릇을 슬쩍 내 쪽으로 밀어주는 정도였다. 나는 그 손짓 하나하나를 눈으로 좇으며, 이상하게도 편안함을 느꼈다. 낯선 사람과 한집에 살게 된 지 사흘째인데, 이런 감정이 드는 게 스스로도 신기했다. 학교로 향하는 길, 나는 나란히 걷는 이도현의 옆얼굴을 몇 번이나 훔쳐보았다. 저 무표정한 얼굴 뒤에 대체 얼마나 많은 관찰이 쌓여 있는 걸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알바를 마치고 밤늦게 돌아온 날,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문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보고 걸음을 조금 빠르게 했다. 늦게 오면 먼저 자라고 했는데, 저 불은 아직 켜져 있었다. 시계를 보니 열한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마감 정리를 하다 보니 늦어진 거였다. 계단을 두 개씩 밟아 올라가며 숨이 조금 가빠졌다. 겨울바람에 볼이 얼얼했다. 문 앞에 서서 열쇠를 꽂기 전,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불빛이 흘러나오는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저 안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따뜻했다. 문을 열자 이도현이 식탁 앞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었다. 나를 위해 남겨둔 것 같은 반찬통과, 그 옆에 놓인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편의점 알바 시간표를 옮겨 적은 종이였다. 화, 금, 토 옆에 각각 시작 시간과 끝나는 시간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뭔가가 더 적혀 있었다. "이게 뭐야?" "화, 금, 토 저녁은 늦게 오니까, 그날은 밥 미리 챙겨놓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문 앞에 선 채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발도 벗지 못한 채 그저 그 종이를 바라보았다. 손글씨로 삐뚤빼뚤 적힌 시간표 옆에, 작게 "저녁은 냉장고 두 번째 칸"이라고 쓰여 있었다. "언제 이런 걸 다……" "어제 가방에서 시간표 봤을 때 적어놨어." 이 애는 대체 어디까지 나를 알아버리려는 걸까. 명찰 하나, 야채 하나, 시간표 하나. 사소한 것들이었는데, 그 사소한 것들을 하나도 흘리지 않고 다 주워담고 있었다. 나는 신발을 벗으며 괜히 목이 메는 걸 삼켰다. "먹었어?" 그가 물었다. "아직." "그럼 앉아. 데워줄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찬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나를 살피는 사람이, 정작 자기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 왜 이 집에서 나와 살게 됐는지, 부모님은 어디 계신지, 아무것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물어봐도 될까. 가스레인지에 불이 붙는 소리가 들렸다. 파란 불꽃이 어둑한 부엌을 잠시 밝혔다가 냄비 밑으로 잦아들었다.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그 좁은 등을 바라보며, 오늘은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도현, 너는 대체 누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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