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알람이 세 번 울리고 나서야 눈을 떴다. 창밖은 아직 푸르스름했고, 이불 속은 뜨뜻했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오 분만, 딱 오 분만 더,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실제로는 십오 분이 지나갔다.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을 확인했을 때, 부재중 알림이 하나 떠 있었다. 도훈이었다. 새벽 여섯 시 사십 분. '일어났어?' 라는 짧은 문자 하나. 나는 그걸 보고도 답장을 하지 않은 채로 다시 눈을 감았다. 그게 습관이었다. 도훈은 늘 나보다 먼저 일어나 있었고, 나는 늘 그의 문자에 늦게, 혹은 아예 답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는 한 번도 그것에 대해 서운함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교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종이 치기 오 분 전이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두 칸씩 올랐다. 운동화 끈이 헐렁하게 풀려 있었지만 다시 묶을 시간도 없었다. 복도를 뛰어가는 동안 몇 번이나 발을 헛디딜 뻔했다. 2학년 3반 문을 열자, 익숙한 자리에 도훈이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늘 그렇듯 도시락 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물통도 하나 더 놓여 있었는데, 뚜껑에 붙은 스티커를 보고 나는 그게 내 것이라는 걸 알았다.
"늦었네." 도훈이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낮고 무심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 한마디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늦어도, 헐레벌떡 뛰어와도, 저 자리에 도훈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알람을 세 번이나 눌렀는데 왜 이렇게 안 일어나는지 모르겠어." 나는 가방을 던지듯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숨이 아직 골라지지 않았다. 이마에 땀이 살짝 배어 있었다.
도훈은 아무 대꾸 없이 도시락 가방을 내 책상 위로 슬쩍 밀었다. 그 익숙한 무게가 손끝에 닿는 순간, 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오늘 아침도, 어제 아침도, 그 전날 아침도, 늘 그랬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던가.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도훈이 없는 아침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열일곱 살이 되도록, 남학생이 여학생 도시락을 매일 싸주는 일이 흔할 리 없었다. 처음 몇 년은 그의 어머니가 싸주시는 거라고 생각했다. 도훈의 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좋으셨고, 나에게도 몇 번 반찬을 나눠주신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러니까 아마 중학교 2학년쯤부터, 나는 그 도시락이 도훈이 직접 싸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계란을 부치고, 사과를 토끼 모양으로 깎는 그 손을. 그때는 그냥, 도훈이 요리를 좋아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어제 말한 수학 범위, 다시 확인했어. 3단원 뒤쪽까지야." 도훈이 쪽지를 건넸다. 손글씨로 빼곡하게 정리된 시험 범위였다. 개념 정리와 함께 틀리기 쉬운 유형까지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그걸 받아 대충 가방에 쑤셔 넣었다.
"고마워." 나는 습관처럼 말했다.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거였다. 고맙다는 말도 어느새 형식이 되어 있었다. 도훈이 나에게 무언가를 건네고, 내가 그걸 받아 고맙다고 말하는 이 리듬이 십 년 넘게 반복되었을 텐데, 나는 단 한 번도 그 리듬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1교시가 시작되기 전, 교실은 늘 그렇듯 소란스러웠다. 누군가는 숙제를 베끼고 있었고, 누군가는 어제 본 드라마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라연은 창가에서 휴대폰을 들고 하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 애는 대체 하늘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을까 싶었다. 매일 아침 같은 하늘인데도 나라연은 늘 다른 각도로, 다른 필터로 그 사진을 찍었다. 한소율은 보리차 병을 흔들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뚜껑이 헐렁했는지 병 입구에서 물방울이 조금씩 흘러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책상 두 줄 건너에서는 남학생 몇이 모여 휴대폰 게임 화면을 들여다보며 낮게 욕설을 섞어가며 웃고 있었다. 창문 밖에서는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체육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평범한, 지극히 평범한 아침의 소음들이었다.
그리고 이한준이 내 옆을 지나가다가 도시락 가방을 발견했다.
"어, 오늘도 도시락이네?" 한준이 씩 웃으며 도시락 가방을 툭 건드렸다. "소이야, 넌 진짜 좋겠다. 강도훈이 이렇게 다 챙겨주고."
나는 별 뜻 없이 웃었다. 늘 듣던 소리였으니까. 반 아이들 사이에서 이 도시락 얘기가 나온 게 벌써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었다. 처음엔 신기하다는 반응이었고, 그다음엔 부럽다는 반응이었고, 요즘 와서는 거의 웃음거리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게 그냥 그런 거라고, 도훈과 나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어떤 방식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한준이 한 발 더 나갔다.
"이거 완전 남편처럼 챙기는 거 아니냐? 도시락에, 시험 범위에, 준비물까지. 야, 강도훈, 너 나중에 결혼하면 소이한테 이 정성 그대로 갈 거지?"
교실이 웅성거렸다. 몇몇이 웃었다. 그 웃음은 처음엔 작았지만, 옆자리로 옮겨가며 점점 커졌다. 마치 물이 잔에서 넘쳐 바닥으로 퍼지듯이. 누군가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웃었고, 누군가는 옆 사람 어깨를 치며 낄낄거렸다. 나는 그 웅성거림 속에서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뒷목까지 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완전 남편이네, 남편." 누군가 따라 웃으며 말했다. "둘이 그냥 결혼해."
"주례는 내가 볼게." 다른 누군가가 덧붙였고, 그 말에 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나는 그 순간 뭔가가 목구멍을 틀어막는 느낌을 받았다. 사포로 문지른 듯 껄끄러운 느낌. 시선이 나에게로, 도훈에게로, 다시 나에게로 오갔다. 반 아이들의 눈빛 속에는 놀림과 흥미와, 어쩌면 부러움 같은 것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내게는 그 모든 게 하나의 압박으로 느껴졌다. 마치 수십 개의 스포트라이트가 동시에 내 얼굴을 향해 켜진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에도 도훈의 표정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오로지 나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어떻게든 끝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십 년 넘게 쌓아온 어떤 균형을, 나는 그 몇 초 사이에 무너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도훈을 쳐다보지 못했다. 대신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과보호야, 그만해."
말이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나는 스스로도 놀랐다. 목소리는 예상보다 컸고, 어조는 예상보다 날카로웠다. 교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방금까지 웃던 아이들도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의 헛기침 소리만이 정적을 갈랐다.
나는 도훈을 흘깃 보았다. 그의 표정이 어떻게 변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어떤 빛이 눈에서 사라지는 걸 본 것 같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마치 스위치가 꺼지는 것처럼, 도훈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소리 없이 빠져나갔다.
그는 항상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화가 나도 화를 내지 않는 얼굴. 서운해도 서운함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 나는 그게 도훈의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다. 무던하고, 참을성 있고, 남을 배려하는 성격. 그 얼굴 뒤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나는 단 한 번도 궁금해한 적이 없었다.
"아, 그런 거야?" 한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미안, 미안. 그냥 장난이었어."
한준의 목소리에는 당황함이 섞여 있었다. 분위기가 이렇게 급격히 얼어붙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는 몇 번 눈을 굴리며 주변을 살피다가, 결국 자기 자리로 슬쩍 돌아갔다.
도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발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걸음걸이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그저 조용하고 정확한 걸음이었다. 한 발, 한 발, 마치 미리 계산된 간격으로 내딛는 것처럼.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목구멍은 여전히 껄끄러웠고, 심장은 이상하게 빠르게 뛰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감각이 뒤늦게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짚어낼 수 없었다.
"어디 가?" 내가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크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러운 소리였다. 그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더 크게 귀에 박혔다.
교실은 그 뒤로도 한동안 조용했다.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다시 각자의 대화로 돌아갔지만, 그 목소리들은 아까보다 훨씬 작아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볼륨을 절반쯤 줄여놓은 것 같았다.
나는 도시락 가방을 손에 쥔 채로,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곱씹었다. 과보호야, 그만해. 그 말이 그렇게 크게 터질 일이었나. 나는 그 순간까지도 알지 못했다. 내가 쏘아낸 그 여섯 글자가, 십 년 넘게 쌓인 어떤 것을 단 한 번에 무너뜨렸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이상한 순간들이 있었다. 도훈이 유독 말없이 나를 오래 쳐다보던 순간들, 별거 아닌 일에도 며칠씩 신경을 쓰던 모습들, 다른 여자애들이 나에게 접근하는 남자애들 얘기를 할 때마다 조용히 화제를 돌리던 습관 같은 것들. 나는 그걸 그냥 친구니까, 오래된 친구니까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다. 단 한 번도 다른 가능성을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나라연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그러나 말하지 않겠다는 듯한 미묘한 색이 섞여 있었다. 한소율은 보리차를 마시다가 사레들린 듯 콜록거렸다. 몇몇 아이들의 눈이 나를 향해 흘깃거렸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도시락 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계란말이와 멸치볶음, 그리고 작게 자른 사과가 들어 있었다. 사과 위에는 토끼 모양으로 깎여 있었다. 계란말이는 매번 그렇듯 완벽한 두께로 말려 있었고, 멸치볶음에는 아몬드까지 섞여 있었다. 이렇게 세심하게, 매일 아침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여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도훈이 늘 그렇게 해왔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으로 이상하게 느꼈다.
토끼 모양 사과를 보는데, 이상하게 목이 메었다. 손가락으로 그 사과 조각을 집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먹을 수가 없었다.
종이 울렸다. 도훈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빈 자리를 오래 쳐다보았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물통이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 그가 두고 간 필통이 반쯤 열린 채 놓여 있었다. 마치 언제든 다시 돌아올 사람처럼, 그의 자리는 그대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들어와 출석을 부를 때까지도, 도훈의 이름이 불리는 순서가 될 때까지도, 나는 문 쪽을 자꾸 돌아보았다. 그가 걸어 나가던 그 조용한 걸음걸이가, 자꾸만 눈앞에 되풀이됐다. 마치 필름이 끊기지 않고 반복 재생되는 것처럼.
"강도훈." 선생님이 이름을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선생님은 별생각 없이 출석부에 무언가를 표시하고 다음 이름을 불렀다.
나는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처음으로 이상한 불안을 느꼈다. 늦었다거나, 몸이 안 좋아서라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라는 걸, 어쩐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불안은, 어째서인지 점점 더 무겁게 가슴 속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