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문서현과의 점심은 그날 이후로 거의 매일 이어졌다.
"이도윤, 오늘도 같이 먹자."
특별할 것 없는 그 말이 반복될수록, 나는 조금씩 마음이 편해졌다.
강태희와의 관계는 여전히 정의할 수 없는 이상한 무게로 남아 있었지만, 문서현과 있을 때는 그냥 평범한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식당 한구석, 늘 앉는 자리에 문서현이 먼저 앉아 손을 흔들었다.
"여기, 여기."
"매일 여기 앉네요."
"자리 좋잖아. 창가고."
문서현은 식판을 내 앞으로 슬쩍 밀어주며 반찬을 하나 골라 올려줬다.
"이거 맛있어. 먹어봐."
"안 먹어도 되는데."
"먹어보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문서현은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이미 자기 몫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강태희 앞에서는 늘 한 마디를 하기 전에 몇 번을 고민해야 했는데, 문서현 앞에서는 그런 게 필요 없었다.
"이도윤 너 은근 웃긴다."
"제가요?"
"응, 표정이 계속 바뀌어. 재밌어."
문서현은 그렇게 말하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 웃음이 진심처럼 보였다.
그때는 정말 그렇게 보였다.
"오늘 급식 뭐 나왔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계속 얘기만 했잖아요."
"그게 더 재밌잖아."
문서현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턱을 괴었다.
"이도윤, 너 강태희 선배랑 친해?"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순간 숨을 삼켰다.
"그, 그냥 아는 정도예요."
"흐음."
문서현은 별다른 표정 없이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그냥 물어본 거야."
그 순간, 나는 왜인지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질문이라고, 그렇게 넘겼다.
-
하지만 그 무렵, 다른 곳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1학년 2반 교실 구석, 쉬는 시간.
"야, 서현이 진짜 걔한테 관심 있는 거야?"
"관심은 무슨. 그냥 재밌잖아."
"강태희 선배가 찜한 애를 데리고 논다는 게?"
"그러니까 재밌지."
문서현의 무리 중 한 명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걔가 강태희 선배 좋아하는 거 뻔히 보이는데, 우리가 진짜로 좋아하는 척 하면 어떻게 될까."
"고백하라고 시키자는 거야?"
"응. 서현이가 먼저 고백하면, 걔는 무조건 넘어올걸."
"그러다 강태희 선배한테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니까 재밌는 거지."
그들 사이에서 웃음이 번졌다.
누군가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촬영도 하자. 걔 반응 진짜 웃길 거야."
"서현이가 진심으로 할 리가 있나."
"당연히 없지. 근데 걔는 진심인 줄 알겠지."
"그러니까 더 재밌는 거지, 우리끼리만 아는 거잖아."
"언제 할 건데?"
"내일이나 모레? 서현이 타이밍 봐서."
"옥상 어때. 사람도 없고, 각도도 좋고."
"오, 좋다."
그 대화는 그렇게 결정됐다.
나는 그날 그 교실 구석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
그날 오후, 체육 창고에서 나는 실습 준비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담당 선생님이 급한 일로 잠깐 나가면서 나에게 정리를 맡겼다.
좁은 창고 안, 매트와 상자들이 어수선하게 쌓여 있었다.
먼지 냄새가 코끝에 걸렸고, 형광등 하나는 깜빡거리다 겨우 켜졌다.
나는 매트를 하나씩 세워 벽에 기대놓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걸 왜 나한테 시키고 가는 거야···."
그때,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 해."
강태희였다.
"정리하는데요···, 선생님이 시켜서요."
"도와줄게."
"괜찮은데요."
"됐고."
강태희는 이미 안으로 들어와 매트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교복 셔츠 소매를 대충 걷어 올린 팔이 눈에 들어왔다가, 나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좁은 공간이라 움직일 때마다 서로 어깨가 닿았다.
나는 그 거리가 신경 쓰여서 자꾸 몸을 움츠렸다.
"왜 그렇게 움직여."
"아, 아니에요."
"거기 상자 좀 잡아."
강태희가 위쪽 선반에 있는 상자를 가리켰다.
나는 발을 들어 손을 뻗었지만, 키가 모자라 손끝이 닿을락 말락 했다.
발끝이 후들거려서 몇 번이나 다시 뛰어올랐지만, 상자는 여전히 손가락 끝을 비웃듯 멀었다.
"비켜."
강태희가 뒤에서 다가와 팔을 뻗었다.
순간 등 뒤로 강태희의 몸이 바로 붙었다.
숨결이 목덜미에 닿았다.
심장이 순식간에 목까지 차올랐다.
"저, 저기 선배···."
"가만있어."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상자를 내리려고 몸을 기울이던 강태희의 손이, 균형을 잃고 미끄러졌다.
순간 두 사람 다 균형을 잃고 매트 위로 넘어졌다.
쿵.
등이 매트에 닿았고, 강태희의 몸이 바로 위로 겹쳐졌다.
두 사람의 얼굴이 몇 센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마주했다.
숨소리가 서로에게 닿을 만큼 가까웠다.
나는 그대로 숨을 멈췄다.
강태희도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은발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내 얼굴을 살짝 스쳤다.
먼지 낀 형광등 불빛 아래, 강태희의 눈동자가 유난히 가까이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뛰는 게 내 것인지, 위에서 겹쳐진 사람의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미안."
강태희가 낮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평소와 다르게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다.
나는 그대로 매트에 누운 채 천장을 바라봤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 게 느껴졌다.
"괘, 괜찮아요."
"···."
강태희는 아무 말 없이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그 모습이 평소의 여유로운 모습과 너무 달라서, 나는 잠깐 이 사람이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손을 치우자, 강태희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선배 얼굴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야."
"빨간데요."
"닥쳐."
그 반응이 너무 낯설어서, 나는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왜 웃어."
"아니요, 그냥···, 선배도 이런 표정 지을 줄 아는구나 싶어서요."
강태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상자를 옮기기 시작했다.
등이 살짝 뻣뻣해 보였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아까 넘어졌을 때의 온도가 아직도 팔에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착각이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정리를 마치고 창고 문을 잠글 때까지도, 강태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 창고를 나올 때까지,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예전과는 다른 종류의 침묵이라는 걸,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복도로 나오자 강태희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앞서가던 등이 문득 멈췄다가,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한동안 눈으로 쫓았다.
-
그리고 그날 밤, 문서현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일 옥상으로 좀 나와줄 수 있어? 할 말이 있어서.〉
나는 그 문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침대에 누운 채로 휴대폰 화면만 몇 분째 들여다봤다.
'할 말이 있어서'라는 문장이 유난히 눈에 걸렸다.
평소 문서현이 나에게 보내던 가벼운 문자들과는 조금 다른 무게였다.
왜인지 모르게 가슴이 조금 뛰었다.
그게 창고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감정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무엇인지, 그때는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답장을 쓰다 지우고, 다시 쓰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결국 짧게 하나만 남겼다.
〈네, 나갈게요.〉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일 옥상에서 무슨 말을 듣게 될지, 그때는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다.